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정은과 핵 담판한 101세 노인 칼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54호 20면

책 속으로

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

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

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열린책들

1000만 부 작가 스웨덴의 요나손 #북핵 해결 새 장편소설 출간 #평양서 핵가방 빼돌린 두 노인 #뉴욕에서 트럼프도 바람 맞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3차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회담이 곧 진행될 것이라고 한다. 이르면 정상회담이 연내 개최될 수도 있다고 한다. 북한의 비핵화와 북·미정상회담은 언제나 전 세계 초미의 관심사다.

이런 가운데 6자 회담 참가국도 아닌 먼 유럽의 스웨덴에서 북핵 문제를 다룬 소설이 나와 눈길을 끈다. 스웨덴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 『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의 한글판이다. 스웨덴판은 지난해 출간됐다. 외국인은 물론 한국인 중에도 이 문제를 현실감 있게 이면을 속속들이 묘사한 작가는 드물다.

주인공 알란 칼손은 요나손의 첫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2009)에도 나온다. 스웨덴에서 120만 부(인구 1005만), 전 세계적으로 10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의 히어로 칼손이 이제 한 살 더 먹고 돌아왔다. 이번에도 칼손은 세계사의 주요 사건에 우연히 끼어들어 흥미진진한 모험을 펼친다.

스웨덴 인기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장편 『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은 김정은·트럼프 에게 한 방씩 먹인다. [일러스트 열린책들]

스웨덴 인기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장편 『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은 김정은·트럼프 에게 한 방씩 먹인다. [일러스트 열린책들]

인도네시아의 낙원과 같은 발리 섬에서 귀족같이 화려한 노년 생활을 하던 칼손은 절친이자 유일한 친구인 구제 불능 좀도둑 율리우스 욘손과 생일 축하 기념으로 섬을 둘러보기 위해 열기구를 탄다. 그런데 아뿔사, 기계 고장과 조작 미숙으로 두 노인만 태운 열기구는 망망대해에 불시착한다. 여기서 칼손의 좌충우돌 험난한 세계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마침 지나가던 북한의 벌크화물선 ‘명예와 힘’호에 구조된 칼손 일행은 바다에 내버려지지 않기 위해 자신들을 말도 안 되는 ‘열간 등압 압축법’ 핵전문가라 속여 평양에 가게 된다. 곡물을 쿠바 아바나에서 평양까지 운송하는 일을 맡은 이 선박엔 핵무기 제조용 농축 우라늄 4㎏이 실려 있었다.

이들은 평양에서 마침 유엔안보리 특사로 파견된 마르고트 발스트룀 스웨덴 외무장관을 만난다. 김정은마저 그럴듯하게 속인 이들은 재치와 기지로 농축 우라늄이 든 핵가방을 바꿔 쳐 무사히 평양을 빠져나온다. 푸틴의 말마따나 어느 날 갑자기 백한 살이나 먹은 꼬부랑 노인네가 평양에 나타나서는 그 조그만 두목을 멋지게 골탕 먹인 것이다.

뉴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만난 이들은 핵가방을 전달할 생각이었으나 그를 직접 만나 보고는 마음을 바꾼다. 이들은 유엔본부 앞에서 우연히 만난 독일 대사를 통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농축 우라늄을 넘기는 데 성공한다. 이후에도 스웨덴·덴마크·독일·러시아·케냐·탄자니아 등 전 세계에 걸쳐 삶과 핵을 둘러싼 에피소드들이 스펙터클하게 전개된다.

일러스트

일러스트

어떠한 곤란한 상황에 닥쳐도 주인공들은 당황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수많은 경험과 원숙함이 그들의 최대 무기다. 그뿐만 아니라 어떠한 난관에 부닥쳐도 보석처럼 빛나는 위트와 해학은 소설의 재미를 배가시켜준다. 무엇보다 대량학살 무기를 저지하려는 이들의 정의에 대한 용기는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101세 노인과 친구들은 결국 400㎏이나 되는 농축 우라늄이 콩고에서 탄자니아를 거쳐 평양으로 운송되는 루트를 통렬하게 차단해 다시 독일로 옮기는 데 성공한다.

메르켈 총리는 스웨덴 총리와의 통화에서 “나는 북한의 김정은이 도움을 받으면 안 되는 부분에서 도움을 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 귀국의 시민 알란 칼손에게 이 기회를 통해 안부를 전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푸틴은 “이봐 우린 101세 노인네에게 한 방 먹은 거라고. 그냥 놔 둬”라며 허탈해한다. 단 몇 달 동안 네 개 대륙에서 엄청난 흙탕물을 일으키는 데 성공한 주인공 칼손은 무려 101년 동안 단지 잘못된 때에 잘못된 장소에 가 있는 재주가 특출 났던 것이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2017년이다. 김정은·트럼프·메르켈·푸틴·마크롱 등 국제정치를 이끄는 실존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지금 바로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들이다. 전 지구를 누비는 유쾌한 첩보 코미디 영화를 보는 듯하다.

촌철살인, 풍자는 소설이 그냥 재미로만 쓰인 것이 아님을 입증한다. 트럼프는 대놓고 비난한다. TV 사회자를 조롱하고 국가원수를 모욕하고 각료들을 해고하겠다고 위협하고 불리한 소식은 가짜뉴스라고 치부하는 인물로 묘사한다. 러시아인들을 향해서는 ‘참된 길에 등을 돌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는 공산주의 정신이 조금은 남아 있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한다.

황당한 웃음 속에는 101세 노인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묘한 메시지와 관조, 지혜가 번득거린다. 가볍게 툭툭 던지는 농담조의 대사들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인생의 무게가 진득하게 배어 나온다. 무엇보다 소설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각인시켜 준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