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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재·안전·비상대응모두 "0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한순간 서울시내의 10분의1(5개구 25만여 가구)을 암흑과 혼란으로 몰아 넣었던 29일 한국전력 서울 월계 변전소 화재사건은 서울의 방재(방재)대책 취약점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었다.
이번 화재로 줄잡아 서울시민의 10%인 1백만명이 길게는 28시간동안 암혹의 공포를 겪었고, 이중 5만 여명은 수도물이 끊기는 고통을 겪었다.
월계 변전소 화재사건은 사고발생 이틀이 지나도록 정확한 화재원인조차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9월 5일에야 1차 복구가 마무리되고 완전 정상화를 위해서는 4개월 이상이 걸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77년 미국뉴욕의 정전사고 때처럼 방화·약탈등 범죄가 없었고 오히려 평소보다 범죄발생이 준것은 특기할만한 일이었다.
◇화인=한전측은 사고가 나자 화재원인을▲변전실의 회로 차단기가 자동접속 중 스파크가 일어나며 불똥이 전선케이블에 옮겨 붙었을 경우▲비로인한 누전▲낙뢰에 의한 것등 세가지를 들고 처음에는 스파크로 불똥이 튀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발표했으나 곧 낙뢰에 의해 불이난 것 같다고 수정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전기 스파크는 과부하 상태에서 발생하는 것인데 월계 변전소의 경우 지난 6월 상계 변전소가 신설된 뒤 오히려 전력량이 준 상태여서 과부하가 걸릴 이유가 없고 현재의 전기 기술 수준으로 볼때 변전소 누전도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낙뢰에 의한 변전소 화재는 지금까지 발생사례가 없어 그보다 기계설비의 정비불량과 노후가 화재발생 원인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특히 월계변전소 화인은 긴급 복구 과정에서 현장 보존이 이루어지지 않아 영구 수수께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안전무방비=본관 건물2층에 송·수전 자동차단기 20대, 수동차단기 1대등 모두 21대의 고압전류 제어 장치가 있었으나 29일에는 단 한차례도 작동되지 않았다.
사고당시 김영이소장(47)등 2명이 중앙 전력 감시실에서 근무하고 있었으나 방독면등이 준비돼 있지않아 전선이 타면서 나는 유독가스를 대피하느라 미처 소방시설을 작동시키지 못했다. 뒤늦게 사용된 진화용「할론」가스는 변전기를 식히기 위해 모든 문이 열려있는 상태여서 효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조사결과 변전소에는 청원경찰도 없이 야간 당직 근무자 1명만이 변전소를 지켜온 것으로 밝혀졌다.
◇복구=월계변전소는 의정부에서 송전, 종암·원남·운니변전소 지역으로 들어가는 입구.
한전측은 79년 착공한 옥인동과 운니동 사이 케이블이 90년 완공될 때까지는 다른 변전소의 전류를 사고지역 지선(지선)으로 돌릴 수 없어 복구될 때까지 장시간 기다릴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전측은 화재가 난 다음날에야 대구와 부천에 있던 2만3천㎾ 용량의 이동변전차 2대를 변전소에 응급설치하는등 전혀 대비책을 세워놓지 않았다.
또 사고현장에는 전체 복구작업을 총괄하는 책임자가 없어 복구일시나 복구진척 상황을 파악 할 수 없었다.
◇문제점=도시가 암흑 천지에 빠졌어도 관할 경찰서들은 평소처럼 당직자만 근무하고 모두 퇴근해버려 정전 때 발생 가능한 각종 사고에 무방비.
교통신호등이 꺼지고 폭우까지 겹쳐 도로가 대혼잡을 빚고 있어도 교통 경찰조차 즉각 증원되지 않아 심한 교통 정체현상까지 빚었다.
또 평소의 민방위 비상 연락망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무엇을 위한 훈련이었고 연락망 작성이었나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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