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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너머의 풍경을 만났다...우리시대 중진작가 4인 초대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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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두, 느린 풍경_봄길, 145.0x75.0cm.장지에 분채, 2019. [사진 갤러리 화이트원]

김선두, 느린 풍경_봄길, 145.0x75.0cm.장지에 분채, 2019. [사진 갤러리 화이트원]

김선두, 느린 풍경_사이, 143.0x83.0cm, 장지에 먹 분채 . 2017.[사진 갤러리 화이트원]

김선두, 느린 풍경_사이, 143.0x83.0cm, 장지에 먹 분채 . 2017.[사진 갤러리 화이트원]

서울 청담동 프리마호텔 뒤편의 작은 골목. 식당들이 즐비한 길을 지나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유난히 느려지는 곳이 있다. 유모차를 밀고 가던 젊은 여성도, 바삐 앞을 보고 걷던 60대 남성도 조금은 놀란 시선으로 한 건물에서 시선을 쉽게 떼지 못한다. 커다란 유리창 안으로 대형 그림 3점이 걸린 곳이 바로 갤러리 화이트원이다.

서울 청담동 갤러리 화이트원 '풍.경.공.장' #김선두,김지원, 김보희,이세현 작가 초대전 #우리가 보지 못했던 풍경 뒤의 풍경 읽기

한국화단 중진작가 4인의 작품이 한 공간에 모였다. 이 갤러리에서 29일 개막한 4인 작가 초대전 ‘풍.경.공.장’(Landscape Factory) 전이다. 한국 화가인 김선두(중앙대 교수), 김보희(이화여대 명예교수), 서양화가인 김지원(한예종 교수), 이세현 작가의 작품 50점여 점이 전시장 안을 채웠다.

최혜율 화이트원 갤러리 대표와 함께 이번 전시 기획에 참여한 김선두 작가는 "국내 화단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풍경을 그리는 작가들, 풍경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하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전시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이어 "화가들이 그리는 모든 그림은 자화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안에 자기 자신은 물론 자연과 사회·역사를 보는 시선이 다 녹아 있다"고 설명했다.

김선두, 곡선의 풍경 

넉넉한 여백과 곡선, 그리고 포근한 들판의 색채로 화폭을 채운 김 작가의 '느린 풍경' 연작은 삶에 대한 그의 질문을 담았다. 느린 풍경은 다름 아닌 곡선의 풍경이다. "진정으로 밀도 있는 삶이란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것(직선)이 아니라 여백을 두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곡선과 같은 것이 아니겠냐"는 이야기다. 장지에 수십차례 겹쳐 바른 밑색은 평면의 화폭 위에 입체적인 결을 얹은 듯 깊이를 더해 오랫동안 시선을 붙잡는다.

김보희, 고요하고 맑고 신비롭다 

김보희,Towards, 42.0x53.0cm,color on cavas, 2018.[사진 갤러리 화이트원]

김보희,Towards, 42.0x53.0cm,color on cavas, 2018.[사진 갤러리 화이트원]

제주도에서 작업하는 김보희 작가는 '투워즈(towards)' 연작을 선보였다. 2016년, 2108년에 작업한 것으로, 물결이 고요한 바다와 하늘, 녹색의 싱그러움으로 가득한 들판을 담았다. 풀과 나무, 하늘과 바다 등 소재가 달라도 김보희 작가가 그린 화폭엔 참선하는 이가 닿고 싶어하는 '평정'(平靜)의 고요하고 맑고 신비로운 기운이 가득 차 있다. 그는 한국화의 채색 기법을 사용하지만, 캔버스를 이용하며 서양화 재료도 다양하게 수용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을 구축했다.

김지원 "바람을 그리고 싶었다"  

김지원, '풍경' 34.0x24.0cm,oil on linen, 2016.[사진 갤러리 화이트원]

김지원, '풍경' 34.0x24.0cm,oil on linen, 2016.[사진 갤러리 화이트원]

'맨드라미' 연작으로 유명한 김지원 작가의 작품들도 눈에 띈다. 전시엔 너비와 폭이 2m가 넘는 맨드라미 대작도 나왔지만, 이번에 더 눈에 띄는 건 그가 '풍경'이라 이름 붙인 작은 크기의 작품 8점이다. 나무 위에 덧칠해진 거친 하얀 붓질이 강렬하다. 오랫동안 그의 작업실 벽에 걸려 있었던 엽서 한장에서 영감을 얻어 반복해서 그린 고사목 지대의 풍경이다. 김지원 작가는 "'풍경'(風景)이란 말을 그대로 풀어쓰면 '바람이 있는 경치'란 뜻이다. 나무들이 온몸으로 맞았을 바람을 화폭에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세현, 풍경에 스민 역사의 공기 

이세현, 비트윈 레드, 018NOV 03, 60.X60.0cm, oil on linen, 2018.[사진 갤러리 화이트원]

이세현, 비트윈 레드, 018NOV 03, 60.X60.0cm, oil on linen, 2018.[사진 갤러리 화이트원]

이세현 작가의 풍경은 한마디로 뜨겁다. 마치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듯하다. ‘붉은 산수’ 연작으로 국내외 화단에 이름을 알린 작가이지만, 그 뜨거움이 반드시 색채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원근법의 틀을 과감하게 벗어나 다시점으로 앉힌 풍경, 그 풍경의 요소들이 더 뜨겁다. 처음엔 아름다운 것들이 먼저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공을 초월한 역사의 풍경들이 함께 들어가 있다. 산업화에 의해 무분별하게 파헤쳐진 자연, 마치 거대한 폭발음이 들릴 듯한 전쟁의 현장, 아름다운 산과 강 그 안에 살포시 얹혀진 전통 건축물이 뒤섞여 있는 것. 섬세한 붓질로 그가 새겨놓은 것은 아름다움과 경이, 비극의 현장이 기묘하게 하나가 된 '진짜 풍경'이다. 작가가 군 복무시절 적외선 망원경으로 바라본 전방 풍경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작가는 “모든 풍경은 인간의 삶과 관계를 맺고 있다. 누군가 살았거나 여전히 살고 있는, 혹은 살고 싶은 공간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지난 4월 갤러리를 개관하고 이번 초대전을 준비한 최혜율 대표는 "4인의 작가들은 자신만의 시선으로 풍경 너머에 존재하는 풍경의 속살을 그린다. 이번 전시를 통해 더 많은 관람객이 우리 회화의 깊이와 아름다움과 친숙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1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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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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