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 시절엔 강경화 장관이란 좋은 파트너가 있었다. 양국 관계를 더 끌어올리려 했는데, 징용 판결 때문에 아주 유감스러웠다.”
방위상으로 자리를 옮긴 일본의 고노 다로(河野太郞) 전 외상이 최근 자주 하는 말이다. 현실감각 떨어지고 철없는 변명으로 들리지만 일본 정계의 ‘괴짜’로 불리는 그는 인터뷰 때마다 이런 얘기를 한다. 자신과 강 장관을 띄우고 관계 악화의 책임을 ‘징용판결’에 뒤집어씌운다. 실제로 두 사람 사이엔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영어가 유창한 두 사람이 카메라 앞에선 굳은 표정을 짓다가도 회담이 시작되면 표정이 환해진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한일관계에 있어서 두 사람은 실패한 장수다. 도쿄특파원으로 일한 최근 2년 동안 두 사람의 제대로 된 활약을 구경한 적이 없다. 결정적인 장면마다 두 사람은 무대를 자주 비웠다. 고노는 일본 경제산업성이 어떤 품목을 수출 규제의 타깃으로 삼을지조차 몰랐다고 한다. 일본 정부 고위소식통은 중앙일보에 “수출 규제 조치가 취해진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주가에 미칠 영향 등 때문에 정확한 품목이 무엇인지 외무성은 듣지 못했다”고 했다.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반도체 산업의 핵심 부품이 타깃일지는 몰랐다는 뜻이다.
수출 규제 강화 조치가 미국을 향한 한·일간 외교전으로 번졌을 때 강 장관은 믿기 어렵게도 아프리카로 출장을 떠났다. 지소미아(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때도 마찬가지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한국 정부의 결정 전날 베이징에서 강 장관과 회담했던 고노는 주변에 “지소미아는 괜찮을 것이란 느낌이 왔다”고 엉뚱한 소리를 했다. 다음 날 저녁 도쿄의 공항으로 돌아온 고노에게 강 장관이 문자로 “파기 발표를 곧 할 것 같다”는 ‘해명’ 문자를 보냈다는 보도도 있었다. 두 사람이 양국 갈등을 부추긴 일도 있다. 지난 2월 회담 때는 문희상 국회의장의 소위 ‘일왕 사죄 발언’을 놓고 “사과와 철회를 요구했다”는 고노의 주장과, “그런 얘기 없었다”는 강 장관의 설명이 달라 혼란을 빚었다. 외교 협상은커녕 초등학생 수준의 기본적인 소통에서도 문제를 드러낸 것이다. 또 남관표 주일대사를 외무성으로 초치해 함부로 말을 자르고 “무례하다”며 ‘무례한’ 독설을 퍼부은 고노의 행동은 일본 정부 내에서도 호된 비판을 받았다. 쥐구멍을 찾아도 모자랄 판에 “좋은 파트너” 운운하는 모습은 참 받아들이기 어렵다. ‘성격은 최악이지만, 일은 똑 부러진다’는 새 외상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의 등장을 반기는 사람들이 꽤 많은 이유일 것이다.
서승욱 도쿄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