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 북한 김영희칼럼

대책 없이 고군분투하는 노 대통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미사일 난사의 후폭풍이 아주 불길한 방향으로 불고 있다. 북한이 다시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심지어는 핵실험까지도 감행할지도 모를 절망적인 처지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으로 들어가는 모든 돈구멍을 틀어막고 있다. 유엔 안보리 결의를 들고 북한과 거래하는 모든 나라의 모든 기업과 은행들에 북한과의 관계를 끊으라고 압력을 넣는다. 일본은 대북송금과 북한 선박의 입항 금지, 북한 자산 동결, 기업들의 북한과의 거래를 금지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북한에 결정적 타격을 준 것은 중국의 안보리 결의안 찬성이다. 중국은 북한이 필요로 하는 식량과 에너지의 절반 이상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유일한 동맹이다. 그런 중국을 안보리 결의 지지로 돌려세운 것은 북한이다. 지금 북.중 관계는 1995년 6월 김정일 위원장이 '노동신문'에 중국은 시장경제 도입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배신했다고 원색적으로 공격한 담화를 발표한 이후 10년 만에 맞은 최악의 상황이다. 김 위원장은 북한 생존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의지하고 있으면서도 북한을 방문한 미국인에게 중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김 위원장에게 남은 '친구'는 노무현 대통령뿐이다. 노 대통령은 북한의 핵개발을 자위수단으로 이해해 준다. 그의 정부는 미사일 난사 때도 북한을 규탄하는 말은 하지 않고 꼭두새벽에 비상회의를 소집한 일본 정부를 괜한 일로 야단법석을 떤다고 나무랐다.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중단한다고 발표하던 날도 노 대통령은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일각'의 과잉대응을 비판했다. 김 위원장이 볼 때 미사일 몇 발 쏜 걸 가지고 노 대통령이 쌀과 비료 지원을 중단한 것은 괘씸하지만 중국까지 북한 규탄에 가세하는 마당에 북한 입장 두둔에 고군분투하는 노 대통령을 고맙게 느낄 것이다.

궁한 쥐는 고양이에게 덤빈다. 북한이 절망 끝에 또 미사일 발사와, 어쩌면 핵실험이라는 초강수를 두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것은 사활을 건 도박이다. 정상적인 사고기능을 가진 지도자는 생각도 할 수 없는 모험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위기상황에서 합리적.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을까. 과거 북한의 행태는 '노'라는 대답을 준다. 북한은 미국과 일본을 향해 동해의 동북 방향으로 미사일을 발사해 두 나라의 강경대응만 촉발했다. 북한이 동해의 남쪽으로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사정은 심각하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의 느슨한 동참을 전제로 북한을 경제적으로 봉쇄하고 고립시키는 것이 북한을 6자회담으로 불러내고 핵.미사일 도박을 단념시키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과 일본은 한국의 참여 없이도 북한 제재를 강행할 태세다. 미국은 스튜어트 레비 재무차관의 방한을 통해 북한제재에 한국의 참여를 기대할 수 없음을 확인했다. 국민은 불안하다. 노 대통령은 국민 앞에 나와서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북한 제재로 돌진하는 미국과 일본을 견제할 방도는 무엇인가. 종로에서 뺨맞고 남대문에서 눈 흘기듯 미국과 일본에 당하는 분풀이를 한국에 하려는 북한에는 무슨 말로 미사일 추가 발사의 위험을 설득할 것인가.

북한의 미사일 난사 이후 국민의 눈에 비치는 노 대통령의 태도는 무책임하고 근시안적이다. 민족끼리 자주노선의 파산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 북한을 통해 세계를 보느라 세계를 통해 북한을 보는 안목을 잃었다. 그것은 그가 이념정치와 코드인사가 파 놓은 우물 안에 갇힌 결과라고 생각된다. 이런 인식이 잘못된 것이라면 북한.미국.일본 대책을 보여라. 노 대통령의 말대로 '일각'의 과잉대응도 문제지만 속수무책으로 미국과 일본에 소외당하고 북한에 뒤통수 맞는 것은 정책이 아니다. 청와대에서는 시종 무엇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만 들리고 무엇을 한다는 말은 들리지 않으니 답답하고 겨우 5자회담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