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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이 16명 살해…강제북송 된 北어민 엽기 살인 미스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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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이 김연철 통일부 장관에게 질의하면서 보고 있는 청와대 관계자의 문자 사진. 북한 주민은 이날 오후 3시 판문점을 통해 추방됐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이 김연철 통일부 장관에게 질의하면서 보고 있는 청와대 관계자의 문자 사진. 북한 주민은 이날 오후 3시 판문점을 통해 추방됐다. [연합뉴스]

정부가 7일 동해상에서 군 당국에 나포된 북한 주민 2명을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했다. 이들은 오징어잡이 배로 조업 도중 16명의 동료 승선원을 살해하고 도주한 혐의를 받고 있는 20대 북한 남성들이다.

엽기적 해상 살인사건 미스터리 #통일부 “난민 인정 안 되는 흉악범” #다른 공범 포함 3명이 16명 제압? #북한군, 어선 추격 못한 것도 의문 #이달 초 나포 5일간 숨기다 추방 #JSA중령, 청와대 직보문자로 드러나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정부는 이들이 살인 등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로 보호 대상이 아니며, 우리 사회 편입 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위협이 되고 흉악범죄자로서 국제법상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해 정부부처 협의 결과에 따라 추방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북한 주민을 추방 형식을 통해 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추방인 만큼 본인 동의 없는 ‘강제 북송’이다.

가혹행위에 불만 선장 살해 … 들통날까 범행

이혜훈 국회 정보위원장이 7일 국회에서 북한 주민의 추방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혜훈 국회 정보위원장이 7일 국회에서 북한 주민의 추방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관계기관 합동조사에 따르면 지난 8월 15일 선장을 포함, 19명이 탄 17t 규모 오징어잡이 어선이 북한 김책항을 출발했다. 배에서 살인사건이 난 건 10월 말께. 선장의 가혹행위에 불만을 품은 3명이 공모해 선장을 살해했고, 이를 은폐하려고 당일 동료 선원 15명을 한두 명씩 모두 죽였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혜훈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은 오후 국가정보원의 비공개 현안보고를 받고 “살인 용의자 3명은 한밤중에 선장을 살해했고, 취침 중인 선원들을 근무 교대 명목으로 깨운 뒤 둔기로 가격해 죽였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범행 후 도피자금 마련을 위해 다시 김책항으로 돌아갔으나 1명이 검거되자 나머지 2명이 북방한계선(NLL) 인근까지 도주했다. 정부 당국자는 “해군이 지난달 31일부터 수상한 북한 선박을 발견해 경고사격했지만 불응한 채 NLL을 맴돌았다”며 “이틀간 단속 끝에 나포했다”고 말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에서 “해군 특전요원들이 (배로 들어가) 제압했다”고 밝혔다. 군은 배와 선원 2명을 동해 군항으로 데려왔다.

나포 뒤 이 2명은 귀순 의사를 밝혔지만 정부는 불허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도주를 계속해 귀순의 진정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웠고, 조사에서 범죄를 파악해 북한이탈주민법상 보호 대상으로 적용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북한이탈주민법은 테러 등 국제형사범죄, 살인 등 중범죄자나 위장탈북자 등은 보호 대상에서 제외한다.

통일부 당국자는 “5일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통해 이들의 추방 의사를  전달했고, 북측이 6일 수용하겠다고 답변했다”며 “다만 북측도 이 사안에 대해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8일 선박도 북측에 인도할 방침이다.

엽기적인 해상 살인사건을 놓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도 의문 제기가 이어졌다. 3명이 16명을 제압해 살해할 수 있는지, 북한군 선박이 속도가 느린 오징어잡이 어선을 왜 추격하지 못했는지 등이다. 이정현 자유한국당 의원은 “16명이 차례로 살해되길 기다렸단 얘기냐”고 지적했다. 나포된 2명은 “시신을 바다에 유기했다”고 진술했다. 정부는 이 2명에 대한 구체적 정보는 밝히지 않은 채 어민이라고만 했다.

도피자금 구하러 김책항 돌아갔다 1명 잡혀

이날 강제 송환은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 언론사가 촬영한 청와대 관계자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노출되며 알려졌다. 공동경비구역(JSA) 대대장(중령)이 이날 오전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관계자에게 보낸 해당 메시지는 “단결! OOO중령입니다. 오늘 15시에 판문점에서 북한 주민 2명을 송환할 예정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지난 11월 2일 삼척으로 내려왔던 인원들이고, 자해 위험이 있어 적십자사가 아닌 경찰이 에스코트할 예정입니다. 송환 관련해 국정원과 통일부 장관의 입장 정리가 안 되어 오늘 중 추가 검토할 예정입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문자메시지가 노출된 이후에야 정부는 긴급 브리핑을 했다. 나포 이후 추방 직전까지 닷새간 국민들에게 숨긴 게 된다. 일부 야당 의원들은 정부의 사실 은폐 여부와 범죄 혐의자라 해도 본인 의사에 반해 송환하는 게 합당한 결정인지 따졌다. 예산결산위원회 김재원 위원장(자유한국당)은 이낙연 총리에게 “북한 주민도 우리나라 국민이고, 또 현재 (헌법 규정상, 북한도 우리) 관할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는 (살인 혐의를 받는 북한 주민을) 우리나라 법정에 세워 처벌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 총리는 “(송환한 것은) 난민법과 북한이탈주민보호법 대상이 아니라는 판단이 제일 컸고, 조사를 하고 법적 처벌을 한다 했을 때, 현실적으로 진실규명이 이뤄지기 힘들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 정권이 귀순한 북한 주민을 범죄에 연루됐다고 주장하는데, (남한 정부가) 전부 송환하지 않을까 신호를 줘서 (귀순하려는 북한 주민에게) 엄청난 공포심을 조장해 귀순 자체를 막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고 체계 논란도 일었다. 판문점 현장에 근무 중인 중령이 청와대 고위 관계자에게 직보한 게 적절한지를 두고서다. 이주영 한국당 의원은 “왜 국방부 소속 군인이 송환 과정에 개입했고, 이걸 청와대 관계자에게 문자메시지로 보고한 것인지 규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군 관계자는 “직보 금지 규정은 없어 (규정) 위반이라고 못 박기는 어렵다”면서도 “비선 보고처럼 보여 좋은 모습이 아닌 건 맞다”고 말했다.

백민정·이근평·윤성민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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