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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쏙] 수학 교수 아빠, 딸을 MIT 공대생으로 키운 비법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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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면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 재학 중."

이 말을 듣고 흔히 떠올리는 생각들이 있다. "아버지가 수학 교수"라면 그 생각은 더욱 굳어지기 십상이다.

한국교원대 전평국 교수와 MIT 기계공학과 2학년 재학 중인 딸 성윤씨의 관계는 통념과 다르다. 성윤씨는 초등학교 시절 학습지 하나 푼 적이 없었다고 한다. 경시대회에 나가본 적도 없다. 그래도 수학은 잘했다. 아버지가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통 '수학 공부'라고 할 때의 방식으론 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로라면 그는 안 가르친 셈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수학적 사고나 개념은 일상 생활에서 가르칠 수 있다"고 믿는다. 성윤씨도 그렇게 가르쳤다. 아버지와 딸과 각각 전화 인터뷰한 내용을 둘의 대화로 재구성했다. 전 교수는 최근 '국제적 우등생은 10살 전에 키워진다'라는 책을 냈다.

◆ 좀처럼 답을 안 해주는 아버지

▶딸=제가 뭘 물어도 좀처럼 답을 안 해주셨는데 왜 그러셨나요.

▶아버지=기다려줄 때가 많았지. 같은 질문을 몇 달씩 되풀이할 때도. 직접 알면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네가 그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걸 위해 기다려주는 건 부모의 도리다. 예전 체중계가 13.5를 가리킨 적이 있었다. 넌 그때 '아빠 이거 어떻게 읽어'라고 물었지. 난 '어떻게 읽었으면 좋겠니'라고 오히려 되물었었다. 넌 '13과 14 가운데 있어요'라고 답했지만 영 만족스럽지 않은 모습이었다. 사나흘 계속 그랬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 의기양양하게 '13.5요'라고 답했다. '어떻게 알았니'라고 물었더니 중학교에 다니는 옆집 언니에게 물어봤다고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나오는 소수를 그때 접한 거다.

◆ "사탕 여섯 개의 2분의 1만 먹어"

▶딸=수학 관련된 얘기는 잘 안 하셨지만 '2분의 1만 먹어'란 식의 얘기는 많이 하셨죠.

▶아버지=그래. 분수도 언어로 가르쳐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절반' 대신 '2분의 1'이라고 한 거지. 사탕 여섯 개를 놓고 '2분의 1만 먹어'라고 했었다. 초등학교 3, 4학년 과정인 분수 개념도 얼마든 일찍 깨닫게 할 수 있다. 중학교 과정에서나 배우는 음수도 마찬가지다. 유치원 아이들도 '5에서 3을 빼면 얼마지'라고 물으면 쉽게 '2'라고 답한다. 그 뒤 '3에서 5를 빼면'이라고 묻는 거다. 보통 아이는 '빵(0)이요'라고 한다. '못 빼요'란 아이는 똑똑한 애고 '2가 모자라요'라면 영재성이 있는 아이다. 그때도 파악만 할 뿐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딸=물컵에 우유를 따른 뒤 양을 비교했던 기억도 나요.

▶아버지=보전 개념을 그걸로 익혔다. 우유를 컵 두 개에 같은 양을 붓고 하나를 납작한 컵에 옮겼다. '더 많은 쪽을 마셔'라고 했더니 넌 길쭉한 컵을 골랐다. '그게 더 많다'고 답했다. 한참 지난 뒤에야 '둘이 같아요'라고 했다. 보전 개념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 화투를 하다

▶딸=어릴 적 카드 게임을 많이 했어요. 요즘도 하지만.

▶아버지=초등학교 1, 2학년 때까지는 화투를 많이 했다. 그렇다고 민화투나 고스톱을 쳤다는 얘기는 아니다. 같은 그림을 맞추도록 한 거였다. 어떻게 기억할지, 또 이기려면 어떤 전략을 세워야하는지 스스로 깨우치도록 한 것이다. 기억력도 높여줄 수 있었다. 자라선 카드로 했다. 이때 내가 명심했던 건 전략을 가르쳐줘선 안 된다는 것이다.

▶딸=지금도 종이접기를 즐겨요.

▶아버지=어렸을 때 블록 조립을 많이 했다. 겨냥도를 보면서 처음엔 모방을 하다가 나중엔 직접 새로운 걸 창안해서 만들었다. 공간감각을 익히고 창의성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됐을 거다. 나중엔 종이접기를 했다. 복잡한 건 수십 번을 접어야 하다 보니 손의 운동신경이 발달한다. 겨냥도를 보다 보면 공간감각도 길러진다. 또 도형의 모양.크기.위치.방향 등을 깨우치는 데 도움이 된다. 기계공학과에 간 것도 이 경험 때문일 거다. 넌 어릴 적부터 지도도 봤다. 처음엔 도시 찾기에서 시작, 나중엔 목적지까지 어느 길로 가는 게 좋은지 함께 얘기했었다. 수학에 나오는 '경우의 수'가 바로 그거 아니겠니.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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