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천안문 선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신경진 기자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연암이 본 1780년 건륭제의 일흔살 생일 만수절이 이렇게 성대했을까. 그 무렵 청나라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한 비율이 지난해 중국의 두 배가 넘었다니 오히려 더 화려했을까.

1일 신중국의 고희연(古稀宴)에 가는 길은 멀었다. 기자의 집합시간은 새벽 4시 반. 하늘 아래 온 세상이 평안하기를 바란다는 천안문(天安門) 동쪽 기둥석인 화표(華表) 앞 취재석에 도착해 4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오래도록 안정을 바라는 장안가(長安街)는 마지막 연습이 분주했다.

정각 10시 천안문 앞 5만여 좌석을 메운 관중의 눈길이 성루를 향했다. 시진핑·장쩌민·후진타오 전·현직 주석이 단합을 과시했다. 이어 차세대 핵미사일 등 첨단 무기가 행진했다. 화약 발명국임을 자랑하는 기세였다. 2시간 40분 이어진 잔치는 ‘조국 만세’를 새긴 초대형 화환 위로 7만 마리의 비둘기가 날아오르며 끝이 났다.

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훙치 열병 차량을 타고 천안문을 나서고 있다. [사진 신화]

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훙치 열병 차량을 타고 천안문을 나서고 있다. [사진 신화]

고희연의 메시지는 시 주석이 888자 연설로 전했다. 그는 인민해방군에게 “국가 주권·안전·발전이익과 세계평화를 수호하라”고 명령했다. 세계평화 수호는 새로운 임무다. 칼날을 드러내며 세계 경찰이 되겠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시 주석의 중국은 어떤 세상을 꿈꿀까? 지난주 인민일보에 실린 필명 ‘선언’(宣言)이 쓴 칼럼에 자세하다. “인간의 바른길은 창상이다(人間正道是滄桑).” 70년 전 난징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들은 마오쩌둥이 지은 시의 끝 구절에서 따온 제목이다. ‘국민당의 뽕밭(桑)이 공산당의 바다(滄)로 바뀌는 게 옳다’는 비유로 읽힌다.

선언은 “중국은 자본의 원시 축적, 식민지 없이 국민경제를 발전시켰다”며 “여러 당이 번갈아 집권하는 서구식 민주 없이, 넓고 진실한 인민 민주를 수립했다”고 자랑했다. 또 “세계가 다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십자로에 섰다”며 “중국은 공산주의 사회를 최종 완성할 때까지 전진하겠다”고 다짐했다. 21세기판 ‘공산당 선언’이다. 마오는 같은 시에서 “명성을 얻으려다 실패한 항우의 전철은 밟지 않겠다”고 했다. 시 주석은 얼마 전 베이징 향산에 올라 이 구절을 인용하며 철저한 혁명 정신이라 치켜세웠다.

70년 전 마오의 반대편에는 자유주의자 후스(胡適·호적)가 있었다. 후스는 1949년 1월 2일 도연명의 시 ‘의고(擬古)’를 일기에 적었다. “애초 높은 곳에 심지 않았으니 이제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으랴.” 그는 홍수에 쓸려간 강가의 뽕나무를 공산화된 중국에 비유했다. 천안문 선언을 듣는 미국도 후스의 자책에 공감하지 않을까. 중국의 칼날 앞에 선 한국도 다르지 않을 듯싶다.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