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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날 줄 알았다"는 이춘재, 가석방 대상 아닌 것도 알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이춘재(56)는 1994년 1월 처제 살인 사건을 저지르면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부산교도소에 수감됐다. 25년 동안 교도소에서 큰 문제 없이 생활하면서 '1급 모범수'로 분류됐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이춘재가 가석방이나 특별사면 등을 노렸던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JTBC 9월30일 뉴스룸에서 보도한 재소자 신분카드에 부착된 이춘재.[JTBC 캡처]

JTBC 9월30일 뉴스룸에서 보도한 재소자 신분카드에 부착된 이춘재.[JTBC 캡처]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아도 28년이 지나면 가석방 대상 검토가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이춘재는 특별사면은 물론 가석방 심사대상도 아니었다.

범행 부인하던 이춘재가 자백한 이유는?

법무부 관계자는 "성폭력이나 살인죄로 수감된 경우는 가석방이나 특별사면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춘재도 자신이 가석방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춘재가 화성 연쇄살인 사건 용의자로 특정되면서 가석방이 어렵게 되자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자백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셈이다.

경찰, "프로파일러 역할 컸다" 

경찰은 이춘재의 자백은 프로파일러들과의 라포(Rapport·신뢰, 공감대) 형성이 한몫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춘재 조사에 무려 9명의 프로파일러를 투입했다.
경찰은 "프로파일러와 이춘재 사이에 라포가 형성된 상황에서 이춘재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임의로 자백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춘재는 과거 자신이 저지른 범행을 살인 몇 건, 성범죄 몇 건 등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다고 한다. 일부 범행이 이뤄진 장소를 그림으로 그려가며 설명하는 등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묘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수사본부. [연합뉴스]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수사본부. [연합뉴스]

사건 증거물에서도 이춘재 DNA 검출  

이춘재가 자백한 사건들은 모두 공소시효가 지나 추가로 처벌을 받을 우려도 없다. 마땅한 증거도 없었다. 그러다 결정적인 증거가 나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조사 결과 화성 연쇄살인 사건 현장 증거물에서 이춘재의 DNA가 나왔다. 5차, 7차, 9차 사건 증거물에 이어 최근엔 4차 사건 증거물에서도 이춘재의 DNA가 검출됐다.

이춘재가 자백한 14건의 연쇄살인 사건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춘재가 자백한 14건의 연쇄살인 사건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춘재는 그동안 혐의를 부인해 왔다. 그러나 경찰이 DNA 증거를 들이밀려 추궁하자 지난주부터 심경 변화를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DNA 증거가 나왔으니 할 수 없네요", "언젠간 내가 한 일이 드러날 줄 알았습니다"라며 범행을 털어놨다고 한다.
모방범죄인 8차 사건을 제외한 9건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비롯해 5건의 추가 살인도 털어놨다. 30여 건의 성범죄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은 자백의 신빙성을 의심하고 있다. 25년에서 30년이 지난 사건을 이춘재가 시기와 장소까지 특정하며 자백하고 있어서다. 이춘재가 자신의 범행을 알아볼 수 있는 기록을 남겼는지에 대해서도 경찰은 "그런 기록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사건 수사본부장인 반기수 경기남부지방경찰청 2부장은 "(자백한 내용은) 모두 용의자의 오래전 기억에 의존한 자백"이라며 "현재 자백내용에 대한 수사기록을 검토하고 관련자를 조사해 자백에 신빙성, 객관성이 있는지 등을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모란·심석용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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