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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방한러시의 대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연의 일치인진 몰라도 최근 들어 미국과 소련의 고위급인사들의 서울 나들이가 가히 러시를 이루고 있다.
지난 한달 사이에 모스배커 미 상무장관이 다녀갔고 얼마 안돼서 서울올림픽1주년기념학술회의에 고르바초프 소련서기장의 외교자문 역인 아르바토프 미-캐나다 연구소장과 아시아담당 외무차관 직을 최근에 물러난 카피차 소련과학아카데미 동양학연구소장 등 외교거물급들이 참석했다. 뒤이어 댄 퀘일 미국부통령이 사흘간 서울을 방문했다.
우리는 해방 직후 한반도의 장래를 놓고 자기들끼리 협상을 하고, 합의도 하고, 경쟁도 했던 이들 두 강대국들이 이 시기에 다시 서울에 몰려오고 있는 현상의 상징성에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된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한국은 이제 국력 면에서나 국민의 의식수준, 그리고 국제사회에서의 위상 면에서 주변 강대국들의 전횡을 용납하지 못하게 할만큼 성장했다. 국제환경도 강대국이 약소국의 장래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개명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거의 치욕적이고 비극적이었던 경험을 거울삼아 미소의 서울러시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우리의 확고한 입장을 천명할 필요를 절실하게 느낀다.
본질적으로는 서울에 접근하고 있는 미-소의 기본 이해는 40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 우리는 본다. 퀘일 부통령은 한편으로 대한 안보공약을 재 다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FX기 문제를 필두로 한미간의 무역 현안에 대해 보다 강도 높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소련 측은 민간수준의 학술회의에 외교실력자들을 참석시켜 역시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보다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된다는 점을 미끼로 던져 가며 강조했다.
카피차 소장은 한-소 교역량이 대중국교역량과 맞먹는 30억 달러 정도가 되면 정치관계까지도 발전할 수 있다는 이른바 선 교역-후 수교 안을 제시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아르바토프 박사가 남-북한 교차승인 문제에 대해 분명히 북한측의 반대입장과 차이가 있는 견해를 표명했다는 점이다. 즉 그는 남-북한간에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교차승인안도 괜찮다는 여운을 남겼다.
사실 소련의 급속한 한국 접근 자체가 그런 의사의 표명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미국과 소련의 갑작스런 방한러시는 여러 가지 긍정적 측면도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미국이나 소련이나 다같이 우리에게서 얻고자 하는 것은 자국의 경제이익이다.
미국은 우리시장의 개방과 자국비행기의 판매를 위해 압력을 가하고 있고, 소련은 그들대로 우리 기업의 투자와 경제협력을 얻기 위해 여러 가지로 듣기 좋은 발언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응도 분명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우리 역시 우리의 이익을 가장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련 외교거물들의 방한이 혹시라도 경제성을 무시한 대소투자의 환상을 결과해서도 안되고 북방정책의 진전을 위해 실익을 양보하는 정책이 나와서도 안될 것이다. 미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대미통상협상에 있어 가령 일방적인 양보나 굴복은 일시적으로 미국을 만족시켜 한미관계가 돈독해질지 모르나 국내의 반미감정을 더욱 심화시켜 결과적으로 한미관계가 더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이점을 미 측에 잘 설득시킬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한국은 미-소의 서울러시에 현혹되지 말고 냉철한 계산으로 국익 우 선의 전략을 짜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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