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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먹은 유해성분이 모두 태아에게? 필터링 시스템 있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53)

태아는 코로 숨을 쉬지 않지만 탯줄로 공급되는 산소로 호흡한다. [사진 pixabay]

태아는 코로 숨을 쉬지 않지만 탯줄로 공급되는 산소로 호흡한다. [사진 pixabay]

뱃속 태아는 숨을 쉴까 안 쉴까? 영양성분은 어떻게 전달받을까? 바보스러운 질문 하나 하자. 태아는 숨을 쉴까 안 쉴까? 답은 “안 쉰다”다. 틀렸다고? 숨을 쉰다는 게 코로 공기를 들여 마셔 폐의 꽈리에서 혈액 속 헤모글로빈에 산소가 결합하게 하고 탄산가스를 내뿜는 과정, 그래서 가슴이 들썩거리는 동작으로 치면 숨을 안 쉰다는 게 맞다.

그러나 디테일은 틀렸다. 태아에게는 이런 동작이 없다. 이른바 코로 숨을 쉬지 않는다. 그러나 산소는 공급되고 에너지 대사는 정상적으로 일어난다. 이유는 엄마로부터 탯줄에 공급되는 산소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태아는 양수 속에 떠 있다. 숨을 쉬면 물을 들여 마셔 익사(?)한다. 익사라는 단어는 태아에게는 맞지 않는 용어지만.

이렇게 물리적인 동작으로 보면 태아는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게 옳다. 그러나 숨을 쉰다는 것의 정확한 학문적 의미는 “산소가 폐로부터 혈액을 통해 각 세포로 운반되어 에너지의 발생과정에서 나오는 전자(수소)를 이 산소가 받아 물로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이른바 폐에서 일어나는 호흡뿐만 아니라 미토콘드리아의 전자전달계에서 일어나는 에너지 생산단계에까지 포함한다는 뜻이다. 이 모든 과정을 호흡이라 하고 모든 호기성생물에는 공통이다. 따라서 태아도 호흡한다는 게 맞다.

자 그러면 태아에게 산소는 어떻게 전달될까? 아니 산소뿐 아니라 영양성분은 어떤가. 아래 그림에 자궁 내 탯줄의 구조를 나타냈다.

[자료 피어슨에듀케이션]

[자료 피어슨에듀케이션]

왼쪽 그림은 아기 탯줄이 엄마의 혈액에 노출된 것이고 오른쪽은 네모 친 부분을 확대한 그림이다. 태아의 꽈리 부분은 엄마의 혈액 속에 잠겨 져 있다. 붉은색은 동맥, 파란색은 정맥이다. 꽈리 같은 형태는 엄마의 피와 접촉하는 부분을 늘리기 위한 구조이다. 엄마의 혈액에서 태아에 필요한 모든 성분이 전달되고 아기의 노폐물은 엄마 핏속으로 빠져나오는 교환 작용이 일어난다.

꽈리 부분은 보통 혈관과는 달리 특수한 구조로 되어 있어 물질의 투과성에 엄격성을 가진다. 어떤 성분이 들어가고 어떤 성분이 나오는지는 아직 확실히 밝혀져 있지는 않다. 모자간 피는 절대 섞이지 않는다. 혈액형이 다를 수도 있기 때문에 섞이면 큰일 난다.

이런 모자간의 물질교환현상은 적어도 생명유지에 필요한 산소뿐 아니라 모든 영양성분에서 일어난다. 그럼 태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물질, 즉 엄마가 먹은 유해물질은 전달되지 않을까? 각종 발암물질, 담배 연기성분, 알코올 등등 말이다. 이게 문제다. 임신 시에는 음식을 조심하고 행동거지를 바르게 해야 한다는 옛말도 있다. 임신한 줄 모르고 한약 등을 먹고 중절을 고민하는 경우도 있다.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는 물질(변이원)이 태아에게로 가 기형아의 출산을 염려해서다. 임산부는 담배와 술을 먹지 말라고 권한다. 이런 성분이 태아에게도 전달돼 해롭게 작용할까 걱정해서다.

태아에게 유해한 물질은 꽈리 부분에서 일단 차단된다. [사진 pixabay]

태아에게 유해한 물질은 꽈리 부분에서 일단 차단된다. [사진 pixabay]

술과 담배 연기 속 유해성분이 태아에게도 일부 전달된다는 근거를 제시하는 논문도 있다. 엄마가 술로 고주망태가 되면 태아도 알딸딸하게 취한다는 것이다. 이들 유해성분이 세포분열이 왕성한 태아의 DNA 복제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 기형의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이다.

참 생명현상이 신기하다. 태아에게 나쁠 것 같은 물질은 꽈리 부분에서 일단 차단된다. 엄마가 먹은 혹은 혈액 속 나쁜 성분이 태아에게는 가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 뇌혈관의 BBB(brain blood barrier)와 흡사하다. 뇌가 우리 몸에 가장 중요한 장기라 혈관에 있는 유해성분은 뇌로 가지 않게 차단하는 시스템이다. 이 경우도 어떤 물질은 가고 가지 않는가는 아직 잘 모른다. 뇌에 암이 생기거나 염증이 생겼을 때 항생제로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아기가 일단 태어나면 성인과 같은 정상적인 호흡을 시작한다. 탯줄이 붙어있을 때는 숨을 쉬지 않고도 살 수 있으나 탯줄을 끊고 나면 자가호흡을 해야 한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우는 건 하수상한 세상에 태어나 슬퍼서 그런 게 아니라 호흡을 하기 위한 첫 동작이라고 봐야 한다. 울면 호흡 동작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때 쪼그라들어 있던 폐가 활짝 펴이면서 산소의 공급이 시작된다. 응애! 고통스러워 우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환희에 찬 울음도 아니다. 단지 살아가기 위한 방편이다.

이태호 부산대 명예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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