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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LG의 서글픈 8K TV 공방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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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정훈
장정훈 기자 중앙일보 팀장
장정훈 산업 2팀 차장

장정훈 산업 2팀 차장

8K TV 전쟁이 갈수록 막장이다. 국내 가전의 쌍두마차이자 세계시장 1, 2위인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공방전치곤 지나치게 거칠다. LG는 ‘진짜’ 8K TV는 LG의 OLED TV뿐이고, 삼성 8K TV인 QLED는 ‘가짜’라고 대놓고 욕한다. 삼성은 QLED를 LG가 터 잡고 있는 여의도 면적의 두 배(TV 화면 사이즈) 만큼이나 팔았지만, 그 좋은 OLED는 얼마나 팔았냐고 비아냥댄다.

사실 연 2억대 정도인 세계 TV 시장에서 8K TV 판매량은 30만대가 안 된다. 무엇보다 지금은 8K TV로 볼 영화나 드라마, 스포츠 같은 콘텐트도 없다. 8K TV 공방전은 그래서 4K든 8K든 QLED(삼성)나 OLED(LG) TV를 한 대라도 더 팔겠다는 난타전일 뿐이다.

노트북을 열며 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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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서글픈 싸움이다. 보급형 LCD TV 시장을 중국에 다 빼앗기고, 마지막 남은 고가 TV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벼랑끝 싸움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2014년께부터 LCD를 전략산업으로 육성했다. 마침내 1~2년 전부터는 한국보다 최소 20% 싼값에 LCD를 만들기 시작했다. 중국 업체는 그 LCD로 TV를 만들어 삼성이나 LG TV의 반값에 판다. 중국의 물량 공세에 삼성과 LG 디스플레이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50인치 이하의 TV를 만드는 LCD 생산 라인을 속속 접고 있다. 지금 두 회사가 연말까지 1만명 가까운 희망퇴직을 받는 이유다.

중국은 이제 ‘중국 제조 2025’를 통해 우리가 못했던 디스플레이의 신소재와 장비 개발까지 밀어붙이고 있다. 우리 디스플레이산업은 2000년대 중반 일본에서 1위를 빼앗은 후 글로벌 시장을 석권해왔다. 하지만 중국의 도발에 불과 4~5년 만에 사지로 내몰렸다. 그나마 삼성과 LG가 대규모 투자로 당분간 시장 우위를 지킬 순 있겠지만 예전 같은 영화를 누리긴 힘들다. 중국에 밀리는 건 디스플레이뿐만이 아니다. 이미 조선, 철강, 자동차, 5G(세대) 통신 등의 주도권이 하나하나 중국에 넘어가고 있다.

세계에 자랑거리였던 산업이 하나둘씩 무너질수록 거제에서 포항에서, 울산에서 일자리도 속속 자취를 감춘다. 중국만 계획해 산업을 육성하는 게 아니다. 미국은 ‘첨단 제조(Advanced Manufacturing)’, 독일은 ‘인더스트리 4.0(Industry 4.0)’, 일본은 ‘산업재생전략(Industry Revival Plan)’ 등을 화두로 산업 경쟁력 제고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부와 업계가 머리를 맞댄다.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는데, 우리 정부는 언제까지 기업은 백안시하고 세금 들여 ‘알바형’ 공공 일자리만 만들고 있을 셈인가.

장정훈 산업 2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