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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위해 울지 말라고? 아르헨티나를 망친 달콤한 선심정책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강정영의 이웃집 부자이야기(34)

영화 '에비타'에서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마오'를 부른 마돈나. [사진 에비타 스틸]

영화 '에비타'에서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마오'를 부른 마돈나. [사진 에비타 스틸]

'에비타(Evita)'는 에바 페론의 일대기를 그린 뮤지컬이다. 마돈나가 부른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마오(Don't Cry for Me, Argentina)'를 한번 들어보자. 격정적이며 호소하는 듯 또 애절하다.

"믿기지 않겠지만, 난 6~7년간 여러분과 함께했던 그 여자예요. 난 어쩔 수 없이 바뀌어야만 했어요. 평생 창밖을 내다보며 음지에서 헤맬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난 자유를 선택했어요. 여기저기서 새로운 것들을 경험해봤죠. 하지만 그 무엇도 날 감동시키지 못했어요. 부와 명성은 결단코 내가 추구한 게 아니었어요. 그것들은 환상에 불과하죠. 해결책이 못 된답니다. 광기 서리고 거친 젊은 날에도 난 여러분을 결코 버린 적이 없어요. 난 여러분을 사랑했고, 여러분도 날 사랑해 주길 바라요. 날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는 아름답고 풍요롭다. 세계 최고의 때 묻지 않은 자연, 파타고니아를 품고 있다. 탱고, 프란치스코 교황, 공산주의 원조 혁명가 체 게바라, 축구황제 리오넬 메시의 조국이다. 이들처럼 색깔이 전혀 다른 인물을 동시에 배출한 개성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국토 면적이 한반도의 12배가 넘고, 인구 4500만에 1인당 GNP는 1만 1650달러(세계은행 기준) 정도다. 남미 국가들 대부분이 혼혈 메스티소인데 반해, 아르헨티나는 백인들이 대부분이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유럽 이민자의 후예들로 콧대가 높다.

아르헨티나는 국토 면적이 한반도의 12배가 넘고, 인구 4500만에 1인당 GNP는 1만 1650달러 정도다. 소와 양이 사람보다 많고 농축산물, 광물, 에너지가 풍부한 자원 부국이다. [사진 pixabay]

아르헨티나는 국토 면적이 한반도의 12배가 넘고, 인구 4500만에 1인당 GNP는 1만 1650달러 정도다. 소와 양이 사람보다 많고 농축산물, 광물, 에너지가 풍부한 자원 부국이다. [사진 pixabay]

소와 양이 사람보다 많고 농축산물, 광물, 에너지가 풍부한 자원 부국이다. 화덕에서 구워내는 양고기 바비큐는 세계 최고다. 그런데, 지난 8월 단기외채 1000억 달러(120조 원) 상당을 지급 연기한다고 선언, 디폴트(채무 상환 불이행) 상황에 직면했다. 디폴트를 선언한 것이 지금까지 8번이며, 2000년 이후에도 2번이나 된다. 한때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에 버금가는 세계 5위의 경제부국이었던 나라가 왜 이 지경이 됐을까.

에바 페론은 후안 페론 대통령의 26세 연하로 두 번째 아내였다. 가수이자 영화배우로 불우하고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페론 노동당에서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열정적으로 활동하다가 1952년 33살의 나이로 요절했다.

남편 페론은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대령으로 군사 쿠데타에 참여, 대통령까지 오른 인물이다. 정치적 기반은 노동자 계층이었고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을 폈다. 은행, 철도, 주력 산업인 곡물산업을 국유화했고, 노동자의 임금을 대폭 인상했다.

반제도권, 반엘리트, 반 기득권층을 모토로 삼고, 전폭적인 복지혜택을 주면서 지지계층을 결집시켰다. 과거 정치 적폐 청산, 평등과 정의를 외치면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도 아닌 이상적이 사회시스템, '제3지대(Third Position)'를 주창했다.

페론 이후 70여 년이 흘렀지만 페로니즘을 추종하는 정권이 35년 이상 교차 집권했다. 지금도 그의 망령이 아르헨티나를 떠돌고 있는 것이다. 개혁적인 대통령이 수차례 등장했지만, 빈번한 쿠데타와 정권교체로 개혁에 실패했다.

눈덩이 같은 재정적자와 고질적인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 공기업 민영화, 공산품 가격 동결 등 개혁 정책은 번번이 물거품이 되었다. 뿌리 깊은 페로니즘 개혁에 손을 대자마자 임기를 마쳐야 했기 때문이다.

과도한 복지는 나라 곳간을 텅 비게 하고, 외채가 누적되면 국가 부도를 불러온다. 아르헨티나가 준 뼈아픈 교훈이다. [사진 pixabay]

과도한 복지는 나라 곳간을 텅 비게 하고, 외채가 누적되면 국가 부도를 불러온다. 아르헨티나가 준 뼈아픈 교훈이다. [사진 pixabay]

불필요한 인력 감축과 복지 혜택 축소를 위한 살 빼기에는 고통이 따른다. 이를 참지 못하는 계층들은 극렬히 저항한다. 그 누적된 결과는 빈번한 모라토리엄(채무 지불유예)과 국가부채 디폴트 선언으로 나타났다. 인플레율이 50%가 넘고, 연 이자율 78%, 주가 40% 폭락, 올해 경제성장은 마이너스 2~3%를 예상한다.

정의, 평등, 공정한 분배는 '가슴 뛰는 구호'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과도한 복지는 나라 곳간을 텅 비게 하고, 외채를 쓰게 되고, 누적되면 국가부도를 불러온다. 아르헨티나가 주는 교훈은 뼈아프다. 임시직 정치인들이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면, 그 부담과 고통은 미래세대가 떠안는다는 사실이다. 더 무서운 것은 국민의 근로의욕을 상실시켜 정부 복지에 의존케 하는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농축산물 수출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고부가가치 공산품 수출이 매우 적다. 교역조건이 나쁘다는 뜻이다. 한국이 반도체, IT, 화학, 자동차 등 고부가가치 상품을 수출해 외화를 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기업에 대해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지 모른다.

마르크스 레닌이 주창한 경제적인 자유와 평등은 공산주의였다. 이를 실천한 동유럽, 중국, 러시아, 북한에서 자유가 있고, 경제적으로 평등했는가. 실상은 그 반대였다. 극소수 권력층에게 절대 권력과 부가 집중되고, 인민들은 자유를 박탈당하고 의식주를 근근이 정부의 손에 의존해야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노동자와 인민을 위한 복지국가? 구호는 그럴듯하지만 그 실천은 말처럼 쉽지 않다. 반복되는 경제 불안과 빚더미에 파묻힌 나라, 아르헨티나를 보라. 선심정책은 포도나무를 썩게 한다. 당장은 달콤하나 지나치면 근로의욕을 약화하고, 모두를 비참하게 하는 마약임을 깨달아야 한다. 부강한 나라들을 보라. 그들은 '퍼주는 복지'가 아니라 좋은 일자리가 많고, 모든 국민이 열심히 일하는 나라들이다.

강정영 청강투자자문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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