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논술방] 강아지 똥과 '똥 푸는 사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5면

◆ 학생글 : 정현기(수원 신영초 6)

<가> 강아지 똥은 몇몇 생물들에게 무시를 당하지만 민들레에게는 거름이 되는 소중한 존재이다. ①아무리 어느 생물이 해롭다 해도 무작정 필요 없는 생물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②어느 생물이 자신에게 필요 없다고 생각되어도 이 생물이 왜 존재하는지를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 예컨대 '태풍' 황소발길질은 농작물에게 큰 피해를 주지만 '적조'를 먼 바다로 보내, 바다 환경에 활기를 되찾아 준다. ③우리가 비록 어느 것이 해롭다고 생각이 되어도 그것의 이로운 점도 곰곰이 헤아려 보아야 한다. 지렁이를 예로 들어 보겠다. 지렁이는 비 올 때마다 나와서 꿈틀꿈틀거린다고 싫어할 수 있다. 그러나 ④지렁이들의 똥이나 ④-1지렁이의 몸은 흙을 기름지게 만들어 곡식을 잘 자라게 한다.

<다> '똥 푸는 사람'도 아주 천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선비 할아버지' ⑤이선무는 그를 '예덕선생'이라 부른다. 만약 아저씨가 똥 푸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밭에 거름을 줄 사람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라> 만약, 우리나라에 농부라는 직업이 없다고 생각해 보자. 그럼 우리는 어떻게 채소나 과일을 먹을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이 필요가 없는 직업은 없는 것이고 모든 직업이 가치가 있는 것이다.

◆ 총평.첨삭

사물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 … 끝맺음은 아쉬워

강아지 똥(1학년 국어), 태풍 황소발길질(6학년 국어), 똥 푸는 사람(연암 박지원 '예덕선생전'). 공통의 문학적 메시지를 알아내는 게 여간 녹록지 않았다. 똥장군 지고 똥 퍼서 생계를 잇는 '똥 푸는 사람' 엄행수가 도대체 왜 존경받는 '(예덕)선생'이란 말인가. 넘어야 할 논제 풀이의 가파른 산이었다.

한 개인도 엄마의 자식, 짝꿍의 친구, 선생님의 제자 등등 여러 모습으로 관계를 맺는다. 제반의 사물도 시각에 따라 여러 얼굴로 비추어진다. 현기 학생은 '세 개의 보기 글'을 통해 이 철학적 깨달음을, 비록 담는 그릇(형식)이 투박했지만 예민한 인문학적 감수성으로 통찰했다.

하지만 '직업엔 귀천이 있나, 없나'란 논제를 쓴 것 같은 결말부 <라>는 생뚱맞고 허전하다. "언뜻 보기엔 더럽고, 무섭고, 천하지만 사실은 '없으면 안 되는 유익한 존재'가 주변에 많은 게 자연의 섭리다"라고 끝맺었더라면, 논지가 끝까지 논제에서 벗어나지 않고 완결미도 더 갖추어지지 않았을까.

중언부언꼴인 문장 ①과 ②는 "설령 어느 생물이 더럽다손 치더라도 왜 그게 존재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로 써야, 요약과 (도입부의) 화제 던지기가 잘돼 일석이조다. 같은 맥락인 ③도 "비록 어느 것이 해롭다고 해도 이로운 점이 없는지 곰곰이 헤아려 보게 한다"로 손질하고, 한 문장 안에서 낱말을 되풀이한 ④-1은 빼야 매끄럽다. 똥 푸는 사람을 '예덕선생'이라고 부른 조선의 선비는 이선무(⑤)가 아니라 이덕무다. 글 <다>에 나온다.

노만수 학림논술 수석연구원

◆ 다음 주제는

중앙일보 joins.com의 논술카페 '우리들의 수다(cafe.joins.com/suda)' 초등논술방에 글을 올려 주세요. 매주 30명을 골라 학림논술연구소 연구원.강사들이 총평을 해드립니다.

*** 다음 주제=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는 어린이들을 위해 동화 '폭탄과 장군(글 <나>)'를 썼어요. '폭탄장수 장군'과 '엄석대(글 <가> 5학년 국어)', 둘의 성격과 비슷한 인물을 역사나 현실 속에서 찾아낸 뒤 그 까닭과 더불어 원자 '아토모'나 한병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술하시오. (600자±100)

*보기 글은 '우리들의 수다'의 '초등 주제글 보기'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