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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ㆍ미 스웨덴 노 딜 '상응조치' 놓고 순서 충돌"

중앙일보

입력

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진행된 북ㆍ미 실무협상의 결렬 원인을 놓고 미국을 향한 북한의 ‘네 탓’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나흘 전 스톡홀름으로 향하는 길에 “회담에 대해 크게 기대하고 결과도 낙관한다”고 했던 김 수석대표는 7일 귀국길에 경유지인 중국 베이징 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판문점 수뇌 상봉 이후 거의 백일이 되도록 아무런 셈법도 만들지 못했는데 두 주일 동안에 만들어낼 것 같습니까”라며 어두운 전망을 했다. 그는 “미국이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으면 그 어떤 끔찍한 사변이 차려질 수 있겠는지 누가 알겠느냐. 두고 보자”라며 위협에 가까운 언사를 쏟아 냈다. 회담 직후 “미국이 준비가 안 됐다”라거나 외무성 대변인의 “더는 ‘역스러운’(역겨운) 회담을 할 의욕이 없다”던 입장에서 미국이 극도로 경계하고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군사적 긴장 고조 조치를 암시한 것이다. 단, 북한은 추가 협상에 나서지 않겠다고 잘라 말하지 않고 있고, “향후 운명은 미국에 달려 있다”거나 “미국의 준비”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물밑 접촉을 통한 봉합 가능성도 열어 뒀다.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북미 실무협상 수석대표)가 7일 오전 베이징 공항에 도착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북미 실무협상 수석대표)가 7일 오전 베이징 공항에 도착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스웨덴 접촉의 ‘노 딜’ 및 양측의 상반된 주장과 관련해선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서 ‘상응 조치’와 ‘창의적인 해법’을 둘러싼 인식차가 드러났기 때문으로 파악됐다. 회담에 정통한 소식통은 “북한은 싱가포르 정상 회담 이후 자신들이 취한 조치에 대한 미국의 '선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었다”며 “반면 미국은 향후 북한의 비핵화 행동에 대한 상응 조치를 염두에 뒀다”고 귀띔했다. 북한은 지난해 싱가포르 북ㆍ미 정상회담 이후 자신들이 취했던 핵실험과 ICBM 발사 중단, 6ㆍ25전쟁 때 북한 지역에서 사망한 미군 유해 송환, 그리고 정상회담 직전 함북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등 비핵화 조치를 진행한 만큼 이에 상응하는 미국의 ‘대가’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과거 조치’가 아닌 영변 등 북한의 핵 활동 불능화 조치와 관련한 입장을 준비했다고 한다. 북한은 과거 조치에 대한 미국의 상응 조치를, 미국은 이전 ‘빅딜’(완전한 비핵화 뒤 상응 조치)에서 한 걸음 물러나 영변 등 비핵화 행동을 한다면 상응 조치를 할 수 있다는 취지로 미래의 상응 조치를 고려했다는 것이다. 안 린데 스웨덴 외무장관은 6일(현지시간) 스웨덴 공영방송 SVT와 만나 “한 번의 만남에서 무엇을 성취해야 할 지에 대해 (북·미가) 다소 다른 견해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더 많은 회담을 성사시키는 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양측에 달려있다”고 설명했다.

북 "모라토리엄 상응조치부터", 미 "향후 비핵화 따른 상응조치"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북미 실무협상 수석대표)가 5일(현지시간) 오후 스톡홀름 외곽 북한대사관 앞에서 이날 결렬된 북미 실무협상 관련해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북미 실무협상 수석대표)가 5일(현지시간) 오후 스톡홀름 외곽 북한대사관 앞에서 이날 결렬된 북미 실무협상 관련해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린데 장관이 ‘다른 견해’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상응 조치’의 내용과 시점을 두고 양측의 입장차이가 충돌한 셈이다. 정부 당국자는 “양측이 지난 6월 30일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 이후 입장 조율에 시간이 걸리면서 실무협상이 늦어졌다”며 “양측은 물밑 접촉을 통해 어느 정도 입장 차이를 좁혔지만 인식 차를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북한과 미국이 협상장에서 돌변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지만, 이와 관련해선 즉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협상 준비가 안 됐다”며 회담장을 박차고 나오면서 하노이의 굴욕을 맛봤던 북한이 그대로 앙갚음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연말까지 시한을 정한 북한이 시간을 끌 여유가 없다는 점에서 미국이 준비한 ‘창의적 해법’을 북한이 걷어찼다면 오히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탄핵 분위기를 고려해 판 돈을 키우려는 차원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문제는 북한의 협상 전략 수립과 회담에 외무성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추후 회담의 전망도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외교관 출신의 고위 탈북자는 “북한은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직후 ‘미국이 황금 같은 기회를 날렸다’고 주장했다”며 “대미 협상을 외무성이 주도하면서 과거 상응 조치에 대한 대가부터 챙기는 전략을 수립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무성은 과거 제네바 합의(1994년), 9ㆍ19공 동성명(2005년)을 체결한 뒤 경수로 제공 중단과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 계좌 동결 등을 경험했다”며 “여기에 하노이 회담 때까지 통일전선부가 관장한 회담이 성공하지 못하자 외무성은 ‘안돼도 할 수 없다’는 식으로 까탈스럽게 회담을 끌고 갈 것 같다”고 전망했다. 특히 북한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탄핵 분위기와 내년 미국 재선 등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국면이라고 판단해 미국이 ‘새로운 상응 조치’를 준비하더라도 공세의 강도를 높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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