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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사 킴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그리고 명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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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은 내 삶의 무게중심을 옮기는 일이다.”

1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소프트웨어 기획설계자(Architect)인 킴킴(62)을 만났다. 그는 한국인이다. 최근까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핵심 부서인 ‘오피스 글로벌라이제이션’팀의 수석그룹장(Principal Group Manager)을 역임했다. 지금은 클라우드와 인공지능(AI) 그룹에서 로컬라이제이션 기획설계자로 일하고 있다. 해당 분야의 ‘설계도’를 그리는 자리다. 마이크로소프트사 설립자인 빌 게이츠도 회장직에서 물러난 직후 타이틀이 기획설계자였다.

킴킴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클라우드와 인공지능 부문의 기획설계자다. 최승식 기자

킴킴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클라우드와 인공지능 부문의 기획설계자다. 최승식 기자

킴킴은 일상에서 명상과 수도를 하고 있는 명상가다. 지난달 31일 서울 동국대 중강당에서 열린 ‘대한민국 명상포럼’(한국명상총협회 주최)에서 ‘빅데이터(Big Data)와 불이(不二ㆍNon-duality)’란 주제로 강연해 청중의 갈채와 환호를 받았다. 마주 앉은 킴킴에게 ‘빅 데이터와 인공지능, 그리고 명상과 영성’을 물었다.

빅데이터가 뭔가.
“인간의 몸을 보라. 지구가 생겨난 이후 약 35억 년 동안 구축된 빅데이터가 우리 몸에 있다. 그게 유전돼 내려오고 있다. 가령 똑같은 바나나를 우리가 먹을 때는 사람 몸이 된다. 그런데 강아지가 먹으면 어떻게 되나. 강아지의 몸이 된다. 그 역시 빅데이터 때문이다. 더울 때 땀 흘리지 않나. 그때 누가 땀샘을 열고 닫나. 우리가 부모로부터 태어나기도 전에 구축된 빅데이터다. 다름 아닌 빅데이터가 우리의 몸을 좌지우지한다. 그러니 빅데이터가 좌지우지하는 몸은 우리가 아니다.”
4차산업혁명의 기반으로 다들 ‘빅데이터’를 꼽는다. ‘빅데이터’의 핵심은.
“딱 세 가지다. 첫째 빅데이터를 통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알 수 있다. 데이터 수집이다. 둘째 ‘왜?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지’ 알 수 있다. 데이터 분석이다. 셋째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알 수 있다. 미래를 향한 관찰이다. 그다음에는 다시 첫 번째로 돌아간다. 그렇게 돌고 돌며 갈수록 데이터가 커진다.”

그런 빅데이터를 킴킴은 '말미암아 프로그램'으로 명명했다. "빅데이터가 불교의 연기법처럼 조건화되는 현상계를 모델로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킴킴은 "빅데이터를 통해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승식 기자

킴킴은 "빅데이터를 통해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승식 기자

빅데이터가 지금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가.
“미국에 ‘타깃(TARGET)’이란 대형 마트 체인점이 있다. 한 부모가 타깃에 가서 거세게 항의한 적이 있었다. 아직 어린 자신의 딸에게 타깃에서 아기용 티슈 할인 쿠폰을 보냈기 때문이다. ‘신청하지도 않은 쿠폰을 보내면서 우리 가족에게 모욕감을 주었다’며 따졌다. 며칠 후 그 부모는 타깃에 전화를 걸어 ‘나도 모르는 일이 우리 집에서 일어나고 있었다’며 사과했다. 알고 보니 딸은 한 달 후에 출산 예정이었다. 그걸 부모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타깃에서는 그걸 어떻게 알았나.
“빅데이터 덕분이다. 타깃은 고객 중에서 임산부 명단을 구했다. 그리고 출산일 3개월 전, 6개월 전, 9개월 전에 주로 어떤 제품을 구입하는지 데이터를 모았다. 가령 임신 초기에는 철분 등의 영양제를, 임신 3개월에는 삼퓨나 로션을 향기가 없는 걸로 바꾸는 식이다. 그런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타깃의 인공지능(AI)이 부모보다 먼저 딸의 임신 사실을 알아맞혔다.”  
놀랍다. 지구상의 데이터 확장 속도는 어느 정도인가.  
“데이터의 1bit가 8개 모이면 1바이트(byte)가 된다. 그게 1000개 모이면 1킬로바이트, 그게 다시 1000개 모이면 1메가이트. 그렇게 1000배가 될 때마다 기가바이트, 테라바이트, 페타바이트, 엑사바이트, 제타바이트, 요타바이트, 브론토 바이트 등으로 확장된다. 지구상의 모든 모래알 수는 얼마일까. 40제타바이트다. 2003년 구글의 에릭 슈미츠 회장이 3000년 동안 지구상에 쌓인 문서를 모두 디지털화했다고 발표했다. 그게 5엑사바이트였다. 미국 국회도서관 5000개 분량의 데이터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명상가 킴킴이 한국명상총협회장 각산 스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최승식 기자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명상가 킴킴이 한국명상총협회장 각산 스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최승식 기자

이 말끝에 킴킴은 질문을 던졌다. “인류가 3000년 동안 쌓은 5엑사바이트의 데이터를 생산하는데 2017년에는 얼마나 걸렸을까? 하루가 걸렸다. 날마다 그만큼의 데이터가 축적되는 셈이다. 지금(2019년)은 얼마나 걸리는지 아나? 1분밖에 안 걸린다. 그럼 2020년에는 얼마나 걸릴까. 딱 10초다. 저녁 먹고 인증샷을 페이스북에 올릴 때마다 빅데이터가 생산된다. 빅데이터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확장되고 있다. 과학자로서, 엔지니어로서 나는 그게 무섭다.”

왜 무섭나.  
“하늘을 나는 새를 보고 인류는 비행기를 만들었다. 또 바다의 물고기를 모델 삼아 인류는 잠수함을 만들었다. 그런데 비행기와 잠수함은 새와 물고기보다 월등하게 강하고 빠르다. 그렇다면 인류가 ‘만물의 영장’으로 불리는 자신을 모델로 삼아서 무엇을 만들어낼까.”
무엇을 만들어내나.  
“다름 아닌 인공지능이다. 가공할만한 속도로 확장되는 빅데이터에 기반한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어찌 되겠나. 인간에게는 여유가 생긴다. 노동 시간이 줄고 여가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쓸지가 핵심 관건이다. 인류사를 돌아보라. 시간과 여유가 남아돌 때마다 인간은 타락했다. 쾌락과 탐닉, 중독을 쫓다가 망했다. 앞으로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엄청날 거다. 만약 그 잉여 시간이 인류의 영성을 위해서 쓰이지 않는다면 어찌 될까. 나는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고 본다. 그러니 인류의 보편적 영성 지수의 향상이 필수적이다. 그게 없다면 인류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킴킴은 "인공지능이 고도로 발달해 인간에게 여가 시간이 많이 생길 때가 위험하다. 인류가 영성쪽으로 방향을 잡지 않는다면 과연 미래가 있을까"라고 말했다. 최승식 기자

킴킴은 "인공지능이 고도로 발달해 인간에게 여가 시간이 많이 생길 때가 위험하다. 인류가 영성쪽으로 방향을 잡지 않는다면 과연 미래가 있을까"라고 말했다. 최승식 기자

경북 산골에서 자란 킴킴은 스물 다섯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워싱턴주립대에서 컴퓨터학과 수학, 언어학을 복수전공했다. 대학원에서는 ‘전산 언어학’을 전공했다. 대학원생 때는 ‘한글과 영어의 자동번역 프로그래밍’을 만들어서 마이크로소프트사에 가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그리고 이듬해 졸업도 하기 전에 마이크로소프트사에 입사했다. 그 이후는 승승장구였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한 직급 승진하는데 평균 3~4년 정도 걸린다. 킴킴은 거의 1년마다 한 단계씩 승진했다. 총 일곱 단계 승진하는 데 8년이 걸렸다. 남들은 20년 넘게 걸리는 과정이다. 한마디로 ‘초고속 승진’이었다.

킴킴은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24년째 일하고 있다. 지금은 클라우드와 인공지능 분야를 맡고 있다. 1996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자율주행자동차의 전신을 개발하던 초창기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당시 코드명은 ‘아폴로’였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 자율주행자동차는 일종의 ‘콘셉트카’수준이었다. 그 후 20년간 자율주행자동차는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킴킴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갈 때 책 세 권을 챙겼다. 『반야경』과  『신심명』, 그리고 『선(禪)으로 가는 길』이었다. 유학을 떠난 지 2년 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한국에서 날아오던 ‘향토 장학금’이 끊겼다. 그때부터 킴킴은 생활비와 학비를 직접 벌며 생존투쟁을 했다. “『신심명』을 가져오긴 했지만 읽어볼 여유도 없었다. 30년 후에야 책꽂이에 꽂혀 있던 그 책을 꺼냈다. 그런데 책 속에 아버지가 쓴 편지가 있었다. 한국을 떠날 때 넣어준 편지였다. “마음 공부와 불교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메시지였다.”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마음공부에 대한 씨앗이 그걸 계기로 싹이 텄다. 이후 킴킴은 간화선에 바탕을 둔 명상을 시작했다. 부산 범어사 방장 지유 스님은 그에게 ‘처처(處處)’라는 법명을 주었다.

킴킴은 법명이 '처처'다. 범어사 방장 지유 스님이 줬다. '지금 여기'란 뜻이 담겨 있다. 최승식 기자

킴킴은 법명이 '처처'다. 범어사 방장 지유 스님이 줬다. '지금 여기'란 뜻이 담겨 있다. 최승식 기자

왜 ‘처처(處處)’인가.
“앞의 처(處)는 시간을 뜻한다. ‘지금’이다. 뒤의 처(處)는 공간을 뜻한다. ‘여기’다. 그걸 영어로 하면 ‘지금 여기(Here and Now)’다. 우주가 생겨난 이래 지금까지 ‘지금’이 아닌 적이 있었나? 없었다. 모든 순간이 ‘지금’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짤막하게 사라지는 순간이 아니라 ‘영원(Eternity)’과 연결된다. ‘지금’이 바로 ‘영원’이다. ‘여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살면서 속한 모든 공간이 ‘여기’ 아닌 적이 있었나? 없었다. 그래서 ‘여기’는 ‘무한(Infinity)’과 연결된다. 시간적 영원, 공간적 무한. 그 둘을 품은 게 ‘지금 여기’다.”
실리콘밸리에도 명상 열풍이 분다고 들었다. 어떤 배경인가.
“마이크로소프트 본사는 시애틀에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좀 떨어져 있다. 나는 마이크로소프트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적절하지 싶다. 우리 회사도 짧게는 한두 달, 길게는 7개월짜리 명상 프로그램을 만들어 직원들에게 기회를 준다. 그런데 기업이 명상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명확하다. ‘퍼포먼스 파워(Performance Power)’와 ‘성장 마인드(Growth Mind)’ 때문이다. 결국 기업은 직원들이 명상을 통해 집중력을 키우기를 원한다.”
그런 방식은 한계가 있지 않나. 4차 산업혁명의 승부수는 ‘창의성(Creativity)’이다. 명상을 통해 기존의 지식과 선입견을 완전히 포맷할 때 전혀 새로운 게 나온다. 창의력은 그렇게 발동한다. 그게 명상의 힘이다. 그런데 ‘퍼포먼스 파워’‘성장 마인드’‘집중력 배양’등 사전에 목표를 설정해 놓으면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지 않나.
“맞다. 진정한 명상은 집중력이 배양돼도 오케이, 배양되지 않아도 오케이가 돼야 한다. 그럴 때 진짜 명상이 된다. 그런데 기업은 이런 방식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명상을 통해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돈과 시간과 공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직원들에게 명상 프로그램을 강제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건 미국 헌법상 ‘종교의 자유’와도 관련되는 문제다. 만약 그 때문에 소송을 당하기 시작하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직원들에게 꼭 들으라고 강제할 수 있지만, 명상 프로그램은 강제할 수가 없다. 명상과 영성은 자발성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킴킴은 명상가다. 마이크로소프트사 안에서도 명상에 관심이 있는 동료들과 함께 명상을 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킴킴은 명상가다. 마이크로소프트사 안에서도 명상에 관심이 있는 동료들과 함께 명상을 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마이크로소프트사를 비롯한 미국의 IT기업들은 직위 상하를 막론하고 성과가 떨어지면 자른다. 책임자는 어쩔 수 없이 휘하 직원을 잘라야 할 때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는 그럴 때마다 “가서 킴킴을 한 번 만나보라”고 조언하는 책임자들이 꽤 있다. 명상가인 킴킴을 찾아가 자문을 구해보라는 뜻이다.

해고 직전의 직원이 찾아오면 무슨 말을 해주나.
“나이가 40대, 50대인 사람이 내 앞에 와서 운다. 내일부터 당장 직장을 잃게 생겼으니까.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이 회사에서 잘리는 게 오히려 럭키(행운)다. 당신이 잘리는 이유는 이곳이 당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에게 맞는 자리에 있을 때 행복하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자리에 있으면 그 자체가 고(苦)다. 만약 누군가 그 자리를 바꿔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당신에게는 구세주다.’”
그럼 반응이 어떤가.
“그렇게 말하고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다른 직장을 소개시켜 주기도 한다. 그런 긍정적인 마음으로 나간 사람은 대부분 한 달 안에 전화가 온다. ‘직장을 구했다. 정말 고맙다. 저녁을 함께 먹자’며 내게 인사를 한다. 사람은 자신과 맞는 회사를 택할 때 더 행복하니까.” 킴킴의 조언에는 이치가 녹아 있다. 그저 듣기 좋아라고 던지는 ‘포장지성 위로’가 아니다. 명상을 통해 자라난 그의 시선이 깊기 때문이다.  
킴킴은 "나는 한국인이다. 그런데 고국에 돌아갈 때 비자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비참했다. 그래서 시민권을 신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승식 기자

킴킴은 "나는 한국인이다. 그런데 고국에 돌아갈 때 비자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비참했다. 그래서 시민권을 신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승식 기자

미국에 37년째 살면서도 시민권자가 아니다. 이유가 있나.
“나는 한국인이다. 그런데 고국에 갈 때 비자를 갖고 가야 하는 게 너무 비참하더라. 게다가 미국 시민권이 부여하는 특권이 내게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더라. 패스포트(여권)의 힘은 무비자 체류 가능 국가의 개수로 따진다. 요즘은 한국 여권이 미국 여권보다 (무비자 체류 가능 국가의 수가) 더 많다. 일본보다 더 많다. 그만큼 한국이 강한 나라가 됐다. 영성 문화로 따지면 한국이 미국보다 한 수 위다. 나는 영성 문화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주한 셈이었다. 이제는 다시 영성 문화가 높은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마지막으로 킴킴은 명상을 통한 그의 통찰을 수학 용어인 ‘f(x)’로 표현했다. “‘f’는 함수이고, ‘x’는 항상 변하는 수인 변수다. 가령 ‘x’가 소주라면, ‘f’는 컵이다. 소주는 건배를 할 때마다 소멸된다. 그런데 소주잔은 아무리 건배를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우리는 ‘소주의 삶’을 살 수도 있고, ‘컵의 삶’을 살 수도 있다. 만약 내 삶의 무게중심이 소주에 있다면 어떨까. 건배를 한 번씩 할 때마다 소멸하고 만다. 그런데 내 삶의 무게중심이 컵에 있다면 어떨까. 아무리 건배를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명상이나 참선은 결국 삶의 무게중심을 옮기는 일이다. ‘소주의 영역’에서 ‘소주잔의 영역’으로 이동하는 일이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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