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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타는 냄새 맡고 74명 병원행" 대구 경상여고 의문의 악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일 오전 원인 불명의 악취 발생으로 70여명의 학생과 교사가 구토 증상 등을 호소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한 교사가 어지럼증을 호소해 구급대원들이 병원으로 옮기고 있다. 대구=백경서 기자

2일 오전 원인 불명의 악취 발생으로 70여명의 학생과 교사가 구토 증상 등을 호소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한 교사가 어지럼증을 호소해 구급대원들이 병원으로 옮기고 있다. 대구=백경서 기자

“조회 시작하고 30분쯤 지났나…. 철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어요. 갑자기 친구 5~6명이 속이 안 좋다며 화장실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몇 명은 어지럼증을 호소해 서로 부축해서 교실로 갔어요.”

대구 경상여고서 2일 오전 조회 시간에 악취 발생 #오후 4시까지 환자 74명 발생, 구토·어지러움 호소 #학교 "2017년부터 악취 문제 있었지만 해결 안 돼" #북구청 "주변 공단 탓인지, 내부 원인인지 파악중"

대구 경상여고 2학년 김모(17) 양의 말이다. 이날 오전 9시 40분쯤 대구 북구 침산동의 경상여고 강당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악취가 퍼졌다. 당시 교장 취임식 행사가 있어 오전 9시부터 전교생 752명이 강당에 있었다. 학생들에 따르면 이날 행사 중반부쯤부터 강당에 철이 타는 듯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김 양이 한 교사에게 “냄새가 심하다”고 말했고, 교사들이 “또 인근 공단 쪽에서 악취가 들어오나 보다”며 창문을 닫기 시작했다. 그런데 창문을 닫자 냄새가 더 심해졌다.

김 양은 “다들 어찌할 줄 몰라 다시 창문을 열었다”며 “조회는 정상적으로 끝났지만, 반 친구들 4명이 어지럽고 속이 안 좋다고 해서 보건실로 데려갔다”고 말했다.

이날 경상여고에는 심한 악취로 인해 이날 오후 4시까지 74명의 환자가 발생해 12개 병원으로 나눠 이송됐다. 대부분 어지럼증·복통·구토 증상을 보였다. 특히 강당 입구의 왼쪽 부분에 서 있던 2학년 학생들에게서 환자가 많이 발생했다. 학생 7명이 갑자기 보건실을 찾자, 보건 교사가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해 이날 오전 10시 52분쯤 관할 소방서인 북부소방서에 “주변 공장에서 나온 악취를 맡은 학생들이 구토 증상 등을 호소한다”며 신고했다.

이날 사건 발생 후 2시간여 뒤인 낮 12시쯤 학교를 찾았다. 강당 출입은 통제됐고, 소방당국은 원인 조사를 위해 강당에 남은 공기를 채취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이날 3시쯤 귀가했다.

2일 오후 대구시 북구 침산동 경상여자고등학교에서 소방당국과 환경부 관계자들이 가스누출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2일 오후 대구시 북구 침산동 경상여자고등학교에서 소방당국과 환경부 관계자들이 가스누출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학교 측과 학생들은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라고 말한다. 3학년 박모(18) 양은 “1학년 때부터 악취가 났고, 지난해엔 냄새가 심했던 적이 두 번 있어 야간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집에 갔다”고 말했다. 최모(18) 양은 “3년째 학교에 다니며 악취를 맡고 있는데 건강에 좋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학교 관계자는 “악취가 심해 북구청과 대구시에 2년 전부터 민원을 넣어 해결을 요구해왔지만, 또 이런 일이 발생했다”며 “주변 공단 지역에서 대기 오염 물질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경상여고 바로 옆에는 대구 제3 일반산업단지와 염색산업단지가 있다. 학교·대구시교육청에 따르면 실제 지난 2017년 9월 22일 악취가 심하게 나 학생들이 두통 증상을 호소했다. 이후에도 악취가 이어지자 전화로 북구청에 민원을 넣었던 학교 측은 결국 지난해 5월 대구시교육청에 공식 공문을 보냈다. 학교 측은 “2017년 9월 말부터 비주기적으로 악취가 발생한다. 북구청·환경당국과 해결방법을 논의하자”며 간담회를 요청했다.

대구시와 북구청은 경상여고의 민원을 받고 단속팀을 꾸려 경상여고 주변 공장들을 점검하고 있지만, 2년째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악취 발생지점을 정확하게 찾아내지 않으면 측정 농도가 떨어지는 데다, 측정용 대기 포집 장비를 구해 주 1회 조사에 나섰지만, 악취가 나오는 곳을 특정하지 못해서다. 대구시교육청은 결국 지난해 경상여고 공기정화 장치 설치계획을 수립해 올해 공기순환기 36대(학급당1)와 공기청정기 100대를 보급했다.

북구청 관계자는 “주변 사업장 등을 들러 주기적으로 정비를 해왔는데 올해 들어서는 민원이 없어 어느 정도괜찮아졌다고 보고 악취 관련 대책을 중단했다”며 “이번 경우는 인근 주민들 민원도 들어오지 않았고, 비가 오는 상황에서 내부에서 악취가 나왔을 가능성도 있기에 정확한 원인을 파악한 뒤 대책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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