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벼른 만큼 못 캔 국감 1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법사위 폭탄주사건으로 상징되듯 지난 1주일간의 국정감사는 침체와 부진, 게다가 망신살까지 뻗쳐 수준이하인 것 같습니다.
-야당은 공안정국 하에서 당하기만 하던 것을 역전시키겠다고 별렀습니다만 기대에 그게 못 미치는 것으로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건 무엇보다 야당의 전략적 착오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여요. 국감의 원래 목적이 예산심의와 입법활동을 위한 회계·정책감사인데 주로 정치성 폭로에 초점을 맞췄어요.
-그렇죠. 지난해에는 그래도 5공을 마무리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그런 게 의미가 있었습니다만….
-정부·여당이 용의주도하게 알맹이 없는 자료를 검토할 여유도 없이 내놓고 박재규·이교성 의원 사건등이 잇따라 터진 것도 국감을 위축시키는데 일조를 한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부정·비리에 관한 제보가 적었던 점 같습니다. 야당의원들은 한결같이 정보부족에 허덕였는데 한 야당중진은『기껏 들어오는 것도 잔챙이 뿐』이라고 푸념하더군요.
-그것도 정부가 자료통제와 사정활동을 강화해 정보유출을 강력히 견제한 탓도 있지요.
-그래도 야당은 상황실을 설치하고 총재들이 직접 의원과 그 보좌관들을 불러 독려하는가 하면 매일 질문할 원고를 보고케 하고 활동도 점점, 집중 추궁할 부분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총재가 직접 신문스크랩을 검토하는 통에 평소 점잖게 침묵을 지키던 의원까지 나서고 있어요. 평민·민주당에선 암행감사까지 하고 있다 죠.
-평민당이 상위마다 민정당 정치자금 관련비리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중앙당 차원의 지시라고 합니다.
-민정당도 지난해 완 다르게 적극적입니다. 애초 올해는 3야당 공조도 시원치 않고 5공 비리는 이미 다 걸러 야당의 공세를 쉽게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계속 뭔가가 터져 나오자 고위층이 몹시 불쾌해 했다는 겁니다. 『회초리 들고 지켜보겠다』는 노 대통령의 말도 있었고….
-그래서 그런지 지난 주말부터는 상위마다 야당발언에 제동을 거는 의원들이 생겼습니다.
-행정 위의 경우 김중위·양경자(민정) 의원이 우익 플래카드·철거용역회사문제 등에서 일일이 대야공세를 폈어요.
-법사위의 박희태 의원(민정)도 활동이 눈부셨죠. 홍영기 의원(평민)이 보안법의 불고지죄가 악법이라고 따지며『당신 아버지가 북한에 갔다 오면 고발하겠느냐』고 물었는데 박 의원이『우리 아버지는 그런데 안가』라고 농담을 던지는 바람에 폭소가 터져 맥이 끊어져 버렸어요.
-보도에 대해서도 묘안을 내 대처하더군요. 정부·여당은 야당의원들이 미리 질문서를 돌려 해명하기도 전에 보도되는데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몇 번 당하던 서울시는 야당의원들의 질문서를 입수, 아예 답변서를 보도자료로 만들어 질문 시작 전에 돌려 재미를 봤습니다.
-충격적인 폭로거리가 없어서인지 부정확한 제보로 공격만 하는 의원도 있습니다.
이찬구 의원(평민)은 군 출신 대사들에게『돌격과 섬멸만 배운 절대적 체질』『찔러 총과 개머리판에 익숙한 사람들』이라고 인신모독 성 발언을 해 품위논쟁이 일었죠.
-국방위의 김 현 의원(공화)은 모든 군 계약에 비리가 있는 것처럼 얘기해 민정당의 항의로 속기록에서 삭제했고 권노갑 의원(평민)은 장비구입 비 2조원을 낭비했다고 따졌으나 국방부 측의 맹 반격을 받았죠.
-성역으로 알려진 국방예산이 감사대상으로 거론된 것이 하나의 성과라면 성과죠.
-지난해 5공 비리 특위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한 부실기업문제·토지공개념과 관련해 재벌의 여신 및 부동산투자문제등이 집중 추궁된 것도 성과로 들 수 있지요.
-반면에 야당이 벼르던 공안사건문제는 제대로 아픈 공격을 못했습니다. 의원들이 핵심 없는 유세 성 질문으로 일관한데 반해 검찰 측은 야당의 공격목표를 일일이 점검, 대응논리를 개발해 놓았더군요. 서경원 의원의 변호인단인 평민당 법사위소속 의원들을 국감 법 상의 제척 사유로 건 것도 그중 하나죠.
-전교조문제도 정부의 태도가 강해서인지 손톱자국도 못 낸 느낌입니다. 손주환 의원(민정)은 오히려『불법행위를 방치했다면 그런 정부는 있으나마나』라고 역공세를 폈어요.
-사실 야당도 목소리는 높였지만 전교조문제는 뜨거운 감자로 보고 있는 것 아닙니까.
-사실은 여당 측도 문제가 많습니다. 정책감사의 모범을 보이겠다고 큰소리 칠 때는 언제고 야당 측 잘못을 꼬집고 방해만 했지 감사하는 태도는 전혀 볼 수 없었습니다. 다른 상위도 마찬가지지만 행정 위의 경우 전국구의원 2명은 전혀 자료신청도 안 했어요.
-다른 사위에서도 민정당 의원들은 감사보다는 야당질문봉쇄 역할이나 하자는 식이에요.
-지방감사는 정말 문제예요. 건설 위는 감사반 구성도 지역연고에 따라 했지만 모두 감사보다는 지역구 민원처리에 급급했어요.
-유준상 경과위원장은 호남지역을 돌며『우리는 도정비리를 따지러 온 게 아니라 수해피해문제로 왔다』며『지방발전을 위해 건의할 게 뭐냐』고 감싸고 나왔는데 다른 위원회에서도 광주·전남지역에는 평민당이 우호적으로 나오니 대체로 잠잠하고 친선격려 성 발언들이 많았어요.
-이철용 의원(평민)은 보사위의 대구시감사에서『대구는 뭔가 믿는 데가 있는 모양인데…』『소수 TK가 부귀영화를 누리는데…』라고 지역감정을 은근히 자극하더군요.
-울진 원전 감사에 나선 동자 위는 오지로 다닌 탓인지 이동 6시간, 질문 2시간이었고 영광원전도 2시간으로 감사를 때우는 주마간산이었어요.
-법사위는 야당이 단단히 벼른 상위인데도 서울고검·지검은 하루씩만 하고 부산·대구 등은 이틀씩 잡았어요. 그러나 폭탄주사건이 터지자 제주출장은 취소하고 서울감사를 하루 더 늘린답니다.
이렇게 국감이 난조를 보인 탓인지 소위 국감스타로 꼽을 만한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전교조문제를 다룬 이 철 의원 정도가 될까요…. 그나마도 일부 발언을 스스로 취소하고….
-사실 스타를 거론한다는 자체가 국감을 폭로성으로 몰아가는 측면도 있으나 그 말 자체가 별로 적절치 못한 것 같습니다.
-로비와 관련해서는 말이 많았는데 대기업과 연관 있는 J·K 의원들의 로비 설은 나왔지요.
-국방위 해군본부 감사 땐 의원들이 잠수함 건조문제를 두고 이를 맡은 대우조선 부실문제가 계속 추궁됐는데 배후에 모 측의 로비가 있었다는 소문도 나왔죠.
-재무위도 일부 불참한 은행장문제로 시간을 끌었으나 정작 출석한 은행장에게는 질문도 제대로 안 해 뒷맛이 개운치 않더군요.
-피 감 기관에서 민정당 의원을 통해 분위기를 잡아 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있어요. 어느 위원회에선 민정당 의원들이 호텔에서 야당의원들을 불러 밤늦게까지「고스톱」을 치는 바람에 다음날 감사장에 모두 부스스한 얼굴로 나온 일도 있습니다.
-법사위에서 오유방·박희태 의원이 폭탄주로 야당의원들을 녹여 놓은 것도 비슷한 경우예요.
-저질발언·한 건 폭로주의가 아직 판을 쳐 국감이 정상궤도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인데 결국 국감의 성패는 제도보다 의원의 자질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동안 1주일을 보면 기대이하인데 그나마 수확이 없지 않습니다. 이를 발판으로 나머지 감사를 지켜봅시다. <정리=김진국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