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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민 목사 "목사 아니어도 예배 인도와 설교 할 수 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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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서울 강남에서 베이직 교회의 조정민(68) 목사를 만났다. 그는 25년간 MBC에서 기자와 앵커, CEO 생활을 했고, 53세 때 신학교를 가 57세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베이직 교회를 시작한 건 62세 때다. 그래서일까. 그는 ‘교계의 타성’에 젖어있지 않다. 베이직 교회 역시 특정 교단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교단이다. 교계의 눈치, 교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돌직구’도 곧잘 날린다. 조 목사에게 ‘미래 기독교의 패러다임’에 대해 물었다.

베이직 교회의 조정민 목사는 "예수님은 '마일리지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베이직 교회의 조정민 목사는 "예수님은 '마일리지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현실 종교의 핵심적 문제점이 뭔가.
“‘마일리지 시스템’이다. 내가 자꾸 포인트를 쌓아야 한다. 선행을 쌓고, 규칙을 지키며 뭔가를 계속 모아야 한다. 그 포인트에 따라 내가 보상을 받을 거라고 믿는 시스템이다.”
그게 왜 문제인가.
“‘마일리지 시스템’은 결국 종교성을 강화한다. 종교성이 뭔가. 종교에 대한 일종의 신념체계다. 그건 이데올로기에 더 가깝다. 그런 신념이 어디에서 나오겠나. 인간의 생각에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 에고의 연장선, 에고의 확장선 상에 있는 게 종교성이다. 거기에는 ‘영성’이 없다.”
왜 종교성에는 ‘영성’이 없나.
“에고가 강화될 때 종교성도 강화된다. 영성은 다르다. 에고가 소멸해야, 비로소 영성이 강해진다. 강력한 종교성은 강력한 신념체계이며, 다시 말해 강력한 에고의 강력한 표현이다. 종교성에는 문제가 있다. 그걸 통해서는 삶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조정민 목사는 종교성과 영성을 구분했다. 종교성은 에고의 또다른 표현이라고 했다. 최정동 기자

조정민 목사는 종교성과 영성을 구분했다. 종교성은 에고의 또다른 표현이라고 했다. 최정동 기자

그럼 예수는 어땠나.
“종교의 ‘마일리지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셨다. 대신 이렇게 이야기했다. ‘하나님은 생명이요, 사랑이요, 빛이다. 길이며 진리다.’ 기독교인은 ‘마일리지 시스템’을 통해 구원받지 않는다. 생명과 사랑과 빛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 예수님께서는 종교성을 강화하며 거대한 권력체계가 돼버린 종교를 오히려 부수려고 하셨다. 당시에는 그게 유대교였다.”
지금은 그게 뭔가.
“마일리지 시스템과 종교성만 강조하는 교회들이다. 그들은 교인들로 하여금 착각하게 한다. 교회에 출석하고 적당한 헌금을 내는 종교적 행위가 신앙인의 길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그 보상으로 구원을 받으리라 믿게 만든다. 그렇다면 그게 중세 때 교회가 면죄부(가톨릭에서는 ‘면벌부’라 칭함)를 파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종교계에도 거대한 변화의 파도가 닥치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직자 수도, 교인 수도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젊은 세대의 종교에 대한 관심은 급격히 줄어든다. 이제 교회의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하지 않나.

“크나큰 위기다. 동시에 교회가 본질로 돌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어쩌면 우리는 진짜와 가짜가 뚜렷하게 식별되는 분기점에 와 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이유가 뭔가. 교회가 예수님과 상관없는 종교 조직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예수님 말씀의 본질과 핵심보다 중세 교회의 교리가 더 강조됐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를 따라야하는지 알아야 한다. 예수인가, 아니면 목사인가. 목사의 부탁에는 순종하는데,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순종하지 않는다면 어떻겠나. 그 사람을 과연 크리스천이라 할 수 있겠나.”

조정민 목사는 "예수님께서는 거대한 권력체계가 돼버린 종교를 부수려고 오셨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조정민 목사는 "예수님께서는 거대한 권력체계가 돼버린 종교를 부수려고 오셨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조정민 목사는 ‘크리스천’은 ‘작은 그리스도’란 뜻이라고 했다. “비올라보다 작은 악기를 바이올린이라 부른다. ‘크리스천’이란 말은 기독교인이 스스로 붙인 이름이 아니다. 안디옥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 신자들의 삶을 보고 ‘저들은 크리스천이다’‘그리스도를 닮은 사람, 곧 작은 그리스도’라고 부르면서 생겨난 말이다.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면 자신의 삶을 통해 ‘내 안의 그리스도’가 드러나야 하지 않겠나. 목회자라고 하더라도 남을 가르치려고 들어선 곤란하다.”

베이직 교회에는 ‘담임 목사’‘부목사’란 호칭이 없다. 조 목사를 비롯한 동역 목회자들도 그냥 ‘목사’라고만 부른다. 교회 안에서 교인들의 직분도 없다. 평신도, 집사, 권사, 장로로 이어지는 층계가 없다. 대신 서로가 서로를 ‘형제’와 ‘자매’로만 부를 뿐이다. ‘베이직(BASIC)’교회의 명칭도 ‘본질을 지향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Brothers And Sisters In Christ’(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자매)의 첫글자에서 따왔다.

왜 ‘담임목사’란 호칭을 쓰지 않나.
“상징적 시도다. 교회 안에서 교역자들이 서로 형제ㆍ자매가 돼야 진정한 공동체가 탄생하지 않을까 싶다. ‘집사ㆍ권사ㆍ장로’ 등을 없앤 것도 교회의 직분이 신앙의 목표가 돼선 안 된다는 자극적이고 강도 높은 조치다. 그게 정답이라기보다 지금은 충격이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 베이직 교회를 2013년에 시작했다. 저희 교회는 헌금이나 돈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는다. 헌금은 다른 교회에 가서 해도 되고, 다른 단체에 가서 해도 된다고 말한다. 도움이 절실한 이웃이 있으면 그곳에 해도 된다고 말한다. 교회에 헌금한다고 이웃에 인색한 크리스천을 본 적이 있다. 그건 본말이 전도된 것 아닌가.”
조정민 목사는 "교회를 이루는 두 기둥은 '말씀'과 '성령'이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조정민 목사는 "교회를 이루는 두 기둥은 '말씀'과 '성령'이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아직도 한국 개신교계는 ‘교회 세습’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다. 어찌 보나.
“교회가 뭔가.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다. 교회는 건물도 아니고, 땅도 아니다. 예수를 따라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걸 세습하고자 한다는 건 교회가 ‘영성의 교회’가 아니라 ‘제도성의 교회’가 됐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미 교회의 본질에서 멀어졌다는 뜻이다. ‘교회 세습’은 ‘네모난 원’이란 말과 똑같다.”
교회 세습이 왜 네모난 원인가.
“‘네모난’과 ‘원’은 합쳐질 수 없다. ‘교회’와 ‘세습’이란 말도 마찬가지다. 둘은 하나가 될 수 없는 뜻을 각자 담고 있다.”
베이직 교회는 주일 예배(1~4부) 때 약 2000명의 교인이 모인다. 나중에 교회의 후계는 어떻게 할 건가.
“이 교회는 하나님이 주인이다. 기본적으로 제가 떠난 뒤는 하나님께 맡긴다. 저는 교회를 새롭게 개척하는 모델이 아니라, 소그룹 단위의 교회 공동체 하나하나가 교회여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게 미래지향적인 교회의 패러다임이라고 본다. 누구라도 예배를 인도할 수 있고, 설교도 할 수 있다. 목사만 설교가 가능하다는 생각은 목사를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 제사장으로 회귀시키는 일이다. 사람들이 목사의 설교에서 벗어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성경 말씀을 계속 읽고 스스로 묵상할 때 목사의 설교보다 더 큰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 교회를 이루는 두 요소는 ‘말씀’과 ‘성령’이다.”
조정민 목사는 '교회 세습'은 '네모난 원'처럼 서로 함께 설 수 없는 단어라고 했다. 최정동 기자

조정민 목사는 '교회 세습'은 '네모난 원'처럼 서로 함께 설 수 없는 단어라고 했다. 최정동 기자

성경과 설교, 무엇이 우선인가.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신 다양한 음식이다. 그걸 골고루 먹어야 건강해진다. 반면 설교는 목사에 의해 해석된 일종의 영양제다. 우리가 음식은 먹지 않고 영양제만 먹는다면 어떻겠나. 건강에 좋지 않다. 우리가 손수 음식을 먹어야 한다. 성경 말씀을 직접 읽고 스스로 묵상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터치’를 몸소 경험할 수 있다. 고집스럽게 영양제만 먹는다면 우리의 영혼이 어떻게 되겠나.”  
현대인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가야하는 종교적 의무감을 부담스러워 한다.
“요즘 사람들은 한 교회를 안 섬긴다. 설교는 여기서 듣고, 헌금은 저기서 하고, 사역은 자기와 코드 맞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서 따로 한다. 과거처럼 한 교회가 담장을 쳐놓고 사람을 가둘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전통적인 담장식 교회는 머지않아 파탄을 맞을 거다. 예전에는 거대한 교회가 ‘관리 체계’로 승부를 거는 시대였다. 그런 교회가 든든했다. 앞으로는 달라진다. ‘교회의 본질’을 가지고 있는 교회가 든든해지는 시대가 이미 오고 있다.”

조정민 목사는 1997년부터 온누리교회에 나갔다. MBC에서 9시 뉴스데스크 앵커를 하기 전이었다. 예수를 믿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에 빠진’ 아내를 구출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하용조 목사님께 물었다. ‘교회가 뭡니까?’ 그랬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교회는 제도가 되기 직전까지입니다.’ 그말을 듣고 나는 황당해서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온누리교회의 이 거대한 조직은 뭐고, 이 거대한 제도는 또 뭡니까.’ 하 목사님은 이렇게 답했다. ‘저는 이 교회가 제도가 되지 않도록 죽을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 대답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아, 이 분은 자신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구나’ 싶었다.”
조정민 목사는 "예수님은 교회의 문턱을 낮춘 정도가 아니라 아예 교회 밖으로 나가셨다. 미래사회에는 교회가 스스로 문턱을 낮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조정민 목사는 "예수님은 교회의 문턱을 낮춘 정도가 아니라 아예 교회 밖으로 나가셨다. 미래사회에는 교회가 스스로 문턱을 낮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마지막으로 조 목사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 일화를 꺼냈다. “김 추기경님이 남미에 가셨을 때다. 식사 기도를 안 하고 밥을 드셨다. 그 자리에 있던 누군가가 물었다. ‘추기경님, 왜 기도를 안 하고 밥을 드십니까?’ 그러자 김 추기경님은 이렇게 답했다. ‘밥 먹고 나서 기도하면 왜 안 됩니까?’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으면 바깥의 형식이나 격식이 두렵지 않다. ‘하나님의 생명’이 없을 때 격식에서 벗어나는 걸 두려워한다. 그거라도 붙잡아야 하니까. 그게 강화되면 율법주의가 된다.”

인터뷰를 마치자 점심시간이 됐다. 동료 교역자가 떡볶이와 만두, 김밥을 사왔다. 사무실 책상에 펴놓고 모두 함께 먹었다. 젊은 목사에게 물었다. “기성교단의 큰 교회에 가면 승진과 앞날이 보일 텐데, 베이직 교회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게 불안하지 않나?” 이런 답이 돌아왔다. “불안한 점도 있다. 그렇지만 신학교 다닐 때 고민하던 교계의 문제점이 있다. 그걸 현장에서 풀어가는 시도를 한다는 게 매우 뜻깊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장맛비가 쏟아졌다. ‘후두둑, 후두둑’ 빗소리의 청량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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