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반갑지 않은 수재민들|천막 안엔 차례 상 차릴 곳도 없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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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수재민들에겐 추석이 오히려 두렵다. 50년래 대홍수가 삼남지방을 할퀴고 간지도 벌써 40일. 아침·저녁으로 벌써 찬바람이 일고 추석이 8일 앞으로 다가왔으나 주택과 전답을 잃어버린 수재민들은 아직 복구되지 않은 채 천막생활로 추석을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추석을 앞둔 삼남수해 현장을 돌아본다.

<전남>
『추석 준비가 다 뭐라요. 차례 상 차려놓을 곳도 없는 천막신세에….』
박복례씨 (69·여·전남 나주시 영강동158)는 물난리가 언제였느냐는 듯 무심히 흐르는 영산강에 멍한 눈길을 머문 채 『그래도 추석차례 상은 차려야 도리인디…』라며 연신 한숨짓는다.
50년만의 대홍수라는 살인적인 7월 집중호우에 이어 8월 또다시 큰 물난리를 겪은 이곳 수재민들은 추석은 엄두도 못 낸 채 당장 잠자리 걱정이 더 시급하다.
전남을 온통 흙탕물로 뒤덮은 7,8월의 겹친 대홍수로 공식 집계 된 재산피해액만도 무려 1천2백54억원.
72명의 인명을 앗아가고 1만7천여 채의 주택 등 각종 건물이 전·반파 또는 침수 된 수해의 상처는 곳곳에서 아물지 않은 채 복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나주·강성 등 수해가 극심했던 곳의 주택복구 작업이 시작되고는 있지만 아직도 63가구 2백63명의 이재민들은 실내체육관이나 유아원에서 집단생활을 하거나 강둑에 천막을 치고 새우잠을 자고 있다.
나주시 수재민들의 경우 27가구 1백31명은 실내체육관에 한 달이 넘도록 수용돼 있으며 영강동 이재민 15가구 38명은 영산강 둑에 2∼3평 짜리 천막을 쳐놓고 기거하고 있다.
장성읍 유탕리 신기부락 차장권씨 (35)등 21가구 94명도 집을 잃고 동네 유아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나주시는 이들 수재민들을 위해 빈방 빌려주기 운동과 주택복구용 시멘트 보내기 운동을 벌이고 있으나 영강동 이재민들의 경우 주택을 새로 지으려해도 집터가 하천부지여서 건축허가를 받을 수 없어 특별 배려가 없는 한 겨울을 천막에서 나야할 지경이다.
전남도는 수해주택을 10평형·15평형 2가지로 나눠 보조 2O%, 자담 2O%, 융자 60%의 비율로 평당 53만3천원씩을 들여 복구할 계획이지만 건축비가 현행 70만원 선에 크게 못 미치는 데다 자담능력이 없는 수재민이 많아 복구계획에 차질이 예상되고 있다. <나주=임광희기자>

<전북>
지난 7월에 있은 두 차례의 호우로 주택 64채가 전파되고 15채가 반파 돼 3백43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던 전북도의 복구실적은 25가구가 복구를 포기했고 겨우 7채가 완공됐을 뿐이다.
『자재 값이 크게 올라 평당 건축비가 많이 올랐는데도 정부의 복구비는 3년 전 그대로이고 기술자 구하기가 힘들어 착공은 했으나 공정이 부진합니다.』
완주군 김모씨(54)는 정부의 수해주택 복구비가 10평형 5백30만원, 15평형 8백만원으로 책정돼 3년째 그대로여서 평당 70만∼80만원씩 소요되는 평균 건축단가를 밑돌기 때문에 주민부담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도시에서 기술자를 구해야 하는 농촌주택은 복구가 더 어렵다고 말했다.
『자기부담금을 마련하기 어려워 복구를 포기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주는 수해주택 복구비론 최소한 10평형의 경우 1백6만원, 15평형은 1백60만원의 자기부담금을 확보해야하기 때문에 그동안 물가인상을 감안하면 수해주민으로선 감당하기 어려워 79가구 가운데 32%인 25가구가 채 당 42만4천∼64만원씩 지원되는 의연금을 받아 빈집을 구해 입주하거나 부속건물을 수리, 입주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뭐니뭐니 해도 복구사업 자체가 늦은 것이 큰 문제입니다. 수해가 난지 1개월이 훨씬 지났는데도 아직 착공조차 안된 주택들이 많기 때문에 정부의 복구계획이 빠른 시일 안에 수립돼야 할 줄로 압니다.』
추석을 8일 앞둔 도내 수해주택 복구실적은 복구를 포기한 25가구를 뺀 54채 가운데 설계 중 6, 허가 12, 기초 20, 벽체 9, 완공 7채 등 공정 54·7%에 머무르고 있다. <전주=모보일 기자>

<경남>
『태풍 때 집을 떠내려보내고 설상가상으로 땅까지 뺏기게 됐습니다.』
김해시 이동31 박윤수씨(30)는 태풍이후 한 달이 넘도록 무너진 집을 복구도 못하고 아래채에 임시로 방한 칸을 마련, 4식구가 기거하면서 다가오는 추석 명절 준비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다.
박씨가 선친에게서 물려받은 이 집은 하천부지에 위치, 오래 전에 불하를 받았지만 이전등기를 하지 않아 서류 상으로는 대지가 국유지로 돼있어 무허가건물이다.
박씨는 이번 태풍으로 3칸 짜리 집을 쓸려보낸 뒤 신축하려고 건축허가를 신청했다가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을 알고 군청·동사무소에 하소연했지만 불하받은 서류와 세금영수증 마저 홍수에 떠내러 보내 소유권 인정을 받을 수 없는 딱한 처지에 놓여 있다.
이웃마을 최갑수씨(69·김해시 화목동141)도 홍수 때 내려앉은 집이 서류 상 논 위에 지은 무허가 건물로 돼있어 집터를 대지로 지목변경 한 후 복구해야할 실정이다.
이밖에도 김해군 한림면 장방리의 경우 태풍 때 삼경산업(주) 등 4개 중소기업 공장이 모두 물에 잠겨 기계·제품이 못쓰게 돼 1백여 종업원들은 추석을 제대로 지낼 수 없게 됐다.
7월의 태풍 때 도내에서는 전파 1백11채, 반파 77채 등 모두 1백88채의 수해주택이 발생했다.
전파된 주택가운데 15채는 복구공사를 시작했으나 나머지 96채 중 27채는 복구를 포기했고 15채는 설계중이거나 이전부지를 마련 중에 있으며 54채는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복구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다.
또 반파 주택은 28채가 응급복구를 끝마쳤으나 나머지는 그대로 방치해 두고 있다.
이처럼 주택복구가 늦는 것은 피해주민들이 대부분 영세민인데다 복구지원액이 3년 전에 책정된 것이어서 현실성이 없고 재해보상비 지급마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
이 가운데 국비·지방비·수해의연금 등으로 무상지원 해주는 금액은 전체 복구비의 20%뿐이고 나머지는 융자 60%, 자담 20%로 돼있다. 따라서 지원규모는 전파 주택 15평의 경우 1백60만원, 10평은 1백6만원, 반파는 53만원이 지원되는데 이마저 4일 현재 지급이 안되고 있다.
수해지역 주민들은 건축비 지원을 현실화해 주든지, 농촌형 임대주택을 건립해 생계지원대책을 마련해주길 바라고 있다. <창원=허상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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