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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달빛이 이리 밝았었나" 세상을 새롭게 본다는 것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40)

내가 사랑하는 빗소리. 강아지도 나도 빗소리를 들으며 비 오는 산막을 즐긴다. [사진 권대욱]

내가 사랑하는 빗소리. 강아지도 나도 빗소리를 들으며 비 오는 산막을 즐긴다. [사진 권대욱]

후드득 후드득 독서당 양철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쐬아아 계곡물 내려가는 물소리, 타닥 탁 타닥닥 연못에 떨어지는 물소리, 나는 이 새벽의 모든 소리를 사랑한다. 어제부터 읽던 '살둔 제로 에너지 하우스'를 다시 읽는다. 친환경 고효율 주택에 대한 저자(서울대 농대 선배)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론 그 열정이 지나쳐 번잡스럽지는 않을까 걱정도 된다.

모든 것이 다 그러하듯,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한 법. 콘크리트 집, 철골조 집, 목조 집 중에 인체 건강에 가장 좋은 집은 목조주택이란 말에 산막 모든 집이 나무집임을 상기하고 내심 안심하는 새벽이기도 하다.

비는 오늘도 계속 내릴 것이다. 나는 비를 사랑하며 비 맞지 않는 안온함을 즐길 것이다. 내리되 다만 지나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의 비 사랑을 돌아본다. 비 오는 산막에선 멍멍이들도 빗소리와 물소리에 차분해지고, 나는 원두막에 높이 앉아 '불자의 행복 찾기'를 읽는다. 나의 업에 따라올 것이 왔다가 인연이 다하면 떠나는 것. 이것이 중생계의 삶이다. 돈도 사랑도 명예도 권력도 출세도 모두가 그러하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생각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잘 써, 그 업보를 극복할밖에. 이 아이들은 무슨 인연으로 내게 왔는가?

비 오는 산막파티가 쉽지는 않겠지만 우의 입고 먹는 저녁밥도 별미일 것이다. 통나무집 방안에서 바라보는 산 안개 또한 절경일 것이다. [사진 권대욱]

비 오는 산막파티가 쉽지는 않겠지만 우의 입고 먹는 저녁밥도 별미일 것이다. 통나무집 방안에서 바라보는 산 안개 또한 절경일 것이다. [사진 권대욱]

쥬방스 합창단과 KBF 중창단이 비 오는 산막에 온다. 닭 파티도 하고 멋진 공연도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비가 내리니 걱정이 된다만, 오랫동안 별러왔고 또 음악 하시는 분들이니 이 정도 자연의 조화쯤이야 즐거운 마음으로 수용하시리라 믿는다. 그렇다. 야외 아니면 어떤가? 천지가 비 맞는 중 오로지 나 하나 비 피하는 그 안온함도 무상의 행복이라 말없이 도취되는 행복에 말 없어도 좋을 산막 아닌가?

옛 사람이 이르기를,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창랑지수청혜, 가이탁오영). 滄浪之水濁兮, 可以濁吾足(창랑지수탁혜, 가이탁오족). 창랑의 물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그 물 흐리면 내발을 씻는다 했고, 노·장 또한 무위자연(無爲自然)과 초경계를 말 하셨으니 오늘은 작파하고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감은 어떠한가?

소요(逍遙)의 유(遊) 지인무기(至人無己) 신인무공(信人無功 성인무명(聖人無名) 지인(至人)은 지극한 경지,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요, 신인(神人)은 신과 같은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이요 성인(聖人)은 명예를 초월한 자이고, 지인무기(至人無己)라 기(己)는 나요, 자기요, 자아이니. 무기(無己)는 사심(私心)이 없는 것이요, 이기심(利己心)을 버린 것이요, 사리사욕(私利私慾)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요, 자기욕심을 떠난 것이다.

무기(無己)는 사심과 사리사욕을 버림으로써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신인무공(神人無功)이라 신(神)과 같이 넓고 큰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하더라도 자기를 내 세우고 공을 자랑하지 않는다. 조그만 자아에 집착하지 않는다. 대수롭지도 않은 일을 자랑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이 무공(無功)이다.

성인(聖人)은 무명(聖人無名)이라 성인(聖人)은 아무리 크고 뛰어난 공적을 쌓아도 그 공적에 따르는 명예를 구하지도 않고 자랑하지 않는다. 자기의 명예와 이익에 집착하지 말라. 이것이 무명(無名)이다. 오늘 우리는 비오는 산막에서 노장(老莊)이 되어보면 어떠한가?

산막 스쿨의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 곡우의 기천문 시범. 잘은 못하지만 많은 분들이 건강법으로 기천문에 관심도 많고 호응도 좋아 조금씩 가다듬어 산막스쿨의 중요한 프로그램으로 성장시킬 것이다. [사진 권대욱]

산막 스쿨의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 곡우의 기천문 시범. 잘은 못하지만 많은 분들이 건강법으로 기천문에 관심도 많고 호응도 좋아 조금씩 가다듬어 산막스쿨의 중요한 프로그램으로 성장시킬 것이다. [사진 권대욱]

집중하고 장작을 팬다. 결대로 갈라진 장작이 예쁘다.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장작을 구비해야겠다. [사진 권대욱]

집중하고 장작을 팬다. 결대로 갈라진 장작이 예쁘다.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장작을 구비해야겠다. [사진 권대욱]

산방한담 후 곡우와 일행들은 기천문을 수련하고 나는 새벽에 독서당으로 출근해 침대를 조립하고 구름 속 만월비경에 감탄한다. 아 달빛이 이리도 밝았었던가? 이리도 아름다웠던가? 세렌디피티!! 새로운 발견이란 이 세상에 없던 것을 새로이 찾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던 것을 새로운 눈으로 새로운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아침저녁 날이 차니 난로가 그리워지고, 야외행사에도 화톳불도 필요하니 이래저래 땔 나무가 필요한 계절이다. 겨울 한밤 들어와 불 피우는 일도 간단치가 않다. 착화제를 썼었는데 그마저 떨어져 장작을 여러 번 쪼개서 불쏘시개를 만들었다. 결대로 쫙 쫙 갈라지는 장작.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일주일쯤 방에 두면 바싹 마를테니 불 붙이기는 여반장. 나무 하나가 그리 소중할 수가 없다. 통나무는 지난번 벌목시 확보한 것들이 산더미처럼 많이 있으니 이번엔 장작 형태로 사야겠다. 겨울이 오면 마음도 급해진다.

㈜휴넷 회장·청춘합장단 단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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