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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7년 전 슬로우트랙 주장한 민주당, 이제와 ‘슈퍼 패스트트랙’ 요구”

중앙일보

입력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기까지 상임위 180일, 법사위 90일이 소요되는 것은 지나치다. 각각 120일, 60일로 단축하자.” (정의화 국회의장 직무대행)

“대화와 토론을 통하지 않고서는 국정 현안을 해결할 수 없다. 이미 여야가 (180일, 90일을) 합의했다. 바꿀 수 없다.” (노영민 민주통합당 원내수석부대표)

2012년 4월 20일 18대 국회 풍경이다. 당시 야당이던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은 국회선진화법 처리를 앞두고 ‘충분한 대화와 토론’을 강조했다. “다수 여당의 ‘제멋대로 상정, 날치기 통과’를 막는 게 법안 신속처리제(패스트트랙) 도입 본질“이라고 주장하면서다.

황우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김진표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지난 2012년 2월 국회 귀빈식당에서 국회 선진화법 등 법안 처리와 관련해 회동했다. [중앙포토]

황우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김진표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지난 2012년 2월 국회 귀빈식당에서 국회 선진화법 등 법안 처리와 관련해 회동했다. [중앙포토]

김진표 당시 원내대표와 노 원내수석부대표(현 대통령 비서실장)는 여당(새누리당)의 “심사 기간 단축” 요구에 “줄일 수 없다”고 버텼다. 그렇게 그해 5월 2일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에서 ‘상임위 180일, 법사위 90일’의 심사 기간을 지켜냈다. 당시 새누리당 일각에선 법안 최종 통과까지 330일이 걸리는 개정안을 두고 “패스트트랙이 아니라 슬로우트랙”이라는 불만이 나왔다. 이후 몇 차례 재개정 논란이 있었지만 무산됐다.

그런데 민주당이 최근 ‘법사위 90일’을 부정하고 있다. 지난 4월 패스트트랙에 오른 검찰개혁 관련 법안을 빨리 통과시키고픈 마음에서다. 현재 패스트트랙에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안, 선거법 개정안이 올라가 있다. 민주당의 1순위 통과 대상은 공수처법이다. 박주민 민주당 검찰개혁특위 위원장은 지난 14일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된 검찰개혁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키는 것이 근본적인 (검찰) 개혁”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상임위 심사 기간 180일만 거치고 공수처법을 이달 29일 본회의에 상정하자고 한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14일 “29일부터 본회의 상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며 “보름 뒤면 숙고의 시간이 끝나고 실행의 시간”이라고 공개 발언했다. 나름의 논리는 있다. “사법개혁안에 대한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를 생략할 수 있다”는 것인데, 사개특위에서 나온 공수처법의 정체를 ‘법사위 고유법안’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이다.

한국당은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 기간 생략은 불법”이라고 맞선다. “180일·90일을 7년 전 법안에 못 박아놓고 왜 지키지 않냐”는 목소리다. 중앙대 법대 학장, 명예교수를 지낸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은 “그때 슬로우트랙을 요구했던 민주당이 이제 와 ‘슈퍼 패스트트랙’을 고집하는 건 일종의 ‘내로남불’”이라고 지적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운데)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왼쪽),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16일 오후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검찰 사법개혁안을 논의하기 위해 `2 2 2'(각 당 원내대표와 의원 1명) 회동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현장풀 2019.10.16 변선구 기자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운데)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왼쪽),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16일 오후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검찰 사법개혁안을 논의하기 위해 `2 2 2'(각 당 원내대표와 의원 1명) 회동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현장풀 2019.10.16 변선구 기자

여당과 야당, 공격과 수비가 바뀌는 게 정치의 생리다. 입장이 바뀌면 과거와 다른 얘기를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입법기관인 국회가 위법 논란에 눈을 감아서는 곤란하다. 사개특위 법안을 법사위 고유법안으로 봐도 되는지에 대한 전문가 해석은 아직 분분하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공수처법과 관련해 “12월 3일이 돼야 숙려 기간이 끝난다”는 의견을 내놨다.

내부 해석이 엇갈리자 현재 무소속이지만 민주당 출신의 문희상 국회의장이 나서서 여당에 힘을 싣고 있다. 의장 명의로 외부 법무법인에 자문을 요청해 “10월 말 상정도 가능하다”는 답을 얻었다고 한다. 몇 개의 기관에 어떤 방식으로 자문을 구했는지, 구체적 답변 내용이 무엇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15일 기자들에게 “무조건 29일 (본회의 상정을) 강행한다. 어쨌든 150석만 확보하면 된다”고 말했다. 국회는 ‘합의’를 하는 곳이다. 애매한 법 해석을 유리한 쪽으로 밀어붙이는 대신 민주당이 상대 설득에 좀 더 힘써야 하는 이유다. 7년 전과 달리, 지금은 여당이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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