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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50만년 된 임진강 8경 중 으뜸 ‘임진적벽’ 훼손…알고보니 공공기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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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장좌리 임진강. 어선을 타고 둘러본 임진강은 풍경화를 보는 듯한 절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넓은 푸른 강물을 배경으로 깎아지른 듯한 높이 20m 정도의 수직 절벽을 이룬 주상절리가 임진강 남단에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주상절리 군데군데에는 돌단풍이 붉은색으로 물들어 물감을 뿌려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임진강 8경’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임진적벽’이다.

이런 임진적벽 절경 가운데인 적성면 장좌리 주상절리 한 구간이 이가 빠진 것처럼 흙이 드러난 채 훼손돼 있었다. 주상절리 상단 10여m 구간에는 현무암 절벽이 보이지 않았다. 이곳 20m 아래 강변 바닥에는 떨어내 내린 대형 바위들이 흩어져 있었다. 아래쪽 주상절리에는 흙더미와 현무암 바위, 뽑혀진 수목 등이 뒤덮고 있었다.

지난 21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장좌리 임진강 주상절리 ‘임진적벽’. 공사로 파괴된 주상절리 모습. 전익진 기자

지난 21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장좌리 임진강 주상절리 ‘임진적벽’. 공사로 파괴된 주상절리 모습. 전익진 기자

어선을 몰아 현장을 안내한 어민 이영희(59·파평선단장)씨는 “임진강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고 있는 ‘임진강 8경’ 중 으뜸으로 치는 50만 년 전에 형성된 임진적벽이 지난 15일부터 파괴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민들은 뒤늦게 주상절리 파괴현장을 발견한 뒤 공사업체와 파주시에 항의하고 파주환경운동연합과 함께 공사중단 및 원상복구를 촉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탄강 주상절리 세계지질공원 추진과 대비”  

이씨는 “인근 포천시 등은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주상절리 등 한탄강 지질자원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받기 위해 박차를 가하는 것과 비교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마당에 파주에서는 공공기관이 양수장 개보수 공사를 위한 진입로 조성을 이유로 임진적벽을 파괴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세계적인 지질자원이자 절경인 파주 임진적벽을 보호하기 위해 공사를 즉각 중지하고 원상복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지난 21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장좌리 임진강 주상절리 ‘임진적벽’. 공사로 파괴된 주상절리 모습. 전익진 기자

지난 21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장좌리 임진강 주상절리 ‘임진적벽’. 공사로 파괴된 주상절리 모습. 전익진 기자

한국농어촌공사 파주지사에 따르면 이번 일은 1973년 준공 이후 40년 이상 지난 장파양수장을 보수해 재사용하기 위한 사업 과정에서 진입로 조성 중 빚어졌다. 한국농어촌공사 파주지사 관계자는 “설계 과정에서 해당 구간이 임진적벽 구간인지 몰랐고, 설계대로 공사했던 것”이라며 “현재 공사를 중단한 상태에서 임진적벽이 아닌 구간으로 공사 진입로를 새로 내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파주시 관계자는 “해당 공사는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인허가 사안”이라며 “현장 조사결과를 토대로 허가사항 위반 행위가 확인되면 원상복구 조처를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적벽 보호 위한 법적 조치 필요”    

이와 관련, 파주환경운동연합은 21일 성명을 내고 “파주시, 환경부, 문화재청 등은 시급히 임진강 파주 구간의 적벽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조치를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노현기 파주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은 “한국농어촌공사는 현재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아미리 임진강에서도 주상절리를 훼손하며 양수장 조성공사를 벌이면서 환경 파괴 논란을 빚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점을 볼 때 한국농어촌공사 측은 주상절리와 임진적벽의 가치를 모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지난 21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장좌리 임진강 주상절리 ‘임진적벽’. ‘임진 8경’ 중 으뜸으로 꼽히는 아름다운 풍광이다. 전익진 기자

지난 21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장좌리 임진강 주상절리 ‘임진적벽’. ‘임진 8경’ 중 으뜸으로 꼽히는 아름다운 풍광이다. 전익진 기자

임진적벽은 12만~50만년 전 북한의 강원 평강군 부근 오리산에서 화산폭발이 일어나면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무암 지대에 임진강이 흘러 침식 현상이 나타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수직 절벽이다. 해 질 무렵 붉은 저녁노을이 임진강에 반사돼 수직 절벽을 붉은빛으로 물들이기에 ‘적벽’이라고 불린다. 임진적벽은 문산읍 임진리와 적성면 어유지리의 8개 구간 18㎞에 걸쳐 있다. 임진적벽의 아름다운 풍광은 조선 시대 화가 겸재 정선의 ‘임진 적벽’이라는 진경산수화에도 그려졌다.

파주=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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