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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할 일부터 잘하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최근 수도물 오염이나 교통지옥과 같은 커다란 사회적 문제에 대처하는 정부의 발상이나 대책을 보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상수원의 심각한 오염과 식수의 질 문제가 사회에 큰 충격을 던지자 정부는 내년부터 92년까지 수도료를 9%씩, 93∼95년에는 해마다 5%씩 올려 그 돈으로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나섰다. 또 교통난 대책을 위해 자동차세를 30% 올리겠다고 했다가 여론의 반응이 나쁘자 자가용 승용차에 1천원씩 도심 통행료를 받을 작정이라고 한다.
우리는 맑은 물을 먹기 위해, 또는 교통난을 덜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면 물론 국민이 부담할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는 점은 이해한다. 정부가 쓰는 돈이 모두 국민이 내는 돈이고, 정부가 따로 감춰둔 돈이 없는 이상 국민생활과 직결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부담을 반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가 되고 있는 상수원의 오염이나 오늘의 대도시 교통지옥이 모두 국민의 잘못으로 빚어진 것이며,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정책이 고작 국민의 주머니를 터는 선택밖에 없는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정부의 방침에는 적잖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우선 상수원 오염문제를 보더라도 수원지 부근에 독한 농약을 뿌리는 골프장을 수없이 허가하고 음식점·유흥장· 양어장들이 줄줄이 들어서게 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수원을 오염시키는 공장폐수의 방류는 법이 없어 단속을 못하고 있었는가. 이렇게 볼때 정부가 진작 수원오염에 정신을 차리고 신경을 썼던들 오염문제가 오늘날처럼 심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교통난 대책도 마찬가지다. 서울의 인구 집중을 안보차원에서 억제한다고 한 것이 언제부터였는데 도심에 수십층짜리 대형 빌딩과 고급호텔들이 숲을 이루도록 허가한 것이 누구였는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또 많은 건물들이 법이 정한 주차장 시설을 다방이나 가게로 전용하여 길가에 차를 세워두어도 눈감아준 것이 누구였는지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따지고 보면 상수원 오염이나 심각한 교통문제는 당국이 할 일을 제대로 않고 불과 몇해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단견의 행정에 큰 책임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정부가 이같은 자기들의 정책실패·단속태만· 단견행정을 이제 와서 모조리 국민에게 떠넘겨 요금인상과 통행료 징수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정부가 이렇게 확보한 돈을 가지고도 다시 잘못된 정책을 쓰거나 태만한 자세를 고치지 못한다면 돈은 돈대로 쓰고 문제는 그대로 남지나않을까 지레 걱정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는 국민에게 부담을 요구하는 것과 범행하여. 할 일을 다한다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상수원을 오염시키는 골프장과 공장 및 유흥업소를 법대로 과감하게 단속하고 처벌하고 벌금을 물려야 한다.
주차장을 전용하는 건물주에게는 강력하게 주차장설비의 의무를 추궁하고 어김없이 개수토록 해야하며 도심의 소통을 막는 각종 불법 주정차에 대한 강력한 단속을 해야한다.
정부가 이처럼 최소한의 할 일을 하면서 국민에게 돈을 요청해야 국민도 돈을 낼 마음이 생길 것이다.
비단 수도물이나 교통문제가 아니라 국정전반에 걸쳐 정부가 자기들의 실수나 태만은 태평스레 넘기면서 걸핏하면 손쉽게 요금인상에나 의존하려는 발상은 스스로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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