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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씨 "최후통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전두환 전대통령이 직접 청와대측에 대해 자신의 조속한 증언을 실현시켜 주도록 요청한 것은 어떻게 보면 행정부에 대한 최후통첩과 같은 성격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23일 백담사에 은둔한 이후 수 차례 전씨 문제의 해결이 지연되고 있는데 대한 불만이 백담사측근의 입을 통해 흘러 나왔었다. 또 전씨 자신도 이상익씨 (전 민정당 의원)등에게 상당히 격앙된 심정을 털어놓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측에서 보낸 사람에게 전씨 자신이 조속한 증언의 실현을 요구하면서 「나름대로의 진실」 을 밝히겠다고 한 것은 노태우 대통령에게 자신의 불만스러운 입장과 심경을 직접 전달하겠다는 의도로 보여진다.
청와대측이 정구영 민정수석비서관을 보낸 것도 사실은 백담사 쪽의 불만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을 진정시켜보자는 의도가 깔려있었다고 볼 수 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노 대통령은 전씨 측에 선이 닿을 수 있는 인물들을 불러 백담사문제의 연내조기해결을 누차 약속했고 그에 대비, 민정당 당직개편까지 했다.
채문식 의원· 이상익씨 등을 보낸 것도 반 설득 반 위로의 의미였다. 이런 맥락에서 추석 직전 정 수석비서관을 보내 위로의 정을 표하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씨는 정 수석비서관에게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심경을 솔직히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가 정 수석에게 한 말은 대체로 그 주변인사들에게 해 온 것과 비슷한 내용들이다. 즉 『그 동안 참고 기다린 것은 나의 증언이 일파만파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 반 이상 참고 기다려도 해결될 조짐은 보이지 않고 노 정권이 맡아 해결해 주리란 기대를 걸 수 없는 형편』 이라는 것이다.
전씨는 심지어 『참고 기다리면 나에 대한 유언비어가 어느 정도 사라질 것으로 기대했으나 민정당이 보호막이 되어주기는 커녕 나의 「비리」를 이용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고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전씨는 따라서 『더 잃을 것도 없는 판에 내가 부당하게 비판받고 있는 부분과 왜곡된 역사의 진실만은 밝혀야하겠다』며 무조건적인 공개증언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전씨 측이 이런 단호한 결심을 한 배경은 분명치 않다. 백담사 캠프내에서도 협상을 통해 증언문제를 해결하자는 의견 (이양우 변호사 등) 과 어떤 형태든 증언 없이 해결이 불가능하므로 여야 합의가 안되면 기자회견 등 독자해명을 해야한다는 강경 입장이 엇갈려 있었다. 전씨는 후자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노 대통령이나 민정당이 5공문제의 완전동결을 주장하면서 연내 일방종결선언을 준비하고 있지만 그것이 야당에 먹혀들리 없고 국민에게도 거의 설득력이 없을 것은 분명해 사태가 장기화 할 우려가 있는 데다 근본적으로 전씨 측은 노 정부의 해결능력뿐 아니라 해결의지 자체를 회의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여 증언 않는 게 최상>
정부나 민정당 측은 전씨의 이와 같은 불만스러운 통고에 대단히 당황해 하고 있는 것 같다. 민정당은 전씨 증언은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연내 일방종결선언으로 매듭짓겠다는 방안을 결정한바 있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안 된다는 것은 그들 자신도 잘 알고있다.
따라서 일방종결을 선언한다해도 전씨의 거처를 백담사에서 서울이나 다른 곳으로 옮겨줄 수가 없고 전씨가 마음대로 대로를 활보할 수 있도록 해줄 수도 없다.
민정당 측이나 정부가 5공 청산문제를 완전히 원점에서 재검토하게 된 것도 반드시 당직개편뿐 아니라 이와 같은 사정 때문이다.
민정당으로서는 전씨의 증언이 실현될 경우에는 그것이 6공의 정치질서나 노 대통령에게 정치적 타격을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잘 통제된 형태로 진행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정치자금이나 12·12, 5·17에 대해서는 신중히 대처해 주고 5공 비리나 광주의 책임문제를 전씨가 뒤집어 써주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엔 차라리 증언 없는 방식의 해결을 시도하려는 생각이다.
민정당이나 노 정부가 그 동안 사실상 거의 끝난 정호용 의원문제를 다시 끄집어내는 것도 그런 맥락인 것 같다. 즉 전씨 증언의 비중을 약화시킬 보상책이 필요하게 됐다는 말이다.
정 의원의 공직자진 사퇴는 이미 노 대통령 양해하에 없었던 문제로 매듭지어졌다. 지난7월 말 청와대에서 두 사람이 만났을 때도 이런 방침이 재확인됐던 것이다.
하지만 전씨 증언 문제가 다급하게 제기되자 민정당 일각에서 차마 공개적으로 꺼내진 못하지만『정 의원이 스스로 물러나 주었으면』 하는 소리들이 새 나오기 시작하고 있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러나 정 의원 측은 김대중 총재가 물러나지 않는 한 물러설 수 없다고 완강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의원문제는 군부문제까지 얽혀있기 때문에 민정당이나 노 정부로서도 다루기가 까다롭다.
설령 민정당이 어떤 방안을 마련한다하더라도 또 야당 측을 설득시켜야하는 부담이 남아있다. 민정당의 판단으로는 야당 측이 5공문제의 완전청산에 쉽게 동조할 리 없을 것이라고 본다.
정 의원의 사퇴 거부-전씨의 증언 요구-야당의 설득이란 문제들은 서로 맞물려 있어 한꺼번에 타결 짓지 않는 한 해결은 거의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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