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의 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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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웃는 표정이 인상적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학총장이 구속된 몸으로 구치소로 가는 길에 기자들의 카메라 앞에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속중들이야 고명한 스님의 웃음을 헤아릴 길이 없다. 어쩌면 속으로 결백하다는 것을 기묘한 웃음으로 보여 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만 죄가 있다는 말이냐는 고소였을까. 어느 쪽이든 그 대학총장의 웃음은 여운이 길게만 느껴졌다.
유죄 유무야 법정에서 가러지겠지만, 대학입시 부정혐의로 이사장과 총장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구속되는 사태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누구보다도 60만명의 소년, 소녀들이 몇 년, 몇백일을 두고 밤을 밝히며 핏기를 잃고 공부를 하고, 그 몇배나 많은 학부형들이 불안과 초조와 공포 속에서 애를 태워야 하는 입시현실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그것은 2세 국민, 아니 우리 모두를 우롱하고 모욕하는 일이다.
미국의 대학사를 보면 총장이나 학장은 몇십년씩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을 알게된다. 스탠퍼드 대학의 경우 초대 학장과 그 후임자들은 22년, 27년, 19년, 아니면 적어도 십여년씩 봉직했다. 하버드대학의 경우도 초기 2백23년 동안 20명이 총장을 역임했다. 평균 10년씩은 총장자리에 있었다는 얘기다.
그것은 모든 총장이 그 정도로 유능했다는 뜻도 되지만, 그보다는 남의 손가락질 받을 부끄럽고 떳떳지 못한 일은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대학은 그런 가운데 발전하고 전통도 쌓이게 마련이다.
우리나라 대학총장은 그동안 정치바람, 학내분쟁 바람에 휘말리면서 그 권위가 왜소해질 대로 왜소해져 요즘은 명문대학 총장이라도 이름조차 생소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대학총장의 금새가 떨어졌다. 대학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교육열이 유별난 우리국민의 자존심을 위해서도 안타까운 일이다. 총장쯤 되면 주위에서 고개가 저절로 숙여질 정도는 돼야 할텐데 말이다.
체통은 그렇다치고 대학총장이 국민의 따가운 눈총 속에 묘한 미소를 지으며 구속되는 장면은 보기에 민망하다. 그것은 우리나라 대학의 단면을 보는 것도 같아 더욱 우리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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