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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덕의 북극비사] 4000년 전 멸종 매머드 찾는 사냥꾼만 500명이 넘는 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러시아 사하공화국의 수도 야쿠츠크 시내의 한 호텔 로비에 전시된 매머드 모형.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러시아 사하공화국의 수도 야쿠츠크 시내의 한 호텔 로비에 전시된 매머드 모형.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② 매머드 사냥꾼

나는 지금 시베리아 한가운데 위치한 사하공화국(야쿠치아)에서 이 글을 쓴다. 이곳은 과거와 현재가 뒤엉킨 곳이기도 하다. 사하공화국은 ‘매머드 왕국’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호텔과 대학ㆍ박물관에서 4000년 전 멸종했다는 매머드의 모형이나 잔해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원인은 지구 온난화다. 최근 들어 이곳 지역 기온이 급격히 오르면서 동토층이 빠르게 녹고있다. 그간 얼어붙어 있던 바다도 마찬가지다. 녹은 얼음 때문에 하천이나 해안이 침식되고 있다. 이 와중에 동토층 아래 얼어붙어 있던 매머드의 무덤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매머드는 수천년 전에 죽었지만, 그간 얼음 속에 갇혀있었던 탓에 마치 얼마전 죽은 것처럼 생생한 모습으로 발견되기도 한다. 매머드의 유해가 이곳 박물관 등 시내 곳곳에 전시물로 등장하는 이유다.

러시아 사하공화국 동토층에서 매머드의 상아를 캐는 매머드 사냥꾼들. [유튜브 화면 캡처]

러시아 사하공화국 동토층에서 매머드의 상아를 캐는 매머드 사냥꾼들. [유튜브 화면 캡처]

시베리아의 신종 직업 매머드 사냥꾼 

최근 들어 사하공화국에 ‘매머드 헌터’라는 신종직업이 뜨고 있다.  매머드 유해 발굴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지역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허가를 받은 채굴자가 이미 500명이 넘었고, 관련 비즈니스에 종사하는 사람의 숫자는 2500여명에 이른다. ‘매머드 사냥’이 산업화 수준으로 변화하고 있는 셈이다.

수천년 전 멸종했다는 매머드를 왜 ‘사냥’할까. 이유는 유난히도 긴 송곳니, 즉 상아에 있다. 최근 들어 매머드 상아 수요가 갑작스레 늘고 있다. 그간 상아의 최대 수요처인 유럽과 중국이 각각 2017년과 2018년부터 코끼리 상아 거래를 불법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10년 전 연간 20 t 정도였던 이곳 매머드 상아의 발굴량이 지난해 123 t으로 크게 증가했다. 가히 ‘아이보리 러쉬(ivory rush)’라고 할 만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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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象牙)를 뜻하는 아이보리(ivory)의 어원은 고대 이집트어로 ‘코끼리’라는 뜻을 가진 ‘abu’에서 나온 것이다. 코끼리 상아는 하얀 색깔과 보존성, 그리고 조각예술로 만들었을 때의 높은 상품가치로 인해 수천 년 동안 상업ㆍ예술ㆍ신앙 등의 목적으로 거래돼 왔다. 우리 민족도 예외가 아니었다. 중국의 영향을 받아 도장을 만들거나 반지 또는 장식품으로 코끼리 상아를 사용했었다.

1806년 발굴된 매머드의 유골을 마치 공룡뼈처럼 원모습대로 재현해놓았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1806년 발굴된 매머드의 유골을 마치 공룡뼈처럼 원모습대로 재현해놓았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코끼리 상아의 대체품 된 매머드 상아 

상아는 코끼리라는 동물의 상징과 같은 신체부위다. 오랜 진화를 거쳐 생존을 위한 가장 큰 무기가 되었지만, 인간이 좋아하게 되면서 오히려 코끼리라는 생물종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말았다. 상아를 얻기 위해 살아있는 코끼리에 대한 무분별한 사냥과 밀렵이 현재까지 수백 년간 이어지고 있다. 아프리카 서해안에는 슬프게도 ‘상아해변’이라는 뜻의 ‘아이보리 코스트’라는 나라도 있다. 1975년 ‘워싱턴협약’이라고 불리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ㆍ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이 체결되고 무역금지대상인 부속서1에 1975년, 1990년에 각각 아시아와 아프리카 코끼리가 등록되어 국제적인 보호를 받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밀렵은 그치지 않고 있으며 매년 2만 마리에 가까운 코끼리가 상아 때문에 잔혹하게 사냥되고 있다.

그런데 지구에서 가장 뜨거운 열대지역의 코끼리 상아 문제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차가운 동토인 북극권과 연결되어 있다. 코끼리 상아를 대체할 가능성이 큰 소재가 바로 북극권에 있기 때문이다. 코끼리의 먼 친척인 매머드는 수백 만년 간 북극 시베리아에서 생존하다 약 4000년 전에 멸종했다. 이들은 시베리아를 중심으로 두꺼운 얼음 속이나 얼어있는 토양, 즉 동토층 속에 묻혀 있다. 추정에 따르면 약 1000만마리 이상의 매머드가 동토층에 묻혀있는데 이들 중 약 80% 가까이가 러시아의 사하공화국에 있다고 한다. 사실 매머드 상아가 유럽에 등장한 것은 이미 400년 전의 일이지만 그간 발굴이 어려워 보편화되지는 못했다.

매머드 박물관 내에 전시된 유골.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매머드 박물관 내에 전시된 유골.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매머드 상아 100㎏에 최고 5000만원

현재 매머드 상아의 시장가격은 공급이 크게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상품의 경우 100㎏에 5000만원에 달하기도 한다. 그리드 아렌달 재단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사하공화국 땅에 묻혀 있는 매머드 상아 매장량은 최대 10억t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매머드 상아 채굴은 긍정과 부정의 측면을 모두 가진 논란의 이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멸종위기종인 코끼리와는 달리 이미 멸종된 동물의 잔해로부터 상아를 얻는다는 것과, 자원개발 이외에는 다른 산업의 발전이 쉽지 않은 북극권에서 지역민의 경제활동을 직접 도울 수 있다. 때때로 매머드 연구를 통해 과학적인 발전에도 기여한다.

매머드 상아로 만든 체스 말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매머드 상아로 만든 체스 말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매머드 발굴

야쿠츠크 북동연방대학의 세묜 그리고리에프 매머드 박물관장은 사하 북부의 ‘매머드 수도’로 불리는 카자츠에 마을에서 태어나 러시아 매모드 연구의 최고 권위자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4년 전에 발굴된 매머드의 잔해에서 이제껏 알려진 바가 없는 박테리아가 발견되기도 했지만, 유해하다는 증거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며 "특별한 직업이 없는 북극권 마을 주민들에게는 매머드 채굴이 중요한 생계수단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부정적 시각도 존재한다. 무분별한 발굴로 동토층 훼손이 가속화된다. 예상치 못한 병원균이나 지반 함몰과 같은 재해유발도 있다. CITES 협약에도 불구하고 상아류에 대한 비정상적인 수요가 근절되지 못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지역 사람들에겐 경제가치로 환산해 수천억 달러라는 엄청난 매장 자원을 그냥 지나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 사하공화국 원주민들이 만든 매머드 상아 공예품.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러시아 사하공화국 원주민들이 만든 매머드 상아 공예품.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죽음과 시간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일

타잔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주인공 타잔이 ‘아아아 아아아아~’라는 특유의 고함소리로 정글에 사는 동물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동물들은 주저없이 친구 타잔을 도우러 온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친구는 커다란 몸집에 단단하고 날카로운 상아를 가진 코끼리였다. 코끼리가 등장하면 타잔은 위기를 쉽게 넘기고 정의가 승리하는 결말을 맞는다.

이제 열대지역에 70만 마리밖에 남지 않은 타잔의 친구인 정의로운 코끼리가, 북극에서 이미 멸종돼 차가운 동토층에 묻혀있는 1000만 마리의 매머드 덕분에 멸종의 위기에 벗어난다면 최선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 인간의 욕심으로 4000년 전에 멸종되어 이미 동토층에 묻혀버렸던 매머드가 다시 파헤쳐지는 현실은 참혹하다. 죽음과 시간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이곳 차가운 동토의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에 뒷머리가 서늘해진다.

③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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