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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 세계평화 사자로 나섰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80년 대통령선거에서 레이건 후보에게 참담한 패배를 당한 후 씁쓸히 고향 조지아주로 돌아간 카터 전미대통령이 세계평화에 꾸준히 관심을 보이며 미국정부가 공식적으로 할 수 없는. 국제분쟁해결사로서 역할을 계속하고 있어 미국인들의 새로운 관심을 끌고 있다.
그의 이 같은 공적활동은 퇴임 후 주로 돈벌이에 관심을 가져온 그의 전임자 닉슨·포드나 후임자인 레이건 대통령과는 대조적으로 미국인들에게 비쳐지고 있다.
카터 전대통령은 오는 7일 조지아주 아틀랜타시의 카터센터에서 분쟁중인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정부와 에리트리안반군대표들간의 협상을 중재한다.
이번 협상의 성공여부는 미지수지만 28년간이나 내전상태에 있는 양쪽이 정부대표기관도 아닌 카터의 중재로 그의 개인사무실에서 얼굴을 맞대고 협상을 하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번 협상은 그 동안 카터가 가뭄과 전쟁으로 인해 아프리카의 기아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데 따른 한 산물이다.
카터는 가뭄과 전쟁으로 수만명의 사망자를 낸 에티오피아의 정부와 반군지역에 식량보급을 위해 88년 세차례 방문했다가 양쪽에 굶주림의 비극을 종식시키기 위해 협상할 것을 제의, 결국 양쪽의 동의를 얻어 이번 협상을 추진하게된 것이다.
카터가 세계 여러 나라의 분쟁해결에 민간인으로 되돌아간 후에도 관심을 갖게된 것은 세계 도처에 분쟁은 확대되고 있지만 미국이나 소련 등 어느 나라도 외교적문제로 공식분쟁조정자로 역할하기가 어렵다는 그의 대통령재직시의 경험 때문이었다.
퇴임 후 그는 아틀랜타의 카터센터에 국제협상네트워크라는 사설단체를 설립, 전문연구진을 두고 분쟁을 연구하고 이의 해결책을 모색해 왔다. 이번 에티오피아협상은 그 첫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앞서 카터 전대통령은 지난 5월 국제 감시단을 이끌고 파나마대통령선거를 참관, 이 선거가 부정선거였음을 세계에 확인시켰다.
그는 또 오는 90년 2월로 예정된 니카라과대통령선거에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는 산디니스타정부의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으로부터 국제 감시단의 대표로 선거를 참관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에티오피아나 파나마·니카라과는 이들 나라에 미국과 적대적인 정권이 들어섰거나 관계악화로 미국의 공식적인 외교접촉과 영향력이 극히 제한되어. 있는 나라들이다.
미국과는 적대적인 이들 나라들로부터 카터가 중재자나 객관적 관찰자로 환영받고 있는 것은 그의 도덕적 경직성과 상대를 이해하려는 포용력, 그리고 그의 변치 않은 공익추구의 정치철학 때문으로 지적되고 있다.
대통령 재직시에도 그의 이 같은 인격과 철학은 수십년간 적대관계에 있던 이스라엘과 이집트간에 78년 캠프데이비드협정을 가능케 했었다.
이번 에티오피아 협상에서도 에티오피아와 공식외교관계가 냉각되어 있는 부시 행정부의 간접지원을 받고 있어 뭔가 결실을 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의 재직시 물가폭등과 이란인질사건으로 등을 돌렸던 미국인들은 퇴임 후에도 계속되는 카터의 의로운 행적을 보고 그를 다시 평가하기 시작하고 있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다 퇴임 후엔 금방 잊혀지고 있는 레이건 대통령과는 달리 카터는 재직 중에 보다는 퇴임 후에 더 인기 있는 미국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뉴욕=박애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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