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Blog] '구원투수' 이장호 감독이 살린 부천영화제의 앞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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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제1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드디어 오늘(20일) 폐막합니다. 오늘밤 누구보다 편한 잠을 이룰 사람은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은 이장호(61) 감독입니다. 누가 뭐래도 그는 올해 부천영화제의 1등 공신입니다. 그가 아니었다면 부천영화제는 지난해를 마지막으로 사라졌을지 모릅니다. 영화계와 부천시의 대립과 갈등이 그만큼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2004년 말 홍건표 부천시장이 주축이 된 영화제 조직위원회가 김홍준 감독을 집행위원장 자리에서 쫓아낸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이후 영화계가 전면 불참을 선언하면서 지난해 부천영화제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치러졌습니다.

이때 '구원 투수'로 등장한 것이 이 감독입니다. 초대 집행위원장이었던 그는 만나는 영화계 후배마다 "나를 믿고 도와 달라"고 간곡히 호소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일일이 e-메일을 보냈습니다. "지난 50여 년 동안 영욕의 시간을 겪은 내가 영화 인생 후반부를 부끄럽지 않게 마무리 짓도록 해달라"고 부탁했죠. 영화계가 계속 홍 시장의 공개사과를 요구하자 "내가 대신 애통한 마음으로 사과한다"고 나섰습니다. 그 결과 영화 관련 단체들은 영화제 개막을 보름 정도 앞두고 전면 불참 대신 "개인 판단에 맡긴다"고 한발 물러섰습니다.

그래서 13일 부천시민회관에서 열린 개막식 단상에 올라가는 이 감독의 어깨는 흥분과 감격으로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심한 열병을 앓은 뒤 다시 여는 영화제라 감동이 온몸에 흐른다"고 밝혔습니다.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은 축사에서 "이 감독이 영화제 중흥을 위해 애쓰는 모습은 매우 감동적이었다"고 치하했습니다.

그러나 부천영화제의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입니다. 전반적인 프로그램은 상당히 미흡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개막식은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영화 상영에 앞서 2시간이나 행사를 진행한 것은 관객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였습니다. 홍 시장이 전직 부천시장을 포함한 역대 조직위원장에게 공로상을 전달하는 대목에선 무슨 시상식에 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홍보대사인 배우 이준기가 30분 가까이 지각한 것도 보기 안 좋았습니다. 주최 측은 "원래 폐막식에만 오려고 했지만 갑자기 일정을 바꿔 개막식에도 참석하려다 보니 생긴 일"이라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개막식에 오기 어려운 배우가 홍보대사를 맡았다는 것도 상식에 어긋납니다. 부대행사로 영화와 별 관계없는 '부천시민 걷기대회'를 여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부천에서 만난 택시기사 서모씨는 "전에는 영화제를 하면 축제 분위기가 느껴졌는데 요즘은 전혀 그렇지 않다. 부산영화제는 잘된다는데 여기는 자꾸 침체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내년 영화제는 올해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새출발하기를 기원합니다.

부천=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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