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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덕의 북극비사]세계 최강 원자력 쇄빙선에 올라 북극해를 달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3월 러시아의 핵추진 쇄빙선 승리50주년기념호가 북극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TASS=연합]

지난 3월 러시아의 핵추진 쇄빙선 승리50주년기념호가 북극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TASS=연합]

 ③ 세계 최대 원자력 쇄빙선의 기억

3년 전 8월 말, 나는 베링해 위쪽 북극바다추크치해를 떠도는 길이 159.6m의 거대한 원자력 쇄빙선 선상에 발을 디뎠다.‘승리50주년기념호’란 이름의 이 원자력쇄빙선은 온통 붉은색 페인트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짙푸른 파도가 몰아치는 북극바다 속 맹수의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계절은 한여름이지만 강풍이 부는 영상 5도의 바다는 매섭게 추웠다. 흥분과 두려움이 동시에 몰려왔다. 북극바다에서 그것도 원자력 쇄빙선이라니…. 승리59주년기념호의첫 인상은 거대한 상어처럼 느껴졌다,

그해 초여름 나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북극해를 항행하는 원자력 쇄빙선‘승리50주년기념호’위에서 열리는 국제회의 초청장을 받았다. 정부 대표단의 일원으로 북극해 항해를 경험하고 북극의 항구에 발을 디딜 수 있는 기회였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 이 회의에 초청을 받았을 때는 러시아 조선소에서 파란만장하고 아슬아슬한(?) 탄생과정을 거쳐 건조된 원자력추진선이 과연 안전할지에 대한 걱정도 잠시 들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권력층 인사들과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도 같이 탑승한다는 안도감과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냉큼 초청에 응했다.

승리50주년기념호 선상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승리50주년기념호 선상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멀고도 먼 원자력 쇄빙선 타는 길 

북극해를 다니는 선박 중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원자력쇄빙선을 타기 위한 여정은 간단치 않았다. 그 배는 시베리아 동쪽 북극바다에서 대기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바로 갈 수 없는 곳이라 모스크바를 경유해야 했다. 부산을 떠나 인천공항에서 서쪽으로 10시간을 날아서 모스크바에 저녁쯤 도착한 후, 다음날 아침 러시아 정부가 제공하는 전세기를 타고 우리나라가 있는 동쪽으로 다시 11시간을 이동하여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끝 도시인 추코트카의 ‘아나디르’라는 곳에 도착한 것은 8월 마지막날이었다.

아나디르공항에 내려 추코트카 원주민들의 무사안전을 기원하는 의식을 뒤로하고 새롭게 설립된 북극해 구조구난센터에 대한 홍보관을 지나 바다로 가기 위해 아나디르항구로 향했다. 항구에서 다목적구조선(MSV)인 카레프호를 타고 베링해를 또 다시 3시간여 항해한 끝에 마침내 선상회의가 열리는 ‘승리50주년기념호’로 옮겨 탈 수 있었다. 단지 회의장에 도착하기 위해 비행기와 배로 이동하는 데만 꼬박 24시간을 소비했고 날짜로는 이틀이 걸린 것이다.

승리50주년기념호가 지난 4월 얼음을 깨면서 북극바다를 항행하고 있다. [TASS=연합]

승리50주년기념호가 지난 4월 얼음을 깨면서 북극바다를 항행하고 있다. [TASS=연합]

'2차 세계대전 승리 기념' 핵추진 쇄빙선

세계 최대의  ‘쇄빙기계’라 할 수 있는  ‘승리50주년기념호(50 Let Pobedy, 50th Anniversary of Victory)’는 원자력 쇄빙선으로 매우 특별한 선박이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9년 당초 ‘우랄’이라는 이름으로 건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곧 구소련의 붕괴로 건조가 중단되었다가 1995년 세계2차대전 승리 50주년을 기념한다는 의미가 추가되어 다시 건조를 시작했다. 이후에도 난관은 계속됐다. 화재 등 우여곡절 끝에 무려 ‘승리 60주년’이 지나서야 또 다시 건조를 시작했다.

결국 건조를 시작한 지 무려 18년 만인 2007년 5월에야 완성된 선박이다. 그래서 이 배의 나이를 30살이라고 해야할지 12살이라고 해야할지 애매하다. 이 쇄빙선은 완성되자마자 2007년 8월2일 러시아가 북극점 해저에 1미터짜리 티타늄으로 만든 러시아 깃발을 꽂고 해저토양을채취하는데 기여했고 그 후 100회가 넘게 북극점을 다녀옴으로서 러시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북극인프라로서 자리를 잡아갔다.

원자력 쇄빙선 승리50주년기념호 선상 곳곳에 방사선 지역 표시를 해두고 있다.

원자력 쇄빙선 승리50주년기념호 선상 곳곳에 방사선 지역 표시를 해두고 있다.

원자로 2기 싣고 시속 40㎞로 북극 바다 항해 

승리50주년기념호는 현존하는 지구 최강의 비군사 목적 원자력선이다.  길이 159.6m, 폭 30m, 배수량 2만5840t의 이 배는 171MW 원자로 2기로 50t짜리 프로펠러 3기를 돌려 최대 속도 시속 21.4노트(약 40㎞)의 속도를 낸다. 게다가 최대 2.8m 두께의 얼음을 깰 수 있다. 우리나라 첨단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최대 시속 16노트(약 30㎞), 쇄빙능력 1m인 것과 비교하면 승리50주년기념호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원자력쇄빙선이라 해서 연료 교체없이 다닌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승리50주년기념호는 5-7년에 한 번 우라늄 연료를 교체(250㎏)한다. 외부승객은 최대 128명까지 수용이 가능하고 승무원은 140명이 탑승하고 있다. 식수는 해수담수화장비를 이용하여 하루 최대 100t 생산이 가능하게 설계되어 있다. 모든 쓰레기는 소각처리 된다.

승리50주년기념호의 미션은 북극바다의 에스코트다. 북동항로를 이용하는 상선 앞에서 바다에 결빙된 얼음을 깨어 줌으로써 안전한 운항조건을 제공하고 만일의 상황에 대비한다. 물론 공짜가 아니다. 그 밖에 과학조사활동, 관광 등 다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매년 1인당 4만 달러에 가까운 승선료를 받고 100여명의 관광객(대부분 중국인)을 태우고 북극점까지 왕복하는 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014년에 개최된 러시아 소치올림픽 때는 성화를 북극점까지 봉송하는데 이용되기도 했다. 모항지인 무르만스크에서 북극점까지 2300여㎞ 거리를 쇄빙하면서 도달하는데 80시간 정도 걸린다.

지난 8월 러시아 학생들이 원자력 쇄빙선 승리50주년기념호를 타고 북극해를 항해하는 모험 프로그램을 경험한 후 돌아왔다. [TASS=연합}

지난 8월 러시아 학생들이 원자력 쇄빙선 승리50주년기념호를 타고 북극해를 항해하는 모험 프로그램을 경험한 후 돌아왔다. [TASS=연합}

얼음 덮힌 북극바다에선 원자력 쇄빙선이 탁월 

그런데 왜 지구상에서 가장 춥고 위험한 얼음바다인 북극해에 원자력선박이 다니는 것일까. 그것은 북극바다가 가진 특성 때문이다. 얼음이 덮혀 있는 바다에서 배를 운항하기 위해서는 얼음을 부수고 지나갈 수 있는 쇄빙능력이 필요하다. 이 쇄빙능력은 배의 무게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데 배가 무거워지면 많은 연료가 필요하다. 이 연료를 자주 공급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지만, 북극해의 연안에는 최근 개선이 되고는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미흡하다. 그래서 장기간 연료공급이 필요 없는 원자력추진 선박들이 북극해를 다니고 있는 것이다. 원자력쇄빙선은 다른 연료를 사용하는 쇄빙선에 비해 배 이상의 쇄빙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이 최근 원자력 쇄빙선 건조를 공언한 바 있다. 우리나라도 국가 연구개발(R&D) 과제로 선박용 원자로 개발을 위한 기초연구에 들어갔다는 뉴스를 읽은 적이 있다. 일체형 소형원자로라 연료를 한 번 주입하면 배가 수명이 다할 때까지 연료 교체를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앞으로 북극바다가 원자력 쇄빙선의 각축장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④회에서 '원자력 쇄빙선의 기억'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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