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절차 합법성 여부 새 불씨|문 목사 공판 왜 시끄러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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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밀입북사건의 신호탄이자 공안정국으로 이끈 계기를 마련했던 문익환·유원호 피고인에게 각각 무기가 구형됨으로써 일단 1심 절차가 마무리, 선고 만 남게됐다.
이 사건은 통일논의를 둘러싸고 각계 각층의 큰 관심을 불러모았던 만큼이나 재판진행 과정도 순탄하지 않아 재판부 기피신청, 피고인과 변호인 퇴정 속의 결심공판 강행은 합법성 여부를 둘러싸고 또 하나의 불씨를 남겼다.
공안사건 재판에서 변호인단·피고인이 모두 퇴정한 채 결심이 된 것은 85년 9월25일의 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이후 4년만의 일.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해 재판부·변호인·피고인·방청객 등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고 대립이 첨예한 사건일수록 법정질서가 유지되어야 하고, 특히 변호인과 검찰측의 페어플레이가 이뤄져야 한다고 아쉬워하고 있다.
문 목사 재판은 6욀26일의 첫 공판이 방청석 앞부분에 경비경찰이 너무 많다는 방청객들의 항의로 45분간 휴정된 것을 비롯, 재판 때마다 소란이 계속됐다.
또 7월10일 열릴 예정이던 2차 공판은 방청객들의 소란행위로 재판이 진행되지 못한 채 문 피고인의 3남 성근씨(36)등 방청객 2명이 법정소란과 관련, 각각 감치10일을 선고받고 안양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결국 18일 결심공판에서 법정소란 혐의로 감치10일을 선고받은 고대생 1명을 포함하면 문 목사 사건 재판과정에서 모두 3명의 방청객이 각각 감치10일씩을 선고받았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8차례의 재판에서는 방청객들이 피고인들의 입정·퇴정 때마다 박수를 쳐 이를 제지하는 재판부와 심한 갈등을 빚기도 했다.
결심에 앞서 박원순·한승헌 변호사 등 변호인단은 18일 재판부가 ▲충분한 사실 심리없이 결심을 강행하려 하며 ▲변호인 측 증인신청을 기각하는 등 공정성을 잃었고 ▲변호인의 피고인 반대신문 과정에서 수 차례에 걸쳐 제재를 했다는 등 이유로 재판부 기피신청을 냈다.
변호인단은 또『간첩죄 등이 적용된 피고인들에게는 치밀한 증거조사를 마친 뒤 선고해야 하는데도 재판부가 구속기간 만료일이 임박(10월12일)했다는 이유로 선고를 서두를 우려가있다』며『피고인들을 석방시킨 뒤 자유로운 방어권을 행사토록 해달라』고 보석허가 신청을 재판부에 냈었다.
변호인단은 또 밀임북을 주선, 기소중지 상태인 재일동포 정경모씨(65)와 한민통 의장 곽동의씨, 이홍구 통일원장관 등을 증인으로 신청했었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변호인단의 재판부 기피신청이나 증인신청도 재판절차상의 잘못은 없으나 다분히 재판진행을 지연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지적하고있다.
문피고인 등의 1심 구속만기 6개월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만기까지 선고가 안되면 석방해야 한다는 규정을 염두에 둔 작전이라는 것.
피고인의 충분한 방어권 행사를 목적으로 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재판부를 곤경에 빠뜨릴 함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조총련계로 알려져 피의자 신분인 정경모·곽동의씨 등은 현실적으로 출석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뒤늦게 증인으로 신청한 것은 자칫 재판부의 감정을 건드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원만한 재판진행은 1차적으로 재판부의 책임임은 물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판부는 변호인단의 어떤 요구에도 적절히 대처할 수 있도록 시간여유를 갖고 재판을 서둘러야 했다.
구속만기를 20여일 앞두고 결심을 늦출 수 없는 초읽기까지 몰린 것도 잘못이지만 변호인·피고인이 모두 퇴정했을 때엔 주말에 특별기일을 한 번쫌 더 잡아 결심을 늦추는 등 원만한 진행이 바람직했다는 게 중론.
특히 18일 저녁 피고인이 증거에 대한 인부(인부)표시 없이 묵비권을 행사한 상태에서 수사관들을 불러모아 증거조사를 강행한 것은 감정을 앞세운 감이 없지 않다는 지적이다.<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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