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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돈·기업 한국 떠난다] 미국 기업 886곳 유턴할 때 한국은 10곳…‘당근’이 달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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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베트남 호찌민 인근에 자리잡은 한국 중소기업 우양통상의 자동화 공장. [중앙포토]

베트남 호찌민 인근에 자리잡은 한국 중소기업 우양통상의 자동화 공장. [중앙포토]

# “한국에서 사업할 생각은 지금도 제로입니다.” 전화기 너머 오재훈(40대)씨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캄보디아에서 수출입 통관과 택배업을 주로 하는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7년 전 캄보디아에 정착한 오씨는 “한국에선 동네 통닭집을 해도 주변 가게와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데 이곳에선 그만큼은 아니고 스트레스도 적다”며 "그런 점에서 사업 기회도 많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사업 환경이 개선되는 것도 한국으로 유턴하지 않으려는 이유 중 하나다. 오씨는 "캄보디아 정부가 물류 인프라를 개선하면서 통관작업 절차도 간소화 추세라 사업할 맛이 난다"고 말했다.

미국, 공장이전비 20% 세금 공제 #업종 안 따지고 모든 기업 지원 #한국은 제조 지식서비스업 한정 #세제 금융지원 인식...규제도 많아

# 2003년 중국 산둥성에 공장을 설립해 해외로 공장을 옮긴 전자부품 중소기업 A사는 2017년 3월 베트남으로 생산 공장을 옮겼다. A사 관계자는 “한국으로 공장을 옮기는 것을 검토했지만 두 자릿수 최저임금 인상이 가시화되면서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었다고 결론을 냈다”며 “해외 사업장은 인력 관리가 까다로워 세금 등 인센티브가 충분하다면 향후엔 국내 공장으로 옮길 수도 있지만 현 지원 제도 내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10 대 886.

한국과 미국이 지난해 각각 받아든 유턴 기업 성적표다. 유턴 기업은 해외로 진출했다 국내로 돌아온 기업을 말한다. 11배 차이인 양국의 국내총생산(GDP)을 고려해도 한국의 유턴 기업 성적표는 초라하다. 이와 비교해 지난해 중소기업 직접투자에 따른 해외 신설법인 수는 1860개였다.

한·미 유턴 기업수 비교.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한·미 유턴 기업수 비교.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범위를 넓혀 보면 유턴 기업 개수 차이는 더욱 뚜렷하다. 한국 정부는 2013년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일명 유턴법)’을 시행했다. 유턴법 도입 이후 국내로 복귀한 유턴 기업은 연평균 10.4개에 불과하다. 반면에 한국보다 5년 앞서 유턴 기업 지원에 정부가 앞장선 미국의 경우 유턴 기업이 매년 빠르게 늘고 있다. 유턴 기업을 지원하는 미국 리쇼어링 이니셔티브(Reshoring Initiative)에 따르면 2010년 95개에 불과하던 미국 내 유턴 기업 수는 지난해 886개로 9배 가까이로 늘었다.

이유가 뭘까. 단순 정책 비교만으로도 양국 간 차이가 확연하다. 미국 정부가 유턴 기업에 던지는 유인책은 한국 정부와 비교해 파격적이다. 우선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공장 이전에 따른 총비용의 20%를 세금에서 공제해 준다. 유턴 기업의 조건도 해외에서 복귀하는 모든 사업장으로 규제가 없다. 반면에 한국은 국내 복귀 사업장 입지에 따라 보조금 지원 비율이 다르다. 대기업의 경우 보조금을 지원하지 않는다.

한국은 유턴 기업 지정 요건도 까다롭다. 해외 사업장을 2년 이상 유지한 제조업과 지식서비스업 등으로 사전 요건을 제시하고 있다. 국내로 돌아오라고 하면서 또다시 규제를 잔뜩 걸어놓고 있는 것이다. 공업용 펌프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대표는 “해외 공장 중 일부를 들여온 경우엔 유턴 기업으로 인정하지 않는 게 지금 법의 한계”라며 “공장을 무 자르듯 할 수 없기 때문에 핵심 시설을 국내로 옮긴 경우엔 유턴 기업에 걸맞은 지원을 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출입은행의 최근 조사에선 해외로 진출한 국내 기업 5곳 중 4곳은 유턴법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유턴법만 놓고 보면 기업이 돌아올 만한 인센티브가 부족하다”며 "유턴 기업 조건을 없애는 등 미국 수준으로 유턴법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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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헌·문희철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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