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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새로운 것을 많이 접하세요, 작은 경험들이 시야를 넓혀줍니다"

중앙일보

입력

강주원씨는 청년들이 함께 고민을 나누는 자리인 ‘꿈톡’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여러 직장을 경험했지만 ‘꿈 톡’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강주원씨는 청년들이 함께 고민을 나누는 자리인 ‘꿈톡’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여러 직장을 경험했지만 ‘꿈 톡’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대기업 인턴 2개월, 공공기관 계약직 4개월, 제약회사 영업직 2개월, 청소년 교육단체 3개월, 대학 행정인턴 8개월, 공공기관 파견직 10개월…. 강주원(32)씨의 대학 졸업 후 이력만 보면 끈기없는 청년이라 여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3년여 동안 돈도 받지 않고 꾸준히 해온 일이 있는데요. 또래 청년들의 고민과 꿈을 나누는 토크쇼 ‘꿈톡’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것이죠.

광주광역시가 고향인 주원씨는 소위 ‘인 서울(in Seoul)’ 대학에 진학하는 데 성공, 동국대 경영학과 06학번으로 입학했어요. 대학 합격의 기쁨도 잠시, 인문·상경계 학생들 대부분은 대기업 취업을 목표로 학점 관리와 토익 등 영어 성적을 높이는 일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사실에 실망했죠. 주원씨는 뭔가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군대를 제대한 뒤 복학을 앞두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호주 워킹홀리데이에 도전했어요. 자취방 월세에 학비까지 부모님이 지원해 주셨지만 생활비는 스스로 벌고 싶었거든요. 부모님께는 영어 공부하러 어학연수 간다고 둘러댔어요. 호주에서는 공장 청소, 이삿짐센터 짐꾼, 리조트 하우스키핑, 단열재 바닥 까는 일 등 온갖 극한 직업을 전전했습니다. 대부분 일당이 한국의 2배가 넘어 몸은 힘들어도 돈 모으는 재미가 있었어요. 10개월 일해서 1500만원을 모았죠.

“호주에 있을 땐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늘 행복했어요. 내일에 대한 걱정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고전을 읽기 시작하면서 자꾸 ‘왜’라는 질문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왜 토익을 꼭 900점 넘어야 하나’ 하는 사소한 질문부터 ‘과연 이렇게 살아서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문제까지 고민하기 시작했죠.”

동그라미재단에서 개최한 9회 꿈톡 토크쇼에서 마이크를 잡은 강주원씨.

동그라미재단에서 개최한 9회 꿈톡 토크쇼에서 마이크를 잡은 강주원씨.

대학으로 돌아온 주원씨는 2012년 9월 ‘고독인’이라는 인문 고전 독서모임 연합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민에 대한 답을 인문학에서 찾아보기로 한 거죠. 당시 『실존주의자로 사는 법』(게리 콕스 지음) 같은 철학책을 여러 번 읽으면서 갈증이 해소되는 경험을 했고, 그 책을 계기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등 다른 책도 찾아서 읽게 됐어요.

졸업을 한 학기 앞둔 주원씨는 운 좋게 2013년 상반기 대기업 공채에서 아모레퍼시픽 영업관리팀 채용연계형 인턴으로 입사했습니다. 채용연계형 인턴이지만 모두가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건 아니었어요. 3개월 인턴과정을 마친 후 평가를 통해 20명 중 11명만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상황이었죠.

“연봉이나 복지가 우수한 대기업이라는 조건에 만족하면서 회사를 계속 다닐 수도 있었겠지만 ‘이렇게 살아도 되나’하는 의문이 끊임없이 들었어요. 고작 인턴 2개월에 직장생활의 모든 것을 경험해 봤다고 할 순 없었지만 선배들의 삶을 보면서 그들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명확하게 들었어요.”

입사에 대한 확고한 의지도 없는 자신이 진짜 입사가 절실한 친구들의 기회마저 뺏고 있는 것 같아 2개월 만에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저 자신이 어떤 일을 할 때 가슴이 뛰고 즐거운지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막연하지만 사람들과 감동을 주고받는 삶이 좋았어요. 제 성향 자체가 그런 사람인 거죠. 뮤지컬을 봐도 다른 사람들은 박수치고 나오면 끝인데 저는 한동안 감동에서 헤어나질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한때 연기수업을 받기도 했어요.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고 그들과 감동을 주고받는 일을 할 때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강주원(앉아있는 이들 중 오른쪽에서 세 번째)씨가 꿈톡 멤버들과 기획회의를 하고 있다.

강주원(앉아있는 이들 중 오른쪽에서 세 번째)씨가 꿈톡 멤버들과 기획회의를 하고 있다.

졸업 후 2013년 9월에는 또래 청년들을 모아 고민을 나눠보자는 취지로 온라인 플랫폼 ‘위즈돔’에 ‘꿈다방’이라는 모임을 개설했어요. 이후 30회까지 모임이 이어지며 인원도 늘어났죠.

그는 다시 정규직 일자리에 도전, 2013년 10월 중견 제약회사에 영업직으로 입사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심한 스트레스로 2개월 만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죠. 이후 대형 전시장 아르바이트부터 제약회사 약물 생동성 실험(복제약이 오리지널약과 생물학적으로 동일한지 확인하기 위한 실험)까지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거치면서 생계를 이어갔어요.

“아르바이트 생활을 이어가며 너무 힘들던 때, 동국대 행정인턴을 제안받고 한 줄기 빛처럼 느껴졌어요.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생겨 ‘꿈다방’의 확장 버전인 ‘꿈톡’을 2014년 5월 교내 강의실에서 시작할 수 있었죠. 4명의 연사와 20명의 청중이 모여 조촐하게 첫 행사를 개최했어요.”

꿈톡은 5회 행사까지는 동국대에서 열고 6회는 국회에서, 7~8회는 동그라미재단에서 진행했습니다. 9회부터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카페에서 월 1~2회 비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어요. 꿈톡 외에도 버스킹하는 뮤지션들과 함께하는 음악 토크쇼 ‘꿈톡의 크레파스’, 연예인 또는 명사들과 함께하는 ‘기부토크’까지 다른 형식을 가미한 버전으로 확대해 나갔죠.

“꿈톡은 청년들의 소통을 위한 청년문화 기획 단체입니다. 9명의 멤버들이 대부분 직장을 다니면서 활동 중이죠. 꿈톡에는 20대부터 40대, 심지어 60대까지 와서 자신의 고민과 꿈을 이야기해요. 청년은 나이로 구분할 수 없으니까요. 연사의 지인으로 오셨던 60대 참가자는 전통술을 빚는 일을 하는데 아직도 꿈이 있다며 눈동자가 반짝거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나이만으로 그분을 청년이 아니라고 할 순 없죠.”

서울 대치동에 있는 카페 레이지앤트에서 15회 꿈톡 토크쇼가 열린 모습.

서울 대치동에 있는 카페 레이지앤트에서 15회 꿈톡 토크쇼가 열린 모습.

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않느냐는 질문에 강씨는 ‘꿈톡’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파견직이나 임시직을 전전하며 제대로 된 직장 경력이 없으니 취업이 더욱 힘들어지는 악순환이 생기고 있죠.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꿈톡 멤버들과 공동집필한 책 『우리는 부끄러운 청춘으로 살 수 없다』를 출간하기도 했어요.

‘꿈톡’ 참가자들이 많아지고 활동 영역이 확대되면서 이들은 공간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리고 한국판 ‘빨간 클립 프로젝트’를 시도했어요. 2005년 캐나다의 한 백수 청년이 빨간 클립 하나로 1년 동안 물물교환을 반복해 2층집을 얻게 된 프로젝트인데요. 주원씨의 한국판 ‘빨간 클립 프로젝트’는 꿈톡 멤버들과 쓴 책 『우리는 부끄러운 청춘으로 살 수 없다』 한 권으로 시작했어요. 책은 9번의 물물교환을 통해 시가 150만원 상당의 고급 시계로 바뀌었죠.

이후 좀처럼 물물교환이 이뤄지지 않던 중 2016년 9월 10일, 꿈톡 행사를 위해 기꺼이 장소를 제공해주던 대치동 카페 사장이 주원씨에게 엄청난 제안을 해왔어요. 몇 년간 이들의 활동을 눈여겨 봐오던 사장은 10번째 물물교환으로 카페를 꿈톡에 넘기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상상도 못했던 엄청난 제안이었어요. 카페 운영권을 넘겨받게 될지는…. 2년 반 동안 꿈톡을 진정성 있게 이끌어온 데 대한 보상 같아서 너무나 감사했어요. 청년들이 자기 삶의 주도권을 갖게 되면 잠재력이 터져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청춘이라면 돈보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주원씨는 대치동 카페를 꿈톡만의 색깔로 새로 단장해 2016년 10월 31일 오픈했어요. 이곳에서는 청년들을 위한 전시회 대관은 물론 버스킹 공연 등을 개최하기도 했죠.

 카페 레이지앤트에서 뮤지션들과 함께하는 음악 토크쇼 ‘꿈톡의 크레파스’를 열었다.

카페 레이지앤트에서 뮤지션들과 함께하는 음악 토크쇼 ‘꿈톡의 크레파스’를 열었다.

그는 최근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카페 운영을 위해 동분서주 바쁜 나날을 보내던 자신이 어느 순간 책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인문학책 읽기 모임을 시작하기로 한 건데요. 대학시절 ‘고독인’을 함께했던 친구들과 ‘직장인판 고독인’을 시작했어요. 청년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갖고 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인문학을 통한 자기성찰이라는 초심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쓰디쓴 고민과 방황의 20대를 거쳐온 주원씨는 청소년들에게  ‘너무 일찍 진로 고민을 하지 말라’는 조언을 했어요.

“최근 만난 중학생들이 진로 고민을 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제가 중학생 땐 맨날 동네에서 뛰놀고 자전거 타고 산에 올라가고 하는 경험들을 많이 했는데, 요즘 중학생들은 벌써부터 어른의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청소년기엔 어른들로부터 꿈이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꿈을 가지려고 일부러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꿈이란 어쨌든 바뀔 것이니까요. 살아가는 길에서 만나는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봤으면 좋겠어요. 청소년기엔 아직 모든 것이 말랑말랑하니까 새로운 것을 많이 경험하고 사소한 경험들을 늘려나가는 것이 중요해요.”

글=김은혜 꿈트리 에디터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행하는 자유학기제 웹진 ‘꿈트리(dreamtree.or.kr)’의 주요 콘텐트 중 하나입니다. 무엇이 되겠다(what to be)는 결과 지향적인 진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겠다(how to live)는 과정 중심의 진로 개척 사례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틀에 박힌 진로가 아닌,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진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현재의 성공 여부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 행복을 찾고, 남들이 뭐라 하든 스스로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길’을 점검해 보시기 희망합니다. 꿈트리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소년중앙과 협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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