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강하게, 그리고 단번에…풀 뽑으며 배우는 세상 이치

중앙일보

입력 2019.10.06 09:00

[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39)  

산막 세미나실을 공사하는 김에 낡고 썩고 부서진 곳과 말썽이던 전기 시스템도 손보고 있다. 난로도 옮기고, 안 들어오던 전등도 고치고, 조명등도 새로 달고, 모두가 원격으로 이뤄진다. 지난봄 창고로 쓰던 가옥 하나를 개조해 만든 세미나실이다.

점점 발전할 세미나실을 상상해본다. 지성과 소통의 장이 될 세미나실. 모두들 놀러오세요. [사진 권대욱]

점점 발전할 세미나실을 상상해본다. 지성과 소통의 장이 될 세미나실. 모두들 놀러오세요. [사진 권대욱]

동도 트기 전 이른 새벽, 불을 밝히고 히터를 켜고 보일러를 틀어본다. 겨울을 대비하는 것이다. 히터, 보일러, 스크린, 오디오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 눈·비 오는 날이나 추운 날 20여명 정도의 인원이 둘러앉아 세미나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밥도 먹기 맞춤인 공간이다.

펜션을 운영하는 지인 부부가 모처럼 산막에 왔다. 깨진 가마솥도 철삿줄로 꽁꽁 묶고 세미나실 옆 잣나무 전지도 척척하니 보는 마음이 다 시원하다. 자타공인 펜션 산업의 선구자다. 포크레인을 비롯해 다루지 못하는 공구가 없고, 연구심도 뛰어나 기발한 발상을 늘 실천에 옮기니, 책상물림 나는 늘 감탄을 마지않는다.

바쁜 가운데에 한가함을 얻어내고 시끄러움 속에 처했으면서도 고요함을 능히 취할 수 있어야 이것이 곧 안신입명(安身立命)의 공부인 것이다. [사진 권대욱]

바쁜 가운데에 한가함을 얻어내고 시끄러움 속에 처했으면서도 고요함을 능히 취할 수 있어야 이것이 곧 안신입명(安身立命)의 공부인 것이다. [사진 권대욱]

어제저녁, 그리고 오늘 새벽부터 풀을 뽑는다. 저 풀 어느 천년에 다 뽑을까 싶다가도, 잠시 쉬는 틈 바라보면 그래도 성취가 있다. 천릿길도 한걸음부터이요, 시작이 반이라는 말조차 공생한 이 아침. 미움도 아쉬움도 그리고 사랑까지도 뿌리째 뽑으려 애쓰고 있다.

옛 선현들과 수도승들이 농사를 짓고 노동을 했던 이유 또한 같았으리라. 참으로 자연은 많은 것을 가르치니 3년간 이곳에 혼자 머물면서도 외롭거나 두렵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풀 뽑는 울력의 시간 때문 아니겠나 싶기도 하다. 풀 뽑는 것도 요령이니 뿌리를 잘 살피고 넝쿨을 한 아귀에 잡고 짧되 강력한 힘으로 단번에 뽑아야 한다. 아니면 잎만 훑고 뿌리는 남아 후환이 된다.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도 이와 같다. 근본을 다스리지 않고 지엽에 몰입하고 스스로에 관대하다 보면 후일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요 며칠 번민 되는 일들이 있었고, 이제 가닥을 잡아간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천하본무사용인자요지(天下本無事 庸人自擾之, 세상이 본래 아무 일도 없는데 무료한 사람들이 스스로 일을 만들어 번거롭게 한다)인데, 풀 뽑는 마음으로 마음의 잡초를 걷어내고 무명의 어리석음을 걷어내자.

어둑한 밤 오는 소리와 새벽 안개 휩싸인 푸른 여명을 보며 호미 한 자루와 손가락으로 풀을 뽑는다. 마음 속 어지로움도 뿌리채 뽑아버리자. [사진 권대욱]

어둑한 밤 오는 소리와 새벽 안개 휩싸인 푸른 여명을 보며 호미 한 자루와 손가락으로 풀을 뽑는다. 마음 속 어지로움도 뿌리채 뽑아버리자. [사진 권대욱]

이 위대한 아침이 있어 나는 너무나 좋다. 잘못이 있거든 고치기를 서슴지 말아야 한다(過則勿憚改, 과즉물탄개). 모두 이 화두를 새기면 좋으련만, 사랑도 깊으면 병이런가. 미움과 서운함의 뿌리가 왜 이리 질긴지 모르겠다.

권대욱 ㈜휴넷 회장·청춘합장단 단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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