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밀린 고지서만 남겼다···대전 일가족 사망 '공소권 없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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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대전에서 발생한 일가족 사망사건은 가장이 아내와 두 자녀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잠정 결론이 났다. 이에 따라 경찰은 이 사건을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할 방침이다.

지난 4일 대전시 중구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일가족 사망사건과 관련, 경찰이 아파트 현관 문에 출입을 통제하는 폴리스 라인을 설치했다. [중앙포토]

지난 4일 대전시 중구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일가족 사망사건과 관련, 경찰이 아파트 현관 문에 출입을 통제하는 폴리스 라인을 설치했다. [중앙포토]

9일 대전지검과 대전중부경찰서에 따르면 대전시 중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A씨(44)는 지난 4일 인근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A씨의 유서에는 ‘가족들이 집에 숨져 있으니 시신을 수습해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아파트에서는 이불에 덮인 상태로 숨져 있는 아내 B씨(33)와 두 자녀(8세·6세)가 발견됐다.

국과수 부검결과 아내·두 자녀 사인 '질식사' #경찰, 유서 근거로 사채·불법추심 등도 수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아내 B씨와 두 자녀의 사인은 질식사로 추정됐다. 목 주변에서는 눌린 자국이 발견됐다. 검찰과 경찰은 외부 침입흔적이 없는 것으로 미뤄 A씨가 가족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했다.

B씨 등 가족 3명이 숨진 시간은 3일 오후 8시부터 이튿날인 4일 오전 8시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아파트 폐쇄회로TV(CCTV) 영상을 분석한 결과 A씨가 3일 오후 집에 들어간 뒤 4일 오전에 집을 나왔기 때문이다. 이 시간에 집을 오간 다른 사람은 없었다.

지난 4일 일가족 사망사건이 발생한 대전시 중구의 한 아파트 현관문 앞에 우유대금이 연체된 고지서가 남겨져 있다. [중앙포토]

지난 4일 일가족 사망사건이 발생한 대전시 중구의 한 아파트 현관문 앞에 우유대금이 연체된 고지서가 남겨져 있다. [중앙포토]

경찰은 ‘제3자 개입’이 없다고 최종 결론이 나면 사망사건에 대해서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할 방침이다. 조사 결과 A씨는 사업 실패로 양가 부모는 물론 가족까지 채무를 지게 되는 등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사건 당일 A씨 아파트 현관 앞 우유 주머니에는 밀린 우유 대금 고지서 2장이 남아 있었다. 한장은 7월분으로 25만9000원, 한장은 8월분으로 28만4900원이 각각 인쇄돼 있었다. 고지서만 보면 8개월째 요금이 미납된 상태였다.

경찰은 A씨가 유서에 남긴 ‘사채’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를 계속할 방침이다. 건축업을 하던 A씨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사채업자들로부터 변제를 독촉받아 극단적 선택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있어서다. 사채 이자가 법정한도를 초과했는지, 불법 추심은 없었는지도 수사 대상이 포함된다.

지난 4일 오후 대전에서 발생한 일가족 사망사건과 관련, 대전지검은 유족에게 피해자지원 상담관을 보내 장례비를 지원하고 상담했다. 사진은 대전지검 전경. [중앙포토]

지난 4일 오후 대전에서 발생한 일가족 사망사건과 관련, 대전지검은 유족에게 피해자지원 상담관을 보내 장례비를 지원하고 상담했다. 사진은 대전지검 전경. [중앙포토]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사망에 이르게 된 동기를 규명하기 위해 채무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수사 중”이라며 “조사 결과 불법행위가 드러나면 관련 법률을 적용해 처벌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전지검은 지난 5일 피해자 지원 담당관을 B씨 부모에게 보내 면담하고 장례비(400만원)를 긴급 지원했다. 유족의 심리치료 지원이 필요하고 상속 포기와 개인회생 등 절차를 진행하도록 법률상담도 지원할 예정이다.

대전=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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