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주의적 인생을 묘사-밀란 쿤데라 원작 영화『프라하의 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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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삶은 대체로 고단한 여행과 같다. 지친 육신을 종착역에 누일 때 영혼은 비로소 깃털처럼자유로이 날아오른다. 생전의 모든 것은 누군가의 표현처럼 움켜쥔 손가락 사이로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모래알과 같다.
『프라하의 봄』의 원작이며 원제인 체코작가 밀란 쿤데라의『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난해한 제목의 속뜻은 그렇게 이해된다.
이 영화는 살아가는 방식에 관한 영상소설이다. 정형화된 틀이야 없겠지만 누구든 세상을 보는 자신의 눈이 자신의 행동을 규정지어 주게 마련이다.
외과의사 토머스(다니엘 데이 루이스).피부를 절개할 때마다·인체의 질서, 신의 엄중한 존재에 눌린 그는 역으로 허무적 자유주의자가 된다. 그의 자유분방한 섹스는 허무의부산물이며 따라서 그가 지닌 가벼움은 고의적 가벼움이다.
토머스와 결혼한 시골처녀 테레사(줄리옛 비노시).그녀의 희망이 사진작가이듯 그녀에게 있어 세상사는 제각각의 존재 의의를 갖고 있고 그만큼 세상은 무겁다.
토머스의 친구이자 섹스파트너인 화가 새비나(레나 올린)캔버스에 그림 그리듯 그녀의 가벼움은 자연스럽다. 정사의 전유물로 즐겨 쓰는 모자는 마치「모자 없이 정사 없다」는 식의 제도의 굴레처럼 보여지나 그녀는 그 제도를 멋지게 이용할 줄도 알고 또는 가볍게 차버 릴줄도 안다.
소련군 탱크가 프라하의 자유화 운동을 짓밟을 때 토머스에게는 세상이 귀찮고 우스우며 테레사는 현장을 카메라에 담기에 바쁘고, 새비나는 제네바로 가볍게 떠나버린다.
곡절 끝에 시골에 정착한 토머스와 테레사.
그들과 한 생을 같이한 애견 카레닌을 묻으며 비로소 생의 무거움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 토머스지만 우연한 차 사고로 토머스와 테레사는 숨지고 만다. 쿤데라 조차도 참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들의 존재는 가볍게 이 세상을 떠나 버렸다.
소설 읽기보다 영화 보기가 편한 것은 이 영화의 경우 전적으로 파스텔조의 영상과 튕기는 듯 흐르는 음악 덕이다.<이헌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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