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미군기지 조기 반환 카드…방위비 청구서에 맞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주한미군은 서울 용산기지 내 장병·가족 편의 시설을 10월 초 대부분 폐쇄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용산 미군기지 전경. [연합뉴스]

주한미군은 서울 용산기지 내 장병·가족 편의 시설을 10월 초 대부분 폐쇄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용산 미군기지 전경. [연합뉴스]

청와대가 지난달 30일 주한미군 기지의 조기 반환을 발표하며 ‘환경오염 정화비용’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청와대 국가안보회의(NSC)가 이번 발표에서 꼽은 원주의 캠프 롱·캠프 이글, 인천 부평의 캠프 마켓, 동두천의 캠프 호비 사격장 등 4곳이 정화 비용 문제로 인해 한·미간 반환 협의에서 진전이 없다. 4곳 모두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의 기지 반환을 위한 단계(반환 개시 및 협의→환경 협의→반환 건의→반환 승인→기지 이전) 중 환경 협의에서 발이 묶여 있다.

기지오염 정화비용 꺼낼 가능성 #SOFA 논의 사항…방위비와 무관 #“인근 주민들 민원 의식한 듯”

미국은 그간 자국 법률에 따른 ‘KISE 원칙’(Known·Imminent·Substantial·Endangerment to Human health)을 들어 ‘인간 건강에 대해 알려진·임박한·실질적·급박한 위험’에 해당하지 않는 한 원상복구 없이 기지를 반환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한국 정부는 이 때문에 그동안 환경 정화비용을 받지 않은 채 반환 작업을 진행해왔다. 군 고위 관계자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으로는 반박할 근거가 없어 미측이 환경 비용을 내지 않겠다고 나오면 별다를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 미군기지 반환을 공개 발표하면서 이달 중 개시될 것으로 예상되는 11차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을 앞두고 복선을 깔았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11차 협상을 앞두고 한국에 50억 달러 부담을 요구하며 방위비 협상의 틀 자체를 흔들려 하고 있다. 기존 방위비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전략자산 전개 비용 등도 청구서에 얹었다. 외교 소식통은 “이 정도면 아예 방위비분담금의 정의를 새로 써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 역시 환경오염 정화비용을 거론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단 이를 방위비 협상에서 다룰 수 있는지는 한·미 간 별도의 합의가 필요한 문제로,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원래 미군기지 오염 정화 문제는 SOFA 환경분과위원회에서 논의된다. 주한미군 주둔 비용만을 다루는 방위비 협상과는 연관이 없다. 특히 미국은 기지 반환 문제에서 선례를 남길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군 소식통은 “미국이 한국 기지 반환에 비용을 부담하게 될 경우 독일, 일본 등 전 세계 다른 미군 기지에도 기지 반환시 적용할 선례가 된다”며 “미국은 이 때문에 환경정화비용 부담에 대해서 확실히 선을 그어왔다”고 말했다.

미국의 이런 강경한 입장을 모를 리 없는 정부가 미군기지 조기 반환 방침을 밝힌 것은 따라서 국내 여론까지 염두에 뒀기 때문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콕 집어 명시한 4개 미군 기지 지역에서는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빨리 반환 작업을 마무리하라는 주민들의 민원이 폭주하고 있다. 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한 이후 청와대가 사실상의 ‘자주 외교’를 강조한 것의 연장 선상으로도 볼 수 있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불만을 표하는 사안에도 할 말은 하자는 정부 내 기류가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군 당국은 서울 용산 미군기지에 있는 한미연합사령부의 평택 이전에도 속도를 낼 방침이다. 연합사 이전 일정에 윤곽이 잡혀야 올해 내 용산기지 반환 절차도 시작될 수 있다. 군 소식통에 따르면 2022년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등을 고려해 최대한 그 전에 연합사 이전을 마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양국은 평택 연합사 지하의 작전센터, C4I(지휘·통제·통신) 체계 등 보안 시설 설치 상황을 보고 이전 일정을 결정할 계획이다.

유지혜·이근평 기자 wisepe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