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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은 세렝게티, 사자에 잡혀먹는 꽃사슴 수두룩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강정영의 이웃집 부자이야기(33)

세렝게티 대초원은 '끝없는 평원'을 뜻한다. 이곳은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현장이다. (사진은 사바나 초원) [중앙포토]

세렝게티 대초원은 '끝없는 평원'을 뜻한다. 이곳은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현장이다. (사진은 사바나 초원) [중앙포토]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대초원은 '끝없는 평원'을 뜻한다. 그곳은 살아남기 위해 쫓고 쫓기는 치열한 약육강식의 현장이다. 사냥한 아프리카 꽃사슴 가젤을 두고, 하이에나와 들개 떼가 유혈 낭자한 싸움을 벌이는 모습 본 적 있을 것이다. 흥미로웠는가.

한국에도 세렝게티가 있다. 그보다 훨씬 더 살벌한 전투가 소리 없이 벌어지고, 고개를 들지 못하고 다리를 절며 퇴각하는 패잔병들이 수없이 많다. 창피해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그 적나라한 실상이 공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다를 뿐이다. 바로 개인 투자자가 500만 명이 넘는다는 주식시장이다.

주식에 발을 들여놓는 계기는 대체로 비슷하다. 경제전문 채널에서 두세 달 만에 몇백 프로를 먹었다는 사람들에다가, 주식으로 재미를 톡톡히 봤다는 무용담으로 투자를 부추기는 사람들이 주변에 꼭 있다. 그러면서 확신에 차 '이 종목 저 종목' 추천까지 한다. 귀가 솔깃 '대박의 꿈'을 안고, 손을 대기 시작한다.

이해는 된다. 은행 이자 1~2%는 성에 안 차 주식으로 홈런을 쳐보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또 자기만은 잘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발동한다. 이런 사람을 1~2년 뒤에 다시 만나 재미 좀 봤냐고 하면 시무룩해지면서 말을 더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 그럴까. 한국의 주식시장은 정체된 시장이다. 2010년 12월 14일 코스피 지수가 2000선을 돌파한 이후 2016년 12월까지 1900~2200선의 박스권에 머물러 있었다. 2018년 1월 29일 최고점 2600에 근접했다가, 올해 8월 7일 1907까지 하락했다. 한마디로 9년간 제자리걸음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고수라 한들 얼마나 재미를 봤겠는가. 더구나 개인들은 조직, 정보, 자금력에서 외국인과 기관이라는 거대한 세력을 이기기 어렵다. 하이에나와 들개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 가젤 처지다.

때로 몇 번 재미를 보기도 한다. 처음부터 계속 손해만 봤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아예 손을 뗐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식을 오래 하면 90%가 실패한다거나 심지어는 98%가 손실을 본다는 사람도 있다.

한국의 주식시장은 정체되어 있다. 9년간 큰 변동 없이 1900~2200선의 권에 머물러있었다. [중앙포토]

한국의 주식시장은 정체되어 있다. 9년간 큰 변동 없이 1900~2200선의 권에 머물러있었다. [중앙포토]

몇몇 우량주마저도 3~4년 반짝하다가 중국 때문에, 오너의 비리로, 작전세력 때문에, 임상 시험이 실패했다는 등등의 이유로 하강 곡선을 그리고 만다.

그렇다면 미래는 어떨까. 큰 흐름은 중국의 추격과 미·중 전쟁, 신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역시 불확실하고 밝지 못하다. 그래도 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그나마 장기투자다. 단기간에 샀다 팔기를 반복하면 백전백패다. 그래서 장기 성장성이 있는 우량주식을 찾아 5년 이상 묵혀 둔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데, 장기 지속성장이 가능한 기업은 극소수이다.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이라야 가능하다.

다른 대안은 실적이 꾸준한 배당 주이다. 연 5~6% 정도 시가 배당을 하는 종목이 몇 개 있다. '주식은 화끈하게 먹어야 한다'는 욕심만 버린다면 은행 이자보다는 높은 이익을 거둘 수 있다. 그런 주식은 주가 변동이 크지 않은 것이 특징이지만 그래도 가급적 저가에 매수 타이밍을 잡아야 한다.

그렇게 안정적인 접근을 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일 년 이상 모의 투자를 해본 다음 실전에 임해야 한다. 요새는 알바도 '경력 우대'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자신의 소중한 자산을 투자하면서 책 몇 권 읽고 바로 덤벼드는 것은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과 다름없다.

또 실제 투자를 할 때도 초기에는 부담 없는 소액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주식시장의 변화무쌍한 속성을 충분히 파악한 다음 천천히 금액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좋다.

여러 가지 요소들을 생각해본 다음 직접 투자에 뛰어들어야 한다. 처음부터 과감하게 뛰어든다면 '불나방'과 다름 없다. [사진 pixabay]

여러 가지 요소들을 생각해본 다음 직접 투자에 뛰어들어야 한다. 처음부터 과감하게 뛰어든다면 '불나방'과 다름 없다. [사진 pixabay]

그렇다면 펀드는 어떨까. 그것도 결론부터 말하면 주식과 별로 다를 게 없다. 국내 주식형 펀드는 잠깐 재미를 봤을지는 모르나 주식시장 정체로 중장기적으로 꾸준한 수익을 낸 경우는 드물다.

다음으로 인도 베트남 중국 등에 투자하는 해외 펀드가 있다. 이 또한 반짝 재미를 본 경우는 있어도 실적이 꾸준한 펀드는 거의 없다. 어떤 펀드가 좋다는 소문에 들어가 보면 그때가 끝 물인 경우가 많고 지속성장 또한 어렵기 때문이다.

이 펀드 저 펀드 투자해 종합적으로 손실을 안 봤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문제는 상당 기간 투자를 해봐야 그 실상을 깨닫는 데 있다. 오래 하면 수수료만 떼이고 남는 게 별로 없는 게 현실이다. 최근 논란이 되는 독일 장기국채금리연계 파생상품은 원금 95%가 날아갔다고 아우성이다. 반 토막이 된 펀드 부지기수다.

대표적인 예가 브라질 국채이다. 8~9년 전부터 국내 유수의 증권 회사들이 취급, 연 10%대 고수익에 현혹되어 많은 자산가가 투자했다. 지구 반대편의 나라 브라질 경제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투자를 했을까.

헤알화 환율이 2011년 6월 690원대에서 7년간 계속 추락, 2018년 9월 최저 265원을 찍고, 이후 지금까지 300원대에 머물러 있다. 한마디로 초기 투자자들은 수익은커녕 원금이 반 토막 나고 중개 수수료만 날렸다.

이처럼 주식이나 펀드, 남들이 한다고 유행처럼 따라 할 일이 아니다. '고수익에는 고위험'이 반드시 따른다. 평균 시중금리가 1~2%대인데 자기만은 주식, 펀드 투자로 10~20% 이익을 쉽게 거둘 수 있다는 기대는 착각이다.

충분한 이해와 신중한 판단으로 투자하고 있는지 돌아보기 바란다. 주식은 자칫 마약처럼 손 떼기도 어렵고 '대박'을 꿈꾸며 '몰빵', '빚낸 투자'는 화를 초래한다. 투자는 가벼운 의사결정이 아니다. 인생의 방향이 바뀔 수 있는 중요한 결정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강정영 청강투자자문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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