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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혁신 권고안 석 달, 현장은 여전히 우왕좌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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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5월 7일 권고안을 발표하고 있는 문경란(가운데) 문체부 스포츠혁신위원장. 혁신위는 체육계 구조 개혁을 위해 2~8월 활동했다. [뉴스1]

5월 7일 권고안을 발표하고 있는 문경란(가운데) 문체부 스포츠혁신위원장. 혁신위는 체육계 구조 개혁을 위해 2~8월 활동했다. [뉴스1]

문재인 정부의 스포츠 행정은 몇 점을 줄 수 있을까. 정부의 자체 평가는 좀 모호하다. 스스로는 “체육 정책의 기본틀을 혁신하고 선수 인권을 보호하고자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문체부가 20일 펴낸 ‘문재인 정부 2년 반, 우리 문화·체육·관광이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보도자료에서다. 하지만 현장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반환점 돈 문재인 정부 체육 행정 #반대쪽 “현실 반영 못한데다 촉박” #찬성쪽 “미래 준비 위해서는 필요”

문체부는 “올해 2월 스포츠혁신위를 출범해 현장의 의견을 수렴한 7차례 권고안을 발표했다”는 걸 강조했다. 혁신위는 2~8월에 걸쳐 1~7차 권고안을 내놨다. 다양한 권고안 중 체육 현장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학교 운동부를 스포츠 클럽으로 전환하는 문제다.

실제로 엘리트 중심 학교 스포츠는 여러 문제를 노출했다. 쇼트트랙 조재범 코치의 선수 성폭행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소수의 성적지상주의에서 벗어나 모두가 평생 즐기는 스포츠, 즉 유럽형 스포츠 클럽으로 전환하자는 게 골자다. 마지막 권고안인 6, 7차 안이 발표된 지 석 달이 지났는데도, 학교 체육 현장은 우왕좌왕 한다. 취지와 방향성에는 공감하지만 급작스럽다는 반응이다. ‘내년 1월 권고, 내후년 1월 시행’은 준비가 촉박하다는 거다.

권고안의 주요 내용은 ▶학생 선수의 주중 대회 참가 금지 ▶최저 학력 미달에 따른 대회 참가 금지 ▶정규수업 후 훈련 실시 및 합숙소 폐지 ▶학부모 비용 및 불법 찬조금 금지다. 위반 사항이 적발되면 학교에 책임을 묻는다. 서울 창문여고 교장을 지낸 김성일 한국중고펜싱연맹 회장은 “징계를 피하려고 운동부를 무더기 해체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달 제주고 야구부가 해체될 뻔했다가, 학부모 반대로 한시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7월21일 청주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제53회 대통령배 고교야구 전국대회 부천고와 청주고의 경기 모습. [중앙포토]

7월21일 청주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제53회 대통령배 고교야구 전국대회 부천고와 청주고의 경기 모습. [중앙포토]

권고안이 체육 현장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주중 대회를 금지하면 주최 측은 대회를 주말에 몰아서 열어야 한다. 국내 체육시설이 이를 수용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 여고 펜싱선수는 “주말에 대회에 나가는 경우 주중 내내 훈련하고 주말에 출전한다. 일주일 내내 운동만 하게 된다”고 말했다.

권고안에는 2021년 학생 선수를 클럽 회원으로 전환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클럽 운영은 회원 회비 및 국가와 지차제의 지원 예산으로 한다. 하지만 인기 종목으로 쏠림 현상이 일어날 경우 비인기 종목이나 저소득층 가정 출신 선수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 또 일부에선 스포츠 조기유학이나 사교육 급증을 우려한다. 김헌일 청주대 체육학과 교수는 “학생 선수, 학부모, 지도자 모두가 공감 못하는 정책이다. 스포츠 선진국의 경우 수십 년에 걸쳐 달성한 제도를 우리는 1~2년 사이 급하게 서두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6월1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대한민국국가대표선수협회와 한국올림픽성화회 등 체육단체들이 스포츠혁신위 2차 권고안에 대한 대한민국 스포츠인들의 성명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2차 권고안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체육현장의 실태를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지난 6월1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대한민국국가대표선수협회와 한국올림픽성화회 등 체육단체들이 스포츠혁신위 2차 권고안에 대한 대한민국 스포츠인들의 성명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2차 권고안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체육현장의 실태를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반대로 권고안을 지지하는 쪽도 있다. 전국 대학 체육학과 교수 190여명이 7월 권고안을 공개지지했다.

혁신위에 참여했던 한 위원은 “(200쪽이 넘는) 권고안을 자세히 읽으면 방향과 취지를 알 수 있다”며 “일부 여자 종목의 경우 팀 수가 적어 지방에 모여 약 2주간 대회를 한다. (장기간 빠졌다가) 학교에 돌아오면 공부와 멀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운동 선수로 성공할 확률을 1%로 본다. 최소한 학교라는 시스템 안에서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며 미래를 대비하자는 게 혁신안의 취지”라고 강조했다. 또 “학교 운동부는 외딴 섬처럼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학부모 회비 등을 투명하게 운영하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체부 관계자는 “부 내 체육진흥과에서 종목별 협회 의견을 수렴하는 등 (혁신안의 시행) 시기와 강도 등을 협의 중이다. 내년부터 바로 주말 대회를 열면 좋겠지만, 현재까지 권고 사안이고 종목 별로도 차이가 있다”며 “인구 감소로 학생 숫자가 줄었다. 점진적으로 스포츠 클럽으로 전환해 생활 체육과 엘리트 체육을 연계해 나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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