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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의 진단 "DT 시대 왔다, 앞으로 10년 데이터가 돈 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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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기술(IT)비즈니스에서 데이터 기술(DT) 비즈니스의 시대로 빠르게 넘어가고 있다.”  

한국 IT산업 개척자 중 한명인 김범수(53·사진)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지난 18일 중앙일보에 밝힌 IT산업 진단이다. "과거가 인터넷에 이어 모바일 시대로 이행하는 시기였다면, 현재는 모바일에서 데이터 기술의 시대로 넘어가는 변곡점"이란 얘기다.

[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 판교의 영웅

김 의장은 앞으로 10년은 "데이터가 부가가치를 낳는 시대"이라고도 강조했다. 이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인공지능(AI) 관련 산업이 커질 수밖에 없다. 다양한 방식으로 축적된 빅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사업 모델이 나올 것이란 얘기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중앙포토]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중앙포토]

김 의장은 “앞으로 10년은 결국 AI로 정의될 것"이라며 "물이 끓어오른 것처럼 이제 곧 비즈니스에 적용할 수 있는 레벨의 기술과 사업 모델이 쏟아져 나올 것이고, 이건 결국 시기의 문제”라고 내다봤다. 카카오도 이에 맞춰 AI 연구 조직인 AI랩을 올해 안에 분사해 주요 사업부문으로 육성한다.

중앙일보는 지금의 IT코리아를 있게 한 주역 중 한 명인 김 의장을 지난 몇 달간 쫓았다. 중앙일보가 연초부터 연재중인 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 70회를 맞아 '판교의 영웅' 김범수가 그리고 있는 미래를 엿보기 위해서였다. 그가 임직원·지인에게 그간 밝힌 비전과 이날 기자와의 만남에서 드러난 생각들을 정리했다.

중앙일보가 카카오 김범수 의장과 지난 18일 만난 경기도 성남시 삼평동 H스퀘어 지하 2층 주차장 엘리베이터. 이수기 기자

중앙일보가 카카오 김범수 의장과 지난 18일 만난 경기도 성남시 삼평동 H스퀘어 지하 2층 주차장 엘리베이터. 이수기 기자

앞으로 10년, 데이터가 부가가치 낳는다 

지난 18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H스퀘어 지하 2층 주차장. 카카오의 본사 격인 판교 오피스가 입주한 곳이다. 주차장에서 기다린 지 두 시간쯤 지났을까. 은색 세단이 미끄러지듯 주차장에 들어섰다. 차 문이 열리고 캐주얼 재킷에 면바지 차림으로 낯익은 이가 내려섰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다.

'모바일 시대의 기린아'인 그에게 '앞으로 어떤 기술이 주류가 될지'를 물으니 그는 망설임 없이 데이터 기술의 시대가 올 것이라 단언했다. 무슨 의미일까.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중앙포토]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중앙포토]

"앞으로 10년은 데이터가 부가가치를 낳는 시대"라는 그의 진단은, 전통적인 IT 비즈니스 대신 데이터에 기반을 둔 DT(Data Technology) 비즈니스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필연적으로 인공지능(AI) 관련 산업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이어졌다. 다양한 방식으로 축적된 빅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사업 모델이 나올 것이란 것이다.

올해 안에 인공지능랩 분사 계획

카카오가 모으는 빅 데이터는 지금 이 시간에도 차근차근 쌓이고 있다. 전 국민이 사용하다시피 하는 모빌리티 서비스인 카카오 T도 그렇다. ‘어디에서 어느 장소로 몇 시에 이동하는지’ 등이 모두 활용 가능한 데이터 자원이다. 카카오의 AI랩을 분사한다는 계획도 이런 밑그림 아래에서 나왔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중앙포토]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중앙포토]

'플랫폼+a' 항상 고민한다

거의 전 국민이 사용한다는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플랫폼(카카오톡)'을 가진 카카오에도 고민이 있을까. 실제 올 1분기 카카오톡의 국내 월 순수 이용자(MAU)는 4400만 명을 넘어섰다. 김 의장은 플랫폼을 넘는 그 무엇을 고민 중이다. 그는 “플랫폼만 고수하는 건 답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고객이 원하는 건 끊임없이 바뀌는 만큼, 플랫폼뿐 아니라 경쟁력 있는 지적재산권(IP)까지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카카오의 오늘인 플랫폼뿐 아니라 미래엔 ‘플랫폼+a’가 돼야 한단 의미다.

카카오는 그래서 다양한 서비스를 카카오톡이란 플랫폼에 붙이고 있다. 카카오페이와 모빌리티는 물론 AI 기반 카카오톡 광고(비즈 보드)와 선물하기가 대표적이다. 최근엔 카카오톡으로 메일 보내기도 가능해졌다. 서비스 만이 아니다. 올해 6월 말 현재 카카오는 국내에만 71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해외까지 합치면 계열사는 100개에 달한다.

카카오톡 국내 월 평균 이용자(MAU) 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카카오톡 국내 월 평균 이용자(MAU) 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넷플릭스·아마존에 비하면 아직 멀었다 

하지만 김 의장의 걱정은 여전하다. 플랫폼에 입힐 '앙꼬', 즉 콘텐트가 무엇이냐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 "플랫폼이 아무리 강해도 소비자가 좋아하는 IP가 없다면 결국 경쟁력을 잃게 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해왔다. 현재 IT 관련 서비스 중 가장 돈이 된다는 게임만 해도 그렇다. 그는 "흥행력을 갖춘 게임 업체들은 자체적으로 게임을 퍼블리싱한다"고 했다. 카카오 같은 플랫폼에 자사의 핵심 게임을 내놓지 않는다는 의미다. 카카오 같은 플랫폼 기업 입장에선 IP 제공자(게임업체)로부터 2류 게임만 공급받게 된단 의미다. "그래서 결국 플랫폼 기업도 직접 게임을 만들어 이종 산업과 경쟁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전세계적인 움직임이다.

"미국의 스트리밍 업체인 넷플릭스도 게임·드라마 같은 IP 확보에 온 힘을 기울인다. 세계 최대의 온라인 유통업체인 아마존 역시 제품 판매부터 배송까지 소비자 접점 전반을 직접 관리한다. 그에 비하면 우린 아직 멀었다." 플랫폼 최강자 카카오를 이끄는 김 의장의 우려다.

5000만명이 넘는 이용자 데이터

카카오 매출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카카오 매출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김 의장이 생각하는 카카오의 장점은 무엇일까. 그는 "많은 분야의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진단한다. 국내·외를 합쳐 5000만 명이 넘는 이용자를 기반으로 모빌리티와 뱅킹 같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 온 덕이다. "아직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하진 않았지만, 카카오에 쌓이는 데이터만 잘 분석해도 사람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재화는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다"고도 했다. 카카오는 DT나 AI 시대로의 이행을 위한 기초 체력은 탄탄히 갖췄다는 평을 듣는 이유다.

경기도 성남시 삼평동 H스퀘어 7층의 카카오 내부. [중앙포토]

경기도 성남시 삼평동 H스퀘어 7층의 카카오 내부. [중앙포토]

카카오 역시 기회와 위기 공존 

하지만 그에게 카카오는 여전히 취약한 존재다. “인재와 정보가 모이고 있지만, (카카오는)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는 회사"라고 생각한다. "언제든 자만하면 위기가 닥쳐올 것"이란 표현도 사용했다. "카카오 같은 디지털 기업은 오프라인 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사용자들의 취향 변화에 그만큼 더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란다. 실제 카카오톡보다 앞서 메신저 시장을 장악했던 글로벌 메신저인 왓츠앱(2010년 1월 출시)이나 국내 메신저인 엠앤톡(2010년 2월 출시) 모두 현재는 카카오톡에 밀려 찾아보기 힘든 형편이다.

청년 김범수. 한게임커뮤니케이션 재직 중 한 때. [사진 스리체어스]

청년 김범수. 한게임커뮤니케이션 재직 중 한 때. [사진 스리체어스]

카카오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힘 

국내 대표 ‘연쇄 창업가(Serial Entrepreneur)’인 김 의장에게도 '눈물 젖은 빵'을 먹던 시절이 있었다.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삼성SDS에 입사해 PC 통신인 유니텔을 개발했다. 이후 회사를 나와 한양대 앞에서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PC방을 운영했다. 하지만 자금이 부족해 사채까지 끌어다 썼다. "'실패하면 한강에 간다'는 각오였다"고 지금도 회상한다. PC방 성공을 토대로 게임 개발에 착수, 1999년엔 국내 최초의 게임 포털인 한게임을 설립했다. 2000년 한게임을 네이버와 합병한 뒤엔 NHN을 국내 1위의 포털로 키웠다. 그렇다고 마냥 쉬웠던 것도 아니다. 네이버와 합병 뒤에도 한때 자금 위기에 봉착했다.

당시 그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합병 1년 뒤 '부분 유료화'를 감행했다. 평소 민주적인 리더십을 강조하는 그이지만, 부분 유료화 당시만큼은 "CEO의 뜻이다"란 말로 반대를 무마시켰다. 그가 이 말을 한 건 네이버와 합병을 할 때와 이때 두 번뿐이었다. 이때를 두고 그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행동을 취한 덕에 살아남았다"라며 "현재를 버티고 검색으로 미래를 삼는다"라는 전략이 실현된 순간(『biography 김범수』)"이라고 평가했다.

그에 비해 카카오는 순조롭게 성장 중이다. 김 의장은 "카카오가 오늘에 이른 가장 큰 배경은 카카오 브랜드에 대한 사용자의 신뢰가 덕"이라며 "서비스를 내놓을 때마다 사용자들이 긍정적으로 믿고 써주신 덕에 오늘에 이르렀다"며 이용자들에게 수차례 감사를 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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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아이디어 좋다'만으론 부족

예비 창업가들에게 해주는 조언도 있다. 그는 요즘을 ‘창업하기 만만치 않은’ 때로 진단한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규모가 큰 IT 기업이 많아진 만큼 웬만한 아이디어와 실력만으론 도전하기 만만치 않은 상황이란 의미다. 김 의장은 “‘좋은 아이디어’ 만으로는 부족한 시대”라며 “스스로 축적된 경험과 실력이 무엇이냐를 냉정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사업 범위를 넓게 잡는 것보단 ‘특정 서비스 한 가지를 잘하겠다’는 식으로 좁게 출발한다면 얼마든지 성장의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피자 업체를 한다’는 식으로 해야지, ‘요식업 전반’으로는 성공이 어렵다는 얘기다.

가장 해결하고 싶은 분야는 '교육'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의 1992년 서울대 대학원 산업공학과 졸업식. 아직 앳된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진 스리체어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의 1992년 서울대 대학원 산업공학과 졸업식. 아직 앳된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진 스리체어스]

그에게 가장 해결하고 싶은 분야는 무엇인지를 물었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교육 문제를 가장 풀고 싶다”고 했다. "국·영·수 중심의 현재 교육으로는 다가오는 미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란 게 그의 걱정이다. 그는 과거부터 교육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100인의 최고경영자(CEO)를 육성하겠다’는 약속으로도 유명하다. 비슷한 컨셉트로 "100인의 영재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해볼까"라고 수차례 주변에 타진해 왔다.

김 의장은 이미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 김정주 NXC 대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이재웅 쏘카 대표 등과 함께 교육혁신 단체인 미래 교실네트워크의 실험학교(거꾸로 캠퍼스)를 지원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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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행복할까"가 요즘 큰 고민 

김 의장의 요즘 가장 개인적인 고민은 무엇일까. 그는 기자를 돌아보며 “요즘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며 씩 웃었다. 한게임 창업 후 10년 만인 2009년 그가 행복을 좇아 가족과 1년간 안식년을 보낸 건 유명한 일화다. 그도 쉬었고, 당시 고2ㆍ중3이던 그의 아이들 역시 학교를 쉬며 오롯이 가족만의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그는 "지금도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낸다"라고 말한다. 일밖에 몰랐던 그에게 “지금 행복할 수 없다면, 영원히 행복할 수 없다. (『biography 김범수』)”는 깨우침을 준 시간이다. 대학원 시절 소개팅으로 만나 삼성SDS 재직 중 결혼한 아내와의 부부관계 역시 한결 좋아졌다. 그는 요즘도 평생의 라이벌이자 동료인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 책임자(GIO)와 만나 어떻게 해야 행복할지를 의논하며 골프 등을 즐긴다.

판교=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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