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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열에 커지는 위법 논란…한남3구역 시공사 선정 무산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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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3구역 시공사 선정 입찰에 제시된 조감도들.

한남3구역 시공사 선정 입찰에 제시된 조감도들.

창과 방패, 수(手) 싸움. 재건축·재개발 시장에 업계와 당국 간 치열한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와 재개발 시공사 수주전에서다. 조합·건설사 등 업계가 규제를 피하기 위해 제도의 틈새나 허점을 집중 공략하면서 되레 정부의 ‘칼’을 불러들이는 역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커졌다.

조합·건설사 규제 '틈새' 노리기 #'재산상 이익 제공' 논란 가능성 #입찰 무효나 시공권 박탈 될 수도 #규제 피하려다 더 센 규제 자초

지난 18일 대형 건설사 3곳이 입찰에 참여한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3재개발구역 시공사 수주전. 대림산업은 재개발 단지에 건립이 의무화된 임대주택을 통째로 매입해 민간임대주택으로 일정 기간 활용한 뒤 분양전환(소유권 이전)한다는 ‘임대 0’를 제시했다.

서울에서 유례가 없었던 안이다. 재개발 임대주택은 지금까지 서울시가 표준건축비를 주고 매입해 재개발 철거민 등을 위한 공공임대로 썼다. 대림산업 계획은 잠시 임대주택 모양새만 갖출 뿐 사실상 일반주택 수요자에게 고가에 매각하는 것이다.

이 회사는 관련 법에 ‘조합이 요청할 경우’ 공공에 매각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서울시는 손사래를 친다. 서울시 관계자는 “조례에 시장에게 우선권을 주게 돼 있다”며 “서울시가 서민용 임대주택을 거부할 리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아예 재개발 임대주택 민간 매각을 원천적으로 막는 법령 개정안이 국회에 올라가 있다. 정동영 의원(민주평화당)이 지난달 말 대표 발의한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은 ‘조합이 요청하는 경우’ 문구를 뺐다. 그렇게 되면 공공이 의무적으로 인수해야 한다.
 건축 규제 완화를 받아 짓는 재건축 임대주택은 공공에게만 매각해야 한다.

경미한 대안설계만 허용

한남3구역에 입찰한 건설사들이 화려한 조감도를 만들었다. 조합이 만든 설계에 없는 내용을 보탰다. 대안설계나 혁신설계라는 명목이다.

국토부가 2017년 말 시공사 입찰 때 설계 관련 규정을 만들었고 서울시가 이에 따라 지난 5월부터 사업 승인 받은 설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설계의 허용 범위를 경미한 변경으로 간주하는 10% 이내로 못 박았다.

건설사들은 대안설계가 10% 이내에서 변경하겠다는 것이지만 10% 범위를 초과하는 혁신설계에 대해선 ‘아이디어’ 차원이라고 말한다. 시공사로 선정되면 조합과 협의해 설계 변경 등 적법한 절차를 밟겠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혁신설계안이 건축심의 등을 통과해 실현될지 미지수다.

더 큰 문제가 있다. 혁신설계가 법에서 금한 ’재산상 이익 제공을 약속하는 행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제공하는 행위만이 아니라 약속도 위법이다. 업체들은 혁신설계에 들어가는 추가비용을 무상으로 제시했다. 한 업체는 혁신설계 비용을 700억원대로 잡고 있다. 시공사로 선정되면 700억원대의 재산상 이익을 주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업체들의 ‘무상제공품목’도 마찬가지다. 세부적인 품목 내용은 공개되지 않지만 말 그대로 무상으로 주겠다는 품목이다. 이 품목에 혁신설계 비용이 들어있기도 하다.

이주비·사업비 무이자 대여, 추가분담금 납부 시기 연장 등도 재산상의 이익 제공으로 볼 수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정비사업 불법은 국민에게 악영향이 큰 '생활적폐'"라며 “법 위반이 있는지 한남3구역 시공사 선정 입찰 내용을 면밀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입찰 제안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면 입찰이 무효가 된다. 불법에 대해서는 시공권 박탈 등의 처벌이 따른다.

한남3구역은 뒤로 남산, 앞으로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뛰어난 입지여건을 갖추고 있다.

한남3구역은 뒤로 남산, 앞으로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뛰어난 입지여건을 갖추고 있다.

한남3구역 수주전뿐 아니라 재건축·재개발 시장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제한과 상한제를 피할 수 있는 묘수가 초미의 관심사다. HUG 분양가 규제를 피하기 위해 과천시 주공1단지 재건축 단지가 쓴 후분양이 어려워졌다. 후분양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지상층 골조공사 3분의 2 이상에서 골조공사를 모두 끝낸 공정 80% 이상로 강화됐다. 공정 80%가 되려면 착공 후 2년이 지나야 한다. 그만큼 시간이 비용이 더 들어간다. 이런데도 후분양을 검토하는 단지가 있다.

일반분양분을 임대주택으로 돌리는 방법도 추진되고 있다. 강남권 일부 재건축 추진 단지에서 검토하는 게 임대사업자에게 통매각하는 방법이다. 다른 식으로는 조합에서 민간임대주택사업을 하면 상한제 적용을 받지 않아 임대 후 분양전환 때 가격을 높게 받을 수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정비사업으로 지은 주택은 조합원이나 일반에게 분양하는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통매각하거나 임대하려면 이를 반영해 조합정관부터 시작해 조합 설립, 사업 승인, 관리처분계획 인가까지 사실상 모든 사업과정을 다시 밟아야 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조합이 임대주택사업을 하면 4~8년의 임대의무기간 동안 조합 해산과 청산이 늦어져 사업이 복잡해진다.

상한제 지정되면 통매각 안돼 

이런 업계의 움직임은 정부의 민간택지 상한제 시행을 재촉하는 셈이다. 정부가 지난 1일 상한제보완 방안을 발표하면서 상한제 지정 지역의 하나로 HUG의 분양가 관리를 피하기 위해 후분양하는 경우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관련 법령에 상한제 단지는 통매각할 수 없게 돼 있다. 국토부·서울시의 통매각 불허 방침에도 일부 재건축 단지가 통매각을 강행하고 있다. 법리적인 논란을 떠나 통매각되기 전에 해당 지역이 상한제 지역으로 지정되면 통매각 길이 막히게 된다.

정부의 상한제 보완 방안 이후에도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았다. 업계가 규제를 피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 상황은 정부가 상한제 시행을 서두를 수밖에 없는 쪽으로 굳어지고 있다. 정부로선 후분양으로 뚫린 HUG 분양가 관리 구멍을 막고 틈새를 빠져나가려는 여러 ‘꼼수’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안을 상한제로 보기 때문이다.

강화되는 민간택지 상한제 기준이 22일 국무회의를 거쳐 이달 안에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정부는 민간택지 상한제 전매제한 기간 산정 기준도 고치고 있다. 언제든 상한제 지역을 지정할 준비가 마무리되고 있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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