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부채 회계 장부 꾸민 뒤 내 계좌로 상환”…20년 동안 502억 빼돌린 직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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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간 회삿돈을 500억원 넘게 빼돌린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징역 12년이 선고됐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조병구)는 20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법률위반(횡령) 혐의로 구속기소된 임모(51)씨에게 징역 12년과 벌금 150억원을 선고했다. 그는 지난 2000년 2월부터 올해 5월까지 약 20년 동안 2022회에 걸쳐 자신이 다니는 H사의 자금 502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중앙포토·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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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에 따르면 임씨의 범행은 1999년 자금 집행 과정에서 실수로 거래처에 약속한 액수보다 대금을 많이 지급하게 되면서 시작됐다. 그는 회계전산시스템에 허위 부채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넘겼는데 적발되지 않고 넘어갔다. 그러자 임씨는 ‘이렇게 횡령해도 모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후 임씨는 같은 방식으로 허위 부채를 만든 뒤, 실제로는 대금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하는 방식으로 회삿돈을 빼돌려왔다.

지난 5월 감사 과정에서 범행이 들통나자, 임씨는 회사로 출근하지 않고 홍콩으로 출국을 시도하기도 했다. 경찰의 출국금지 조치로 도주에 실패한 임씨는 한 달 가량 은신하다 6월 부산에서 검거됐다. 임씨는 빼돌린 회삿돈을 대부분 유흥비로 썼다고 수사기관에 진술했다.

재판부는 “범행 기간이 길고 피해액이 크고 회사의 주가가 급락해 모회사와 채권자 등 이해관계인들의 재산 손상으로 이어졌다”며 “단순 횡령으로 치부할 수 없다. 건전히 운영돼야 할 회사 시스템의 신뢰를 위협하는 범죄라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재판 과정에서 임씨 측 변호인은 “피해 회사의 자금 집행 방식과 감사제도가 부실해 범행 발생과 확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양형에 있어 감경 요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측이 환수한 금액은 모두 더해도 전체 피해액의 1.7%가량인 8억여원에 불과하다”며 “피해가 대부분 회복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회복이 불가능해 보인다”며 중형을 선고한 이유를 밝혔다. 범행이 발각되자 임씨가 계좌에서 돈을 인출해 도망가거나, 길거리에서 수억원을 잃어버렸다고 하는 등 남은 돈을 은닉하고 있을 가능성도 지적했다.

다만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면서 자백하고 반성하는 점, 피해 변제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다짐한 점, 범행 이전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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