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다운 국감 해 보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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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8일부터 시작된 국회의 국정감사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해 기대와 걱정이 엇갈린다. 그 동안의 정책 실패와 행정난맥을 시원스레 파헤치고 바로잡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가 있는 반면 감사에 임하는 정당과 의원들이 지난 예로 보아 또 어떤 부작용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또한 없지 않기 때문이다.
l6년만에 부활된 작년 국정감사의 경험을 생각하면 국회가 감사에서 5공 실정과 비리를 밝히는데 커다란 기여도 했지만 의원들의 고압적·권위적 자세, 감사대상기관의 과잉선정, 중복감사, 당략적 감사 등의 허다한 문제점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이제 13대국회의 두 번째 국정감사는 작년의 예를 거울삼아 부작용과 문제점을 일으키지 않는, 좀더 어른스럽고 세련된 감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올해의 경우 가장 걱정스런 점은 국정감사가 작년과는 달리 여야간, 또는 4당간의 관계가 매우 나쁘고 상호 불편한 가운데 진행된다는 점이다. 현재 평민당은 공안사건에, 민주당은 뇌물협의에 각각 얽혀 정부·여당과 관계가 나쁘고 3야당끼리도 감정이 좋은 편이 아니다.
이에 따라 여야가 본연의 국정감사에 충실하지 않고 다른 정치목적의 수단으로 감사를 이용하려 하거나 당 세를 떨쳐 보이는 한건 주의의 기회로 삼으려는 경향을 보일 우려가 크다.
가령 공안정국이나 뇌물혐의의 탈출용으로, 또는 정치공세용으로 국감을 호기로 삼으려는 듯한 기미가 벌써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여당은 그들대로 과잉방어에 급급해 제출자료 한가지도 제대로 만들지 않고 알맹이 없는 자료를 내는 경향이 나오고 있다.
여야와 정부가 이런 식으로 감사에 임한다면 자칫 올해 국정감사는 국감이란 외양아래 사실상 정치공방 장이 될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점을 경계하면서 여야가 각기 상대방의 약점을 잡는 식으로 감사를 하고 방어할 생각을 할게 아니라 국정감사는 어디까지나 국정감사답게 임해주기를 바라고자 한다.
아울러 감사에 나서는 국회 측과 감사를 받는 정부측의 자세 확립을 촉구하고자 한다. 먼저 국회 측은 작년과 같은 중복감사, 제대로 다 물어 보지도 못하면서 증인을 잔뜩 부르는 증인의 과다선정, 행정기관을 골탕먹이는 자료의 과다요구, 불필요한 호통을 일삼는 위압적 감사자세…, 이런 것을 모두 시정해야 한다.
감사대상 관은 올해의 경우 많이 줄였지만 중복감사는 여전히 되풀이될 모양인데 이제라도 각 상위는 과욕을 버리고 통합감사의 일정에 합의해야 한다. 그리고 의원들은 무엇보다도 이권개입형 또는 사익추구형 감사를 한다는 오해의 소지조차 보여서는 안 된다. 작년에 공공연했던「관폐 현상」같은 것이 또 재연되는지 우리는 주시할 작정이다.
한편 감사를 받는 행정부 측은 과잉방어와 과공 두 가지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과거 흔히 보인 현장모면 식의 답변, 알맹이를 뺀 자료제출 등으로 감사일정을 넘기고만 보자는 얄팍한 자세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올해의 경우 의원의 자료유출사건을 빌미로 정부측이 자료제출에 인색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또 한바탕의 정쟁거리가 될 뿐이다.
그리고 피감 기관들은 의원들에 대해 지나치게 굽신거리고 위축되는 일도 없어야 한다. 흔히 감사장에서 보면 공무원들이 의원들에게 쩔쩔매는 꼴을 보이기 일쑤였는데 민주행정에 있어 저지른 것이 없다면 왜 그런 과공의 자세로 나올 것인가.
우리는 국회나 정부가 이런 기본적인 몇 가지 사항을 유념해 생산적인 국정감사의 한 보기를 이번에 만들어 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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