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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18% 그레이 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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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동현
이동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동현 산업1팀 차장

이동현 산업1팀 차장

지난주 ‘18% 그레이’에 대한 글을 쓴 뒤 독자 메일을 받았다. 최근 디지털 사진은 HDR 기술을 이용해 명부와 암부의 계조가 모두 살아있는 사진을 만들 수 있는데, 필름이 관용도가 더 높다고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동의하기 어렵다. 구글은 다양한 노출의 사진을 합치는 ‘나이트 사이트(Night Sight)’ 기술을 개발했다. 최근 출시한 픽셀4 스마트폰에 장착했는데 장노출을 하지 않아도 밤하늘 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사실 이 기술은 일종의 합성이다. 필름 사진 시절에도 합성은 있었으니 새로운 기술이라고 하기 어렵다. 매개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옮겨갔을 뿐이다. 사람의 눈은 명부와 암부의 계조를 모두 구분한다. 하지만 빛을 받아들여 감광면에 상(像)을 맺히게 하는 사진에선 한 번의 노출로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의 눈이 얼마나 놀라운지, ‘있는 그대로의 피사체’를 사진으로 옮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합성 없이 한 번의 노출로 상을 맺히게 한다면 디지털은 아직 필름을 따라잡기 어렵다. 이미지 보정 애플리케이션인 어도비 ‘라이트룸’에서도 필름 현상 과정의 닷징(밝게 만드는 것)과 버닝(어둡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지만 디지털 사진에선 디테일을 살리기 어렵다.

디지털 사진에서도 ‘18% 그레이’는 필요하다. 다만 필름 시절엔 18% 반사율을 갖는 회색 종이를 측광해서 기준으로 삼던 것이 카메라 안으로 내장됐을 뿐이다. 색온도가 다른 조명 아래서 찍은 사진이 모두 자연스러운 건 디지털 세상에서도 ‘18% 그레이’ 원칙 때문이다.

현실 세계는 흑과 백으로 나눌 수 없는 아날로그의 세계다. 아군과 적군 사이에는 내 편도 네 편도 아닌 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세상 이치가 그렇다.

이동현 산업1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