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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비난에 동원된 ‘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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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문병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문병주 사회2팀장

문병주 사회2팀장

경제적 효과 5조7000억원, 브랜드 가치 8000억원. ‘뽀통령’으로 불리는 만화 ‘뽀로로’는 대한민국을 넘어 글로벌 브랜드가 됐다. 영어 버전이 나오고, 학용품은 물론 칫솔이나 침구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파생 효과를 낳았다. 최근 오랜만에 뽀통령을 마주했다. 뜻밖이었다. 유튜브에서다. “친일이 제일 좋아/자한당 모였다/언제나 매국질/오늘은 또 무슨 짓을 벌일까….” 제목은 ‘자유한국당 해체 동요-만화 주제가 메들리’로 2분56초짜리 짧은 영상이었다. 초등학생부터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단상에 섰다. 중간 중간 어른들의 추임새도 들렸다.

‘뽀로로’를 비롯해 ‘아기공룡 둘리’ ‘날아라 슈퍼보드’ ‘달려라 하니’ ‘로보트 태권브이’ 등 만화 주제가와 ‘토마토’ ‘솜사탕’ 등 동요를 개사한 노래가 합창됐다. 가면을 쓴 학생들이 율동을 가미했다. 재미가 있어서일까. 30만 가까운 방문자가 있었다. 이를 두고 “아이들까지 정치 선동에 동원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아이들이 불쌍하다”부터 “아동학대로 신고했다”는 말도 들렸다. 주최 측에선 “요즘 아이들도 알 건 다 안다” “아이들이 보다 못해 나선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현재 댓글은 올리지 못하게 조치됐다.

노트북을 열며 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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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했다. 자막까지 등장하는 이 가사를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개사했을까. 그렇다고 하기엔 가사가 너무 정치적이고 공격적이다. 다른 가사엔선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자한당은 토착왜구” “일본 손잡고 미국 섬기는 매국노 자한당”이라는 대목도 등장한다. 야당 정치인들의 실명도 언급된다. 이 영상은 17일 인터넷언론사 ‘주권방송’이 유튜브에 공개했다. “청소년 통일선봉대가 동요와 만화주제가를 재치 있게 바꿔불렀다”고 소개했다.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2019 자주통일대회’ 행사에서 촬영된 것이다. 이 행사는 옛 통진당 출신이 주축인 민중당 등 50여개 단체 연합체인 ‘민중공동행동’이 주최했다고 한다. 정치성이 뚜렷한 단체다.

모자이크처리도 안 됐으니 영상이 이대로 남는다면 훗날 단상에 오른 아이들은 자신의 모습을 되새겨 볼 수도 있다. “자랑스럽지도 부끄럽지도 않다”고 과거 자신의 운동 경력을 말하는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처럼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아이들을 단상에 오르게 한 어른들은 가사의 내용이 어떤 의미인지, 정치인의 이름을 거명하며 조롱하는 노래를 부르는 게 어떤 영향이 있을 것인지 충분히 알려줬어야 한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집회·결사의 자유를 막자는 말이 아니다.

문병주 사회2팀장