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나의 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나의 나'- 이시영(1949~ )

여기에 앉아 있는 나를 나의 전부로 보지 마.

나는 저녁이면 돌아가 단란한 밥상머리에 앉을 수 있는 나일 수도 있고

여름이면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날아가

몇 날 며칠을 광포한 모래바람과 싸울 수 있는 나일 수도 있고

비 내리면 가야산 해인사 뒤쪽 납작바위에 붙어앉아

밤새 사랑을 나누다가 새벽녘 솔바람 소리 속으로

나 아닌 내가 되어 허청허청 돌아올 수도 있어

여기에 이렇듯 얌전히 앉아 있는 나를 나의 전부로 보지 마.



직장생활을 할 때 상사가 나를 보고 "당신 두뇌는 서랍장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이디어가 풍부하다는 칭찬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생각과 생각 사이에 단절과 비약이 심하다는 충고였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하덕규의 노랫말 중에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라는 구절을 좋아한다. 이렇게 얌전히 앉아 있지만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서 당신뿐 아니라, 내가 쉴 곳도 없다.

<이문재 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