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15% 물갈이 권유받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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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매년 15%의 교수를 물갈이해야 합니다."(서울대의 발전 방향을 자문한 A컨설팅 회사 관계자)

"15%나요? 우린 엄선해 선발하는데요. 그렇게 심각한가요?"(정운찬 서울대 총장)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경쟁력을…."(A컨설팅사 관계자)

정운찬(사진) 서울대 총장은 4월 중순 기자와 만나 "교수사회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며 이런 일화를 소개했다. "기업들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통해 국제적 경쟁력을 갖췄지만 교수사회는 아직도 기득권에 안주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외국 석학들을 초빙해 단기간이라도 강의를 맡겨 교수들에게 자극을 주고 싶다는 말도 했다.

◆ 개혁 전도사 4년=정 총장이 19일 퇴임했다. 그는 4년 임기 내내 '개혁'을 화두로 던졌다. '인재의 다양화'를 주장하며 지역균형 선발제를 도입했고, '소수 정예화'를 내세워 정원을 대폭 축소했다. 4년 동안 1600억원대의 발전기금을 모금하고, 총장 관사를 헐어 그 자리에 교수 아파트를 짓기도 했다.

그는 이날 서울대 문화관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못다한 개혁에 대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교수사회의 구조조정뿐 아니라 단과대학을 없애 학생들이 다양한 학문을 경험한 뒤 전공을 택하도록 하는 미국식 학부제(College)를 시도했으나 단과대학들의 반발로 좌절했다. 정치.외교학과 등 일부 학과의 통폐합도 관철하지 못했다.

◆ "지식인, 사회의식 갖춰야"=정 총장은 2002년 취임 때 '대학의 자율성 확보'와 '지성의 권위 회복'을 약속했다. 국립대 총장이지만 정부 정책과 사회 현안에 대해 할 말은 하는 '미스터 쓴소리'로 불렸다. 정부의 3불 정책(고교등급제.본고사.기여입학제 불가)뿐 아니라 부동산.세금 정책 등에 비판의 목소리를 거침없이 냈다. 서울시장, 한국은행 총재, 경제부총리 영입론이 끊임없이 나왔지만 '서울대를 베이스캠프로 여의도(국회).청와대를 왔다갔다 하면 안 된다'며 소신을 지켰다. 최근에도 정치권 영입설이 흘러나온다. 이에 "정치에 관심이 없다. 서울대 총장이란 직분과 견줄 만한 것이 세상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성의 권위 회복'과 관련, 그는 퇴임사에서 "지식인에 대한 사회의 존경심이 식어 있음을 도처에서 목격했다. 사회는 더 이상 지식인을 호의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어 "냉철한 전문지식이 뜨거운 사회의식과 결합해야 서울대가 진정한 지성의 전당으로 존경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황우석 교수 사태'에서 나타난 교수들의 부도덕성을 예방하지 못한 것은 오점으로 남는다.

정 총장은 허름한 만두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소탈한 성격이다. 야구 통계를 줄줄 꿰고 학생들을 야구장에 데리고 가기도 한다. 그는 올 가을 화폐금융론 등을 강의하는 교수로 되돌아간다.

권근영.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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