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대입 요강 봐도 이해 안 되는 부모라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성탁 런던특파원

김성탁 런던특파원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논란을 계기로 교육부가 대입제도 개편에 나섰다. 학력고사나 수능을 내신과 반영하던 한국 대입은 세계에서 거의 가장 복잡한 입시가 됐다. 자녀가 진학했으면 하는 대학의 입시요강을 봐보라.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는 부모라면 입시제도 개편을 요구해야 한다.

수시 전형은 미국 입학사정관 전형을 본뜬 것이다. 특기를 살리자는 취지였지만, 교외 활동을 반영하자 스펙쌓기 경쟁이 벌어졌다. ‘인맥·돈 잔치’가 심해 교내 활동으로 반영 범위를 줄였다. 하지만 학생부 종합전형의 비교과영역 자율·동아리·봉사·진로활동을 지원하는 학교의 수준이 크게 다르다. 100개가 넘는 동아리를 운영하는 자사고나 특목고는 대다수 일반고와는 비교 불가다. 강남 일반고의 진학담당 교사는 입시업체 전문가 뺨친다. 고교별로 자기소개서 작성이나 학생부 관리 수준에 차이가 난다는 얘기다.

대입 수험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입시업체의 설명회장을 메우고 있다. [뉴스1]

대입 수험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입시업체의 설명회장을 메우고 있다. [뉴스1]

한국은 대입에서 학력고사나 수능 같은 시험을 잘 치르는 능력을 보면 큰일 나는 줄 아는데, 영국에 와보니 반대였다. 아이가 이번 학기 고교과정에 해당하는 10학년을 시작했는데, 학사 운영이 11학년 때 치르는 GCSE(중등교육 자격시험) 대비 모드로 바뀌었다. 학기 시작 전부터 GCSE 과목을 안내하더니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한 학업과 학습 태도를 중시했다. 영국 대입은 전공을 먼저 정하고 6개 대학에 지원한다. 전공에 따라 GCSE 과목도 수학·과학 위주로 할지, 인문학 위주로 할지 택한다. 대학이 GCSE 성적과 자기소개서를 반영해 ‘1차 합격생’을 선발하기 때문에 이 시험 결과가 입시에 중요하다.

영국 학교도 동아리 활동을 장려하는데, 자녀를 영국 대학에 보낸 한국인들에게 물어보니 자기소개서에 이런 내용은 잘 쓰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화학과에 지원한다면 수학이나 화학 관련 수상 실적 등 학업 성과를 쓴다. 1차 합격생은 전공 심화 과정인 A-레벨 시험에서 대학이 요구하는 점수를 받아야 최종 합격한다. 아무리 훌륭한 활동을 했어도 이 시험을 통과 못 하면 탈락이다.

영국 대입제도가 우수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너무 복잡한 한국 대입은 간소화돼야 한다. 쪼그라든 정시를 늘리는 것을 금기시할 필요도 없다. 사교육의 영향이 커질 거라지만, 그래서 지금 사교육을 안 하고 있나. 분명한 건 학력고사나 수능 때 지방 일반고에서도 상위권 대학에 수십명씩 진학했지만, 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들어졌다는 점이다.

김성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