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주름살에 어린 삶의 양면성 잘 그려|『가야산』바위의 침묵 통해 역사의식 일깨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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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많은 작품을 보아 왔다. 그리고 촌평을 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옳은 감상이며 바른 평가였는가에 대하여는 필자 자신이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성심으로 대해온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사족을 붙이기도 했다.
본 란 초기에는 대개 형식문제에 대해 선자들마다 많은 언급이 있었다.
그것은 시조의 형식(3장6구 12음보)을 완전히 체득하지 못한 작품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차 횟수를 거듭해 오늘에 이르러서는 작품상의 미학적인 면까지를 언급하게 된 것은 그만큼 본란의 작품 수준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초창기부터 꾸준히 작품을 보내오던 면면의 작자들 가운데는 벌써 문단에 데뷔해 창작생 활에 열중하는 이들도 있고 또 상당한 수준의 작품들이 계속 투고되고 있음이 이를 잘 말해준다.
물론 본 란의 목적이 신인의 육성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나 모든 국민이 정신적·정서적 생활을 풍요히 하고 나아가 문학적 기량을 쌓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많은 독자들의 관심이 보다 확대되고 수준 높은 작품들이 계속 투고되기를 바라며 곧 있을 중앙일보의 중앙백일장에도 적극 참여해 좋은 체험과 성과가 있기를 기대하면서 그간의 작자들에게 꾸준한 정진을 당부한다.
이병옥의<초가을>은 가을 정서가 가을 바람처럼 상큼한 작품이며 강경희의<농부>는 농부의 주름살에 어린 삶의 양면성이 잘 나타나 있고 문영아의<가야산 바위>는 바위의 침묵을 통해 역사의식을 비춘 점, 그리고 강진형의<영산 강변>은 조촐한 서정을 사 뽑아보았다. 【김제현<시조시인·장안대 교수>】

<시조>-초가을
산그늘 외로워서
정든 사연 읊조리면
피멍든 가을하늘이
솜털처럼 나부끼고
서툰 짓 몸 추스리며
다가오는 갈바람
이병옥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대화 5리>

<시조>-농부
어허야 어야디야
흥겹고도 구슬픈 소리
거친 손 마디마디
한숨은 배어나도
주름진 얼굴 그 속엔
그리움만 가득하네
강정희<추계 예술학교 문창과 3 년>

<시조>-가야산 바위
보랏빛 탄 입술로
버티어온 천년침묵
물방울 쉬임 없이
컵을 향해 구멍파면
화강암 빗금 자국에
스며드는 가야의 혼
문영아<부산시 서구 서대신 2가 120의7 대성자동차 학원(내)>

<시조>-영산 강변
바람은 발을 씻고
죽정 위에 굽어 앉아
열 아홉 하얀 속살
양손 받쳐 따 담으면
가슴은 물먹은 돌 섬
쪽배, 돛배 떠가네
강진형<광주시 동구산수3 동21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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