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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명품 소비국 한국, 그런데 왜 토종 명품 하나 없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강정영의 이웃집 부자이야기(31)

유럽 최고의 부자에 등극한 베르나르 아르노 LVMH(루이비통 모에 헤네시) 회장. [EPA=연합뉴스]

유럽 최고의 부자에 등극한 베르나르 아르노 LVMH(루이비통 모에 헤네시) 회장. [EPA=연합뉴스]

얼마 전 외신에 명품으로 유명한 다국적 럭셔리 그룹 루이뷔통 모에 헤네시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유럽 최고의 부자에 등극했다고 크게 보도됐다. 그 회사는 와인, 주류, 향수, 화장품, 핸드백, 시계와 주얼리 등 거의 모든 소비제품을 아우른다. 그의 재산은 최소 1000억 달러는 될 것으로 추산된다.

어떻게 그가 세계 최고의 부자 반열에 올랐을까. 그 회사 제품을 좋아하는 세계의 많은 사람 덕분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한국의 해외여행객들도 조금은 기여했을 것 같다. 사람들은 허영심에 눈이 멀어 명품을 구매하는가. 아니면 이국적인 디자인과 예술적인 요소에 매력을 느껴서일까.

이탈리아 피렌체는 르네상스가 찬란하게 꽃피웠던 도시다. 그곳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등 뛰어난 대가들이 불멸의 예술 작품을 만들어 냈다. 그 배후에는 14~17세기까지 피렌체에 영향력을 행사한 부자 가문, 메디치가의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러 전문지식으로 시너지 내는 ‘메디치 효과’

메디치 가문 주요 인물을 곳곳에 그려 놓은 동방 박사들의 행렬, 베노초 고촐리, 프레스코, 1459년경. [사진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메디치 가문 주요 인물을 곳곳에 그려 놓은 동방 박사들의 행렬, 베노초 고촐리, 프레스코, 1459년경. [사진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메디치 효과’라는 용어가 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지식이 결합할 때 더 큰 시너지를 창출한다는 뜻이다. 메디치가 후원한 예술가, 철학자, 과학자들이 각자 전문분야의 벽을 허물고 서로의 재능을 융합해 큰 시너지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아름답고 예술적인 디자인을 자랑하는 명품 브랜드인 프라다, 구찌, 에르메스 등은 이러한 대가들의 예술작품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영감을 받는다고 한다. 16세기에 지어진 바티칸 박물관의 고색창연한 바닥 무늬도, 타이완의 고궁 박물관에 소장된 중국의 진귀한 예술품도 명품 디자인의 소재로 쓰인다고 한다.

그렇다면 명품을 사는데 허영심은 작용하지 않을까. 프랑스 작가 모파상의 단편 소설 『목걸이』를 보면 여자들의 허영심도 만만치 않다. 명품을 걸치면 자신도 명품이 된 듯한 착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 그 단편은 허영심의 함정을 잘 보여준다.

주인공 마틸드 르와젤은 예쁘고 매력적이었으나 집안이 가난해 하급 관리에게 시집을 간다. 자신은 아름다워 우아하게 살아야 하는데, 몸치장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게 사는 것이 늘 괴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장관 관저 저녁 무도회에 초대를 받는다. 입고 갈 옷도 없어 수도원 학교 시절 부유한 동창에게 빌리기로 한다.

프랑스 작가 모파상의 단편 소설『목걸이』에서는 사람이 가진 허영심의 함정을 잘 보여준다. 소설『목걸이』의 초판이미지. [사진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프랑스 작가 모파상의 단편 소설『목걸이』에서는 사람이 가진 허영심의 함정을 잘 보여준다. 소설『목걸이』의 초판이미지. [사진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친구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도 빌려 무도회에 참석한다. 아름답고 우아한 맵시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뭇 남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기쁨에 도취해서 집에 돌아와 다시 한번 자기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보면서 비명을 지른다. 목에 걸쳤던 목걸이가 없어진 것이다.

그 목걸이를 되돌려주기 위해서 아버지에게 받은 유산도 모자라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리고, 허리띠를 졸라맬 정도로 가난한 생활을 하며, 지붕 밑 다락방에 세를 살며 빚을 갚는다. 그러기를 십 년 만에 다이아몬드 분실로 진 빚을 정리할 수 있었다.

몇 년 후 샹젤리제 거리에서 그 동창생 친구를 우연히 만나 목걸이를 잃어버려 고생살이한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그녀가 하는 말이 “아이 가엾어라, 내 것은 가짜였어, 기껏해야 몇백 프랑밖에 되지 않는.”

소설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자칫 허영에 눈이 멀면 인생을 바쳐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경고 아닐까. 소비가 일상이 된 세상이다. 눈만 뜨면 현란한 광고가 넘쳐 난다. 이런 유혹에 빠져 이것저것 사재끼는 또 다른 르와젤은 없을까. 미국에 가서 일본 여자와 한국 여자를 구분하는 쉬운 방법이 하나 있다. 명품을 하나 걸쳤으면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다. 물론 우스개다.

명품 블랙홀 중국

명품에는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장인정신과 예술이 담겨있다. 한국이 자동차와 핸드폰만 팔아서 되겠는가. 우리 고유의 문화와 문양을 담고 있는 세계적인 명품이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중앙포토]

명품에는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장인정신과 예술이 담겨있다. 한국이 자동차와 핸드폰만 팔아서 되겠는가. 우리 고유의 문화와 문양을 담고 있는 세계적인 명품이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중앙포토]

그러나 중국에는 못 당한다. 전 세계 명품 소비의 3분의 1을 중국이 차지한다. 지난해 중국인이 명품 구매에 쓴 돈은 약 132조 원이고, 2025년에는 약 211조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매켄지가 예상했다.

그런 명품의 실제 원가는 어느 정도일까. 면세점 가격의 대략 3분의 1 수준이라고 한다. 인천공항 면세점 입점을 위해 업체 간 경쟁이 심할 때는 매출의 2분의 1을 공항공사 임대료로 냈다고 한다. 가격의 거품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그런 명품을 진품이 아닌 짝퉁이라도 들고 다녀야 속이 편한 사람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 부인 미셸은 소박하고 심플한 옷차림으로 유명하다. 프린스턴 대학 학부를 나와 하버드에서 법학박사를 받은 그녀는 여성들에게 가장 영감을 주는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였고, 최고의 학교를 나와서 명품이 필요 없었을까. 명품에 목을 매는 사람들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명품은 주로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등 유럽에 본거지를 두고 있다. 한국에서 만들어 납품하는 명품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는 왜 고유의 명품 브랜드가 없을까. 우리나라는 50~60년 전만 해도 농경사회여서 디자인이나 패션의 역사가 짧다. 또 명품이 되려면 제품의 소재와 디자인 외에 그 나라의 국가 이미지도 영향을 미친다. 누구나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하면 문화와 예술이 있는 매력 있는 나라로 보지 않는가.

명품은 부가가치가 크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거기에는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장인정신과 예술이 담겨있다. 한국이 자동차와 핸드폰만 팔아서 되겠는가. 우리도 외국 사람들이 꼭 갖고 싶어 하는 한국 고유의 문화와 문양을 담고 있는 세계적인 명품 만들기를 기대한다.

강정영 청강투자자문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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