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말 홍건표 부천시장이 주축이 된 영화제 조직위원회가 김홍준 감독을 집행위원장 자리에서 쫓아낸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이후 영화계가 전면 불참을 선언하면서 지난해 부천영화제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치러졌습니다.
이때 '구원 투수'로 등장한 것이 이 감독입니다. 초대 집행위원장이었던 그는 만나는 영화계 후배마다 "나를 믿고 도와 달라"고 간곡히 호소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일일이 e-메일을 보냈습니다. "지난 50여 년 동안 영욕의 시간을 겪은 내가 영화 인생 후반부를 부끄럽지 않게 마무리 짓도록 해달라"고 부탁했죠. 영화계가 계속 홍 시장의 공개사과를 요구하자 "내가 대신 애통한 마음으로 사과한다"고 나섰습니다. 그 결과 영화 관련 단체들은 영화제 개막을 보름 정도 앞두고 전면 불참 대신 "개인 판단에 맡긴다"고 한발 물러섰습니다.
그래서 13일 부천시민회관에서 열린 개막식 단상에 올라가는 이 감독의 어깨는 흥분과 감격으로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심한 열병을 앓은 뒤 다시 여는 영화제라 감동이 온몸에 흐른다"고 밝혔습니다.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은 축사에서 "이 감독이 영화제 중흥을 위해 애쓰는 모습은 매우 감동적이었다"고 치하했습니다.
그러나 부천영화제의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입니다. 전반적인 프로그램은 상당히 미흡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개막식은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영화 상영에 앞서 2시간이나 행사를 진행한 것은 관객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였습니다. 홍 시장이 전직 부천시장을 포함한 역대 조직위원장에게 공로상을 전달하는 대목에선 무슨 시상식에 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홍보대사인 배우 이준기가 30분 가까이 지각한 것도 보기 안 좋았습니다. 주최 측은 "원래 폐막식에만 오려고 했지만 갑자기 일정을 바꿔 개막식에도 참석하려다 보니 생긴 일"이라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개막식에 오기 어려운 배우가 홍보대사를 맡았다는 것도 상식에 어긋납니다. 부대행사로 영화와 별 관계없는 '부천시민 걷기대회'를 여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부천에서 만난 택시기사 서모씨는 "전에는 영화제를 하면 축제 분위기가 느껴졌는데 요즘은 전혀 그렇지 않다. 부산영화제는 잘된다는데 여기는 자꾸 침체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내년 영화제는 올해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새출발하기를 기원합니다.
부천=주정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